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칭화유니그룹 산하 우한 YTMC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YMTC]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자오 회장은 11세 때까지 신장 웨이우얼(위구르)자치구의 오지에서 돼지와 양을 키우는 목동이었다. 자오 회장의 부모는 문화대혁명 때 반동분자로 몰려 이 지역으로 하방(下方)됐었다. 그에게 기회가 온 건 문화대혁명 이후 부활한 대학시험(高考·가오카오)이었다. 그는 칭화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칭화대는 시진핑 국가주석,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등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대거 배출한 명문 대학이다. 그는 학창 시절에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중관촌에서 텔레비전 수리로 학비를 벌었다. 대학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부동산과 석탄 등에 투자해 45억 위안을 번 뒤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이후 그는 2005년 베이징에서 첸쿤(乾坤)투자그룹을 세운 뒤 2009년 칭화유니의 지분 49%를 사들여 칭화홀딩스에 이어 2대 주주에 올랐다. 그는 별명에 걸맞게 중국 정부의 막강한 지원과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칭화유니를 중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시켜왔다.칭화유니는 산하에 낸드플래시 제조업체인 양쯔메모리(YMTC), 모바일 칩 설계회사인 유니SOC, 반도체 설계업체인 쯔광궈웨이 등을 거느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칭화유니를 ‘반도체 굴기’의 선봉장으로 내세워왔다. 시 주석은 2018년 4월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을 찾아 “반도체는 사람의 심장과 같다”면서 “반도체 기술에서 중대 돌파구를 서둘러 마련해 세계 메모리 반도체 기술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특히 칭화유니는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D램까지 사업 분야를 넓혀왔다. 칭화유니는 지난해 9월 충칭시와 함께 향후 10년간 8000억 위안(135조 원)을 들여 D램 공장을 짓겠다는 청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칭화유니가 11월 16일자로 만기가 도래한 13억 위안(약 2200억 원)의 회사채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칭화유니는 원금·이자 일부만 상환하고, 나머지는 6개월 연장해달라고 상하이은행 등 채권단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칭화유니가 위기에 빠진 이유는 정부의 ‘든든한 지원’만을 믿고 재무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잉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칭화유니의 지난 9월 말 기준 부채는 528억 위안이며 이 가운데 60%가 1년 미만 단기 채무다. 반면 현금은 40억 위안 밖에 안 된다. 올 연말에 13억 위안과 4억5000만 달러 규모의 채무 만기가 돌아오고 내년 6월 말 만기인 채무도 51억 위안과 10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칭화유니의 수익성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소비 위축으로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려운 상태인 데다 채무 규모가 1567억 위안이나 돼 유동성 위기에 몰린 것이다. 칭화유니가 D램 양산에 실패할 경우,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중국 최초로 7나노미터(nm) 공정 양산을 성공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우한훙신반도체제조(HSMC)는 최근 후베이성 지방정부에 매각됐다. 2017년 11월 설립한 HSMC는 세계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의 TSMC의 최고 운영책임자(COO) 출신 장상이(蔣尙義)를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하면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도 10나노미터 이하 공정을 양산하는 데 성공한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뿐이다. HSMC는 중국 정부 등으로부터 1280억 위안(21조7000억 원)규모의 투자금을 받았지만, 제대로 된 시제품조차 만들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 이유는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직접적인 타격이 됐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이 뒷받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설 중이던 축구장 59개 크기의 제조 공장(42만4000㎡)은 흉물로 남았다.
관(官) 주도 정책의 한계
중국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인 YMTC의 전경(위)과 중국 베이징에 있는 칭화유니그룹 본부. [YMTC, 칭화유니그룹 홈페이지]
그러자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경험, 기술, 인력이 없는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고, 지방 정부가 맹목적으로 이를 지원하고 있다”며 “누구 책임인가를 원칙으로 삼아 중대 손실이나 위험을 초래한 경우 문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이처럼 뒤늦게 반도체 투자 난립에 제동을 걸고 나섰으나 이미 투자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 정부의 투자 장려가 오히려 반도체 버블과 부실기업 양산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 반도체 전문가들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빨간 불’이 켜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관(官) 주도 정책의 한계’와 기업들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꼽고 있다. 중국 지방 정부는 관내 반도체 기업들이 신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보조금을 지급한다. 32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만든 기업이 64단 제품을 개발할 때 지방정부가 추가로 투자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 개발이 상용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유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 등도 문제가 돼왔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기술력이다. 노광(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것), 식각(그려 넣은 회로대로 깎는 것) 공정 등엔 최고 수준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기술력을 높이려면 전문 인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대만과 일본 등에서 3~4배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최고위급 경영진을 영입하고는 있지만 최고 기술자 등을 수입(?)하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술자 영입을 위해 ‘1년 연봉의 5배를 3년간 보장한다’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최고부자인 마윈(馬雲) 알리바바 창업자는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미국에 20년이나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도 “도로를 닦는다, 다리를 건설한다, 아파트를 짓는다고 할 때는 돈만 쏟아 부으면 된다”면서도 “하지만 반도체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필요한 반도체 분야 인력이 70만 명이지만 실제 인력은 3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중국의 대졸 이상 인력은 1년에 800만 명이 배출되지만, 그 중 반도체 분야 인재는 3만 명에 불과하다. ‘중국 반도체의 대부’라는 말을 들어온 룽신중커(龍芯中科)의 후웨이우 회장은 “중국은 이미 3층을 다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1층과 2층은 만들지도 않았다”고 반도체 기술력 부족을 부실한 집짓기에 비유해 비판했다. 중국 최초의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든 후 회장은 “중국은 3나노와 5나노를 개발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기초도 없는데 첨단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림자 금융에 부정적인 영향
중국 우한 HSMC의 파산으로 공사가 중단된 7나노 공장 모습. [Business 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