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스1]
대선 흥행구도 조성
일단 ‘흥행구도’ 조성의 의미가 크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더라도 경선을 거르기는 힘들다. 당내 반발이 거셀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흥행 차원에서도 그렇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내 경쟁이 치열할수록 경선 흥행에는 더 긍정적이다. 치명적이고 저열한 폭로전으로만 가지 않는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의 속내는 이미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한다. ‘70년대 생 경제 전문가’다. 그런 세대로 선수교체를 해야 차기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있는 것이다. 시대 흐름 상, 틀렸다고 말하기 힘든 판단이다. 김택진 대표로부터 1차 거절을 당했다고 해서 김 위원장이 그 생각을 접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김 위원장의 ‘70년대 생 경제 전문가’ 찾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런데 당내 중진들의 반발을 무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수혁신이 ‘잘 되게’ 하기는 어렵지만, ‘못 되게’ 할 수는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당내 중진들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조기 종식과 전당대회 개최를 통한 새 지도부 선출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몇몇은 당내 경선에서 외부 영입인사와 함께 뛰어주어야 흥행구도가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은 유승민, 오세훈, 원희룡 세 사람을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최근 중진들과 접촉면을 확대하는 첫 번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본다. 중진들도 이런 김 위원장의 속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들에게 무관심한 것보다는 관심을 갖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에, 회동에 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차기 대선이나 내년 보궐선거 출마에 관심이 있는 중진들로서는 이렇게 해서라도 세간의 관심을 끌어 지지율을 높이고 싶을 것이다. 자력으로 지지율 상승이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할 것이다.
김 위원장의 한 마디에 국민의힘 차기 대선 당내 경선구도가 확정된 느낌마저 든다.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띄운 유승민-오세훈-원희룡 3자 구도를 국민의힘 당원과 보수 지지층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래, 이 맛이야!’ 라는 반응을 보일까? 그렇다면 앞으로 이 세 사람의 대권주자로서 지지율은 상승세를 탈 것이다. 반면에 ‘장난하는 거냐?’ 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이들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세 사람을 굳이 언급한 이유 중에는 이런 의도도 담겨 있다고 본다. “이들이 필승카드라고 보는가?” 국민의힘 당원과 보수 지지층을 향해 이런 화두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렇게까지 띄워서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다면 갈 길은 하나뿐이다. 김 위원장이 이제까지 그러했듯이 외부에서 새로운 인재를 찾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한다. “당신들은 당신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원과 보수 지지층의 생각은 다르다. 더욱이 국민은 새로운 인물을 원한다.”
재보선 견인대책 마련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지사(왼족부터). [뉴스1]
당장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자를 누구로 내세울 지도 문제다. 필승 카드로 새로운 인물을 물색 중이지만 잘 잡히지 않는다. 결국 당내 인사 중에서 선택을 한다면, 그래도 경쟁력이 높은 후보군은 대권주자들 뿐이다. 최근 국민의힘 내에서 대권주자 중 누군가를 서울시장 후보자로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낙연 대표나 이재명 지사 같이 양강 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는 대권주자라면 굳이 직접 재보선 후보자로 뛸 필요가 없다. 숨만 쉬고 있어도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 정도의 경쟁력을 보유하지 못한 군소 대권주자라면, 직접 보선 후보자로 뛰어서라도 승리에 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대권주자 투입설의 근거다. 이번 보선에 출마해 당선되면 체급이 올라간다. 그렇게 해서 차차기에 도전하라는 의미도 물론 담긴 주장이다. 차기를 노리는 국민의힘 대권주자들 입장에서는 다소 섭섭하게 들릴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냉정한 판세분석에 근거한 주장이기도 하다. 현재 지지율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엄정한 성적표다. 성적을 올릴 필살기가 없다면, 차기 대선이 아니라 내년 보선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하다. 더욱이 서울시장이란 자리도 중량급 정치인이 아니면 소화하기 어려운 자리다.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순간 유력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대권주자 투입설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 바로 ‘유승민 차출설’이다. 김 위원장이 거론한 대권주자 세 사람 가운데 유 전 의원이 가장 경쟁력이 높을 것이란 기대감의 반영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이미 서울시장을 거쳤다. 원희룡 지사를 제주에서 끌어올려 서울시장에 투입하는 것도 그림이 좋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유 전 의원이 적합하다. 여전히 대구경북 지역 주민 사이에서는 유 전 의원에 대한 반감이 존재한다. 이런 반감의 해소과정 없이 곧바로 차기 대선에 출마하면 이것을 고스란히 부담으로 안고 가야 한다. 반면에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이런 부정적 인식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유력하게 제기된 ‘유승민 차출설’이었지만, 유 전 의원은 단호하게 차기 대선을 선택했다. 11월 16일 사실상의 캠프인 ‘희망22’ 사무실을 개소한 데 이어, 1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렇게 서울시장 출마에 선을 그었다. “이제까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경선을 통해 좋은 후보가 선출되면 그 후보의 당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복안만 가지고 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그런데 이런 말도 함께 남겼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말했지만 서울시장 후보 선출은 경선에서 뽑는 것이다. 후보를 뽑는 원칙과 절차가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말을 못할 것이다. 만일 그런 말을 건네 오면 제가 그때 가서 답은 해야겠지만, 지금 현재로선 서울시장 출마를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 ‘이제까지’ ‘현재로선’ 이 두 문구가 눈길을 끈다. 여지는 남긴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분열공작 방지
추미애 장관과 민주당의 노력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이 범야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등극했다. 윤 총장이 뜨면서 국민의힘의 대권주자들은 존재감이 더 없어졌다. 이것이 민주당의 전략이라면, 또 다시 늪에 빠진 격이다. 민주당은 최근 가덕도 신공항 이슈몰이에도 열심이다. 이로 말미암아 국민의힘이 내분에 빠질 위기다. 부산경남(PK) 지역 의원들과 대구경북(TK) 지역 의원들 간에 입장이 갈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련의 중진 회동으로 당내 내분을 잠재워가던 상황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지고 만 격이다. 이 이슈로 당장 김종인 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의 입장도 갈려 버렸다. 간신히 봉합한 두 사람 관계가 다시 서먹해질 지도 모른다. 국민의힘이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반대할 경우에 고립화는 더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총선에서 이미 전국 정당에서 영남 정당으로 주저앉은 국민의힘이다. 그런데 자칫 ‘TK 자민련'으로 전락할 국면까지 몰리고 만 것이다. 전형적인 분할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이다. 최근 민주당이 선거 때 자주 사용하는 이른바 ’갈라치기‘ 전략이다.김 위원장의 내부 대권주자 띄우기는 이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윤석열 거품을 걷어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한다. 지난 11월 12일 한 여론조사에서 윤 총장이 대권주자 지지율 1위에 등극하자 “야당의 정치인이라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이유이기도 하다. 윤 총장이 국민의힘에 몸을 담은 뒤에 지지율이 높게 나오면 그것은 보약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약이다. 헛꿈에 사로잡혀 ‘희망고문’만 하다가 윤 총장이 출마를 하지 않으면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만다. 지난 대선 당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가 반면교사다. 이런 어이없는 경우는 없어야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의 성과를 분석해볼 때, 김 위원장의 판단이 늘 옳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나마 외부인의 시선으로 나름 큰 그림을 읽고 있는 국민의힘 내의 유일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