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 편집국장의 회고록 ‘격노(Rage)’. [Simon & Schuster 출판사]
우드워드는 회고록에서 2017년, 이른바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이 나오던 당시의 상황이 매우 긴박했음을 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장관 등이 북한을 실제로 공습하려 했다고 폭로하면서, 그 예로 2017년 9월 23일 있었던 B-1B 폭격기의 동해 진입 무력시위 사례를 소개했다.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나라
2017년 9월은 미국과 북한 간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던 시기다. 북한은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4를 발사했고, 7월 28일에는 화성-15를 발사하더니 8월 29일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을 쏘고 9월 3일에는 급기야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8월 29일 북한이 IRBM 발사 준비 정황을 보이자 미국은 즉각 극비 암호화 통신 채널을 열고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이 온라인 회의를 열었고, 틸러슨 장관은 북한의 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것을 보고받고 “북한은 더 이상 통제 불가능한 나라”라며 더 이상의 협상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드워드 기자의 회고록에 따르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흘러가자,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조치로 신포 등 북한의 항구를 폭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 폭격이 북한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경우 미국은 한미연합 전면전 작전 계획인 5027 시행 외에도 별도로 80발의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과 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잘 알고 있던 매티스 장관은 이 시기에 언제 전쟁이 날지 몰라 옷을 입고 쪽잠을 잤던 것으로 유명한데, 매티스 장관은 자신의 결정에 수백만 명이 죽을 수 있는 핵전쟁이 발발할까 봐 며칠을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매티스 장관의 생각 때문에 결국 북폭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미국은 북한에게 확실한 경고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대규모 폭격 편대군을 구성해 북한 근처까지 보내기로 결정했다.
백악관의 작전 명령을 받은 미군은 9월23일 오후 작전에 나섰다. 괌에 임시 전개돼 있던 제37폭격비행대(37th Bomb Squadron) 소속 B-1B 폭격기 2대가 앤더슨 공군기지를 이륙해 북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리비아 공습작전인 오딧세이 새벽 작전 등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 폭격기. [공군 제공]
폭격기들이 오키나와 인근에 도달하자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있는 제15비행단 소속 F-15C 전투기 6대도 이륙했다. 미군이 차후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이들은 보조연료탱크 2개와 중거리·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만재한 완전무장(Fully-armed) 상태로 실전 상황을 부여받고 작전에 투입됐었다.
이들의 뒤에는 가데나에서 발진한 E-3B 센트리 조기경보통제기 1대와 호위 전투기들에 대한 공중급유를 담당할 KC-135R 공중급유기 2대, 유사시 조종사 구출을 위한 MC-130J 특수전기 2대와 HH-60M 탐색구조헬기 2대, MH-53E 헬기 2대, CV-22B 특수전기 2대와 기타 지원기 등이 따라붙었다. 20여 대에 달하는 전형적인 공격편대군(Strike package)이었다.
“이번 사건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
이들은 제주 남방 해역에서 편대를 구성한 뒤 대한해협 상공을 지나 동해로 진입한 뒤 똑바로 북상하는 코스를 취했고, 한국시각으로 9월23일 오후 11시 30분께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했다. 이들은 그 누구의 제지나 간섭도 받지 않고 그대로 북상했고, 풍계리 인근까지 접근했다가 기수를 돌려 다음날 새벽에 기지로 복귀했다.이 같은 사실은 작전 당일 항공기의 ADS-B(Automatic Dependent Surveillance-Broadcast) 신호를 추적하는 전문가들에 의해 처음 식별됐고, 필자 역시 작전 당일인 야간에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다음 날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북한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북한은 미국이 9월24일 오전(한국시각), 미 국방부가 관련 사실을 브리핑한 다음에야 이 사실을 인지했고, 9월25일부터 UN주재 대사 명의로 “이번 사건은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며 온갖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밥 우드워드 국장의 회고록에 나온 대로 미군이 9월23일 야간에 정말 북한 영공에 들어갔었다면, 북한은 자신들의 영공을 미군 폭격기 편대가 휘젓고 다니는 것을 몰랐다는 이야기다.
미군이 밝힌 B-1B 폭격기 편대의 진출 위치는 당시 이 폭격기가 탑재하고 있었던 AGM-158 JASSM(Joint Air-to-Surface Standoff Missile) 스텔스 공대지 순항 미사일로 평양 김정은 집무실을 때릴 수 있는 거리였다. 중동 지역 공습 작전에서 증명된 바와 같이 이 미사일은 북한의 방공망으로 탐지·식별·추적이 사실상 불가능한 무기이기 때문에 9월23일 밤 바로 그 시각에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만 있었다면 김정은은 불귀(不歸)의 객(客)이 될 수도 있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영공 또는 영공에 아주 가까운 공역까지 미군 폭격기 편대가 들어왔다는 사실, 그것도 자신들이 그 사실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사실 북한만큼이나 미국도 놀랐을 것이다. 폭격기 편대가 그토록 가깝게 접근할 때까지 북한의 방공망이라는 것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1만4000여 문에 달하는 대공포와 수백기의 지대공 미사일로 구성된 세계 최고 수준의 밀집 방공망을 갖춘 것으로 유명했다. ‘카탈로그 데이터’대로라면 미군 폭격기들은 한반도 인근에 도착했을 때부터 북한의 장거리 조기경보레이더인 P-14(추적거리 600km)에 탐지되고, 위도 상으로 강원도 인근 하늘을 비행할 때부터 S-200(NATO 분류명 SA-5) 지대공 미사일의 사격통제레이더인 5N62 레이더의 조준을 받았어야 했다.
북한은 동해안 주요 거점에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인 S-125(NATO 분류명 SA-2)를 대량으로 깔아 놓고 있는데, 이 레이더 사이트에는 최대 275km를 볼 수 있는 P-12 레이더가 편제되므로, 이들 레이더가 제원대로 작동했다면, 북한은 미군 폭격기 편대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을 때쯤 동해 상공으로 전투기를 띄웠어야 했다.
밀집 방공망의 허상
북한이 동해안에 배치한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S-125(NATO 분류명 SA-2). [GettyImages]
사실 소련제 장비로 구축된 방공망의 취약성은 걸프전 때 이미 드러난 바 있었다. 당시 세계 최정상급 방공망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던 이라크군은 다국적군의 공습에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초토화되며 소련제 무기는 카탈로그 데이터와 실제 성능에 큰 괴리가 있다는 점을 보여줬었다.
카탈로그 데이터와 실제 성능의 괴리는 이후 여러 차례 추가로 증명됐다. 1999년 코소보 공습에서 그랬고, 2003년 이라크 침공 때도 그랬으며, 2011년 리비아 공습 작전 때도 그랬다. 러시아군의 S-400이 배치된 것은 물론 S-300과 판치르(Pantsir), 부크(Buk) 등 카탈로그 데이터로는 세계 최정상급의 러시아제 지대공 미사일을 대량으로 도입해 다층 방공망을 구축하고 있는 시리아군은 최근 거의 매주 이스라엘군의 공습에 주요 도시를 내주며 그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방공망은 시리아군보다 30~40년 더 낙후된 장비들이다. 더욱이 북한은 대량으로 깔아놓은 지대공 미사일들의 눈이라 할 수 있는 장거리 레이더를 365일 24시간 내내 가동할 수 있는 전력도 충분하지 않은 나라다. 세계 최고의 밀집도로 깔아놓은 방공망이라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군은 매일 한반도 주변에 정찰기를 띄운다. 이 가운데는 북한의 레이더나 통신 전파를 잡는 신호정보 수집기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정찰을 하다가 북한에서 레이더 전파가 방사되지 않는 타이밍을 잡아 전투기와 폭격기를 보내면 평양, 영변, 신포 그 어디가 됐든 북한은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대전은 전면전의 시대가 아니고, 이제 전면전은 더 이상 미군의 주요 교리도 아니다. 걸프전 이후 미국은 효과기반 작전(EBO : Effects-Based Operation)을 통해 최소한의 전력으로 적의 핵심만 때려 전쟁을 최단기간 내에 종결하는 전술을 구사해오고 있다. 즉, 미국이 북한과 일전을 결심하면 평양의 수뇌부만 때리지, 다른 곳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란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공산독재국가의 군대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경직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제아무리 규모가 큰 군대라 하더라도 수뇌부만 제거되면 공산군대는 마비된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이 내려오지 않는데 군대를 움직이는 것은 곧 반역이고, 이는 즉결처분감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국이 북한을 공습하지 않는 것은 북한에 대한 공습이 북한의 반격으로 이어져 대규모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미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김정은을 제거해 권력 공백 상황이 왔을 때 한반도에 몰아닥칠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다.
美 정치적 요인이 중요 변수
대한민국은 이러한 후폭풍을 직격탄으로 맞게 되는 국가다. 이 때문에 한미동맹이 견고하고 끈끈할수록 미국은 북한 수뇌부에 대한 타격을 주저하게 되지만, 한미동맹이 느슨하고 와해되면 될수록 미국은 거리낄 것이 없어지게 된다. 불편한 관계에 있는 동맹의 안전보다 미국 본토의 안전과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과 같은 미국 국내 정치적 요인이 더 중요한 고려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실제로 미국은 현 정부 집권 이후 한국을 배제하고 일본을 끌어들여 대북 군사작전의 새 판을 짜고 있다. 본토와 괌에서 발진해 동해 한복판까지 진입하는 미군 폭격기를 대한민국 공군 전투기가 아닌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엄호하는 훈련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2016년부터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 실행 가능성을 여러 차례 경고하며 매일 한반도 주변을 오가는 미군 군용기와 함정의 동향을 체크하고 추적해 왔다. 최근 한반도 주변에는 2017년 ‘화염과 분노’가 이야기되던 그때 못지않은 대규모 전력이 들어와 있고,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전배치선과 탄약선이 동중국해와 동해 일대를 떠다니고 있다.
필자가 ‘북폭’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할 때마다 혹자는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판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당시 미국 고위 인사들 또는 그들과 접촉했던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나 빈센트 브룩스 당시 한미연합사령관, 밥 우드워드 기자 등이 “당시 실제로 군사작전 직전의 분위기까지 갔었다”라는 증언들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군은 군수로 전쟁을 하는 나라다. 미군의 군수물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면 미군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가 보인다. 지금 미군은 국가 지도부의 결심만 있으면 언제든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킬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다. 모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심 여부에 달렸고, 그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필자는 기꺼이 ’양치기 소년‘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