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 국회의원 고액 후원금 분석했더니 전반기엔 ‘親朴’, 후반기엔 ‘親文’에 쏠려
文 정부 출범 후 300만 원 이상 고액 기부자들, 김진표·이해찬에 줄서
지난해 검경 출신과 ‘친기업’ 의원들은 고액 모금 상위 올라
‘영남’ ‘검경(檢警)’ ‘기업인’. 고액 후원금을 거둬들이는 데 유리한 국회의원의 조건은 이와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주간동아’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로부터 입수한 2019년 연간 300만 원 이상 국회의원 후원 내역을 분석한 결과 영남에 지역구를 둔 미래통합당(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을 통합당으로 통칭) 의원이라면, 검찰이나 경찰 출신이라면, 또 기업인 후원자를 다수 확보한 사람이라면 상대적으로 고액 후원금을 많이 모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국회의원 후원 내역은 선관위에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다만 연간 300만 원 이하를 후원한 사람의 인적 사항과 금액은 공개되지 않는다.
지난해 고액 1위는 윤상현 의원, 검경 출신 약진
2019년 한 해 국회의원에게 기부된 고액 후원금은 총 57억3300만 원. 이 중 더불어민주당(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을 민주당으로 통칭) 의원에게 기부된 금액이 26억1000만 원으로 통합당(23억1000만 원)보다 3억 원가량 많다. 하지만 고액 후원금을 많이 모은 순위에서는 통합당 의원들이 앞서 나갔다. 1~4위를 모두 통합당 의원이 차지했고, 2019년 한 해 동안 고액 후원금으로 5000만 원 이상을 모은 12명 중 통합당 의원은 8명으로 60% 이상을 차지했다. 나머지 4명은 민주당 소속(표1 참조).고액 후원금으로 9400만 원을 모아 1위를 한 통합당(현 무소속) 윤상현 의원의 후원자는 주로 기업인. 3세 오너 경영인 허승범 삼일제약 부회장(400만 원)과 2세 오너 경영인 윤상현 한국콜마 부회장(500만 원), 그리고 윤 의원 지역구인 인천의 이관춘 티오피종합건설 대표(500만 원) 등이 눈에 띈다.
8490만 원을 모금해 2위를 한 통합당 정진석 5선 의원도 주로 기업인으로부터 고액 후원을 받았다. 부동산 임대 및 의류제조업을 하는 ㈜유화의 지일환 대표(500만 원), 의약품 제조업체 ㈜씨엘팜의 장석훈 대표(500만 원) 등이 정 의원을 후원했다.
지난해 고액 후원금으로 5000만 원 이상 모은 통합당 의원 8명 가운데 영남 출신이 4명, 검경 출신이 4명이다. 박명재(경북 포항·남구·울릉), 정점식(경남 통영·고성), 윤재옥(대구 달서을), 곽상도(대구 중구·남구) 의원이 영남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한편 정점식(전 대검찰청 공안부장), 곽상도(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의원은 검찰 출신이고, 윤재옥(전 경북·경기지방경찰청장), 이철규(전 충북·경기지방경찰청장) 의원은 경찰 출신이다.
지난해 민주당에서 가장 많은 고액 후원금을 받은 이는 노웅래 의원으로 6500만 원을 모았다. 김정호(5865만 원), 진선미(5357만 원), 소병훈(5300만 원) 의원도 연간 고액 후원금 5000만 원 선을 뛰어넘었다.
20대 국회로 넓혀 고액 후원금 동향을 살펴보면 어떤 흐름을 보일까. 역시 선관위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간(2015~2019) 연 300만 원 이상의 국회의원 후원 내역을 분석한 결과, ‘권력 있는 곳으로 돈이 따라오는’ 현상이 뚜렷했다. 20대 국회 첫해인 2016년에는 통합당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이후에는 민주당이 고액 후원금 내역에서 우위를 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총선 앞두고 ‘친박’에 고액 후원 쏠려
2016~2019년 4년간 민주당과 통합당 소속 국회의원이 거둬들인 고액 후원금은 각각 166억 원과 190억 원으로 통합당이 더 많다. 하지만 연간 금액을 살펴보면 희비가 엇갈린다(그래프1 참조).2016년 집권 여당이던 통합당의 고액 후원금은 93억3000만 원으로, 민주당(49억8000만 원)과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특히 20대 총선일인 4월 13일까지 모인 고액 후원금은 통합당 77억 원, 민주당 34억1000만 원으로 2배 이상 벌어졌다. 하지만 2017년 5월 민주당이 집권 여당이 되면서 판세가 달라졌다. 양당의 고액 후원금 액수가 2017년에는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2018년에는 민주당 49억2000만 원, 통합당 32억3000만 원으로 민주당이 15억 원 이상 앞섰다.
고액 후원금은 총선을 앞두고 ‘물밀듯’ 들어오다, 회기 말로 갈수록 뜸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총선을 치른 2016년 고액 후원금 총액은 172억8000만 원. 이 중 70% 넘는 132억3000만 원이 총선 전 기부됐다. 하지만 20대 국회 ‘끝물’인 2019년에는 고액 후원금 총액이 57억 원으로 2016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그래프2 참조).
고액 후원금으로 연간 1억 원 이상 모은 국회의원으로는 누가 있을까. 20대 국회에선 민주당 의원 11명, 통합당 의원 32명이 ‘1억 모금’ 선을 뛰어넘었다(표2 참조). 20대 국회가 개원한 지 1년 만에 집권 여당이 통합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음에도 통합당 의원들이 약진한 것은 고액 후원금이 주로 총선 직전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2016년 고액 후원금 총액이 1억 원을 초과한 국회의원이 통합당은 23명이지만, 민주당은 3명에 불과하다.
20대 총선을 앞둔 시점의 고액 후원금 내역에서 눈에 띄는 점은 ‘친박’(친박근혜) 세력의 약진. 박근혜 정부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지내며 친박 인사로 분류된 박완수 의원은 2016년 총선에 첫 출마하면서 그해 1~4월 1억8800만 원을 모금했다. 이는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넘어서지 못한 최고액이다. 대부분 경남·부산지역 사업가들이 500만 원씩을 후원했다. 박 의원은 창원시장을 지낸 바 있다.
검찰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지낸 곽상도 의원 역시 초선으로 첫 임기를 시작한 2016년 고액 후원금 1억3000만 원을 거둬들였다. 이 중 9500만 원이 선거를 앞둔 시점에 들어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지내며 역시 친박으로 분류된 김석기 의원은 2016년 1억2500만 원 후원금을 모았다. 경북 경주가 지역구인 김 의원은 주로 경남지역의 기업인으로부터 고액을 후원받았다.
후원금에 나타난 이해찬의 권토중래
2017년 ‘장미 대선’으로 정권이 바뀐 후 고액 후원금은 새로운 집권 여당으로 향한다. 특히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고 대선 직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에 부임한 김진표 의원의 사례가 두드러진다(그래프3 참조).
김 의원이 모금한 고액 후원금은 2016년 6000만 원에서 2017년 1억4500만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2017년의 ‘약진’은 대선 후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해 5월까지 고액 후원금 누적액이 4000만 원에 그쳤지만, 이후 4개월간(2017년 6~9월) 8750만 원이 추가로 들어왔다. 2017년 한 해 김 의원의 고액 후원금은 1억4500만 원. 그해 민주당 의원 가운데 가장 많았다.
김 의원에게 고액을 후원한 사람 중에는 단재완 한국제지 회장, 권오영 아일랜드리조트 회장 등 기업인이 눈에 띈다. 단 회장은 김 의원과 서울 경복고 동문으로 오랜 기간 후원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5년에는 주로 통합당 의원들(신동우, 정문헌)을 후원하다가 2016년 이후 민주당 의원들을 후원했다. 김 의원 외에도 문희상 전 국회의장, 원혜영 전 의원이 단 회장으로부터 해마다 500만 원씩 후원금을 받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컷오프’돼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리고 당선한 후 민주당에 복당, 2018년 8월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의 권토중래(捲土重來) 스토리는 고액 후원금 총액에서도 읽힌다. 이미 6선을 한 ‘국회의장급’ 후보임에도 총선이 열린 2016년 7000만 원이 채 안 되던 고액 후원금 액수가 2017년 9500만 원으로 회복되더니 2018년에는 1억5900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특히 전당대회에 당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로 한 7월 이후 걷힌 고액 후원금이 1억3450만 원에 달한다.
정치인은 정치인을 후원한다. 2015~2019년 5년간 후원자 직업란에 정치인, 국회의원, 정당인, 도의원, 시의원, 기초단체장이라고 적은 사람은 모두 125명, 후원금 총액은 42억1000만 원이다. 정치인의 정치인 후원 역시 주로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 선거를 도와주거나, ‘선거를 도와달라’는 의미의 후원으로 보인다.
선거 앞두고 정치인끼리 ‘주고받고’
통합당 김한표 전 의원은 20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16년 3월, 당시 자신의 지역구인 거제시에서 시의원을 지내던 진양민 씨로부터 500만 원을 후원받았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19대 국회의원 신분이던 2016년 2월 김현, 최민희 의원에게 각각 500만 원씩 후원했다. 두 의원은 19대 국회 민주당 비례대표로, 20대 총선 지역구 출마를 앞두고 있었다.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20대 총선을 하루 앞두고 당시 민주당 서대문구을 후보로 나선 김영호 의원에게 500만 원을 후원했다. 정의당 여영국 전 의원은 2019년 4월 경남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같은 당의 심상정 의원, 김종대 전 의원과 당시 무소속이던 손혜원 전 의원으로부터 각각 500만 원씩 후원받았다.
한편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2017년 하반기 같은 지역구의 김달호 당시 서울 성동구의회 의원으로부터 350만 원을 후원받았다. 김 구의원은 이듬해 6월 서울시의회 의원에 당선했다. 홍 의원은 같은 시점에 역시 윤종욱 성동구의회 의원으로부터도 440만 원을 후원받았다. 윤 구의원은 이듬해 서울시의원 성동제2선거구 민주당 경선에 나섰다 탈락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도 지역 정치인으로부터 고액 후원금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광호 서울시의회 의원(400만 원), 유정인 전 송파구의회 의원(500만 원), 문기진 전 서울 동대문구 구청장 후보(민주평화당) 등이 안 의원의 고액 후원자 명단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