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모함 3척과 한국 함정들이 2017년 11월 동해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US Navy]
강대국이 전함 대신 동원하는 수단은 항공모함(aircraft carrier)이다. 항공모함은 단독이 아니라 하나의 전단으로 움직인다. 이 전단은 항모를 중심으로 이지스 순양함(9600t급) 2~3척, 이지스 구축함(9200t급) 2~3척, 핵잠수함 2~3척 등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1개 항모전단의 전력은 웬만한 중소국가의 해공군력 전체와 맞먹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항모전단(11개)을 보유한 국가는 미국이다. 특히 미국 항모는 모두 원자력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연료 재공급 없이 장기간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데다, 연료 보관 시설의 최소화로 더 많은 항공기와 폭탄을 탑재할 수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육을 과시하겠다’
미국 항모 루스벨트호가 서태평양에서 항해하고 있는 모습. [US Navy]
항모는 많은 승조원이 ‘거리두기’를 하기 어려운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전염병에 취약하다. 루스벨트호의 경우 승조원 전체를 검진한 결과 1100여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그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루스벨트호는 5월 22일 괌을 출항해 작전지역에 배치됐지만, 복귀한 승조원 8명과 또 다른 승조원 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5월 27일 다시 괌으로 귀항했다. 6월 3일 루스벨트호는 두 차례 검진에서 건강에 전혀 이상이 없는 것으로 진단된 승조원들을 태우고 서(西)필리핀 해에 투입됐다. 서필리핀해는 필리핀 정부가 2011년 중국 정부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를 자국 바다라며 변경한 이름이다.
레이건호도 모항(母港)인 일본 요코스카항에 기항하던 중 승조원 일부가 코로나19에 감염되는 바람에 상당 기간 작전 활동에 나서지 못했다. 당시 레이건호는 선체 일부를 수리하고 있었는데, 하선한 승조원 가운데 1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는 5월 21일 레이건호가 출항, 예정된 작전지역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레이건호 항모전단은 현재 남중국해와 대만 인근 해역에서 초계 항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니미츠호의 승조원 일부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니미츠호는 선체 점검을 위해 태평양 연안인 워싱턴주 브레머턴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었고, 6월 8일 모항인 샌디에이고를 떠나 동태평양으로 이동했다. 이런 가운데 F-35B 등 수직이착륙기 30여 대를 실을 수 있어 사실상 경항모로 분류되는 강습상륙함 아메리카호도 현재 일본 사세보항에서 출항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미 해군이 3개 항모전단을 동시에 태평양에 포진시킨 것은 말 그대로 ‘근육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중국 해군은 미 해군이 코로나19 사태로 항모들의 작전을 중단한 틈을 이용해 4월 10일부터 23일까지 랴오닝호 항모전단을 투입, 대만 인근 해역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기동훈련을 벌였다. 당시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 해군이 전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중국 해군은 먼바다로 군함을 보내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이에 미 해군이 자국이 남중국해 제해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3개 항모전단을 전개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콜린 고 싱가포르 국방전략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이 항모 3척을 태평양에 동시 전개한 것은 중국이 코로나19 사태로 미 해군이 무력화됐다고 폄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프라타스 제도 침공 야심
미국 항모 레이건호에 탑재된 각종 함재기가 출격하는 모습(왼쪽). 중국 랴오닝호 항모전단이 대만해협을 거처 남중국해로 항해하고 있다. [US Navy, China.mil]
프라타스 제도는 중국 해군의 주력 거점인 하이난다오에서 대만 남부 바시해협을 거쳐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전략 요충지다. 이 때문에 중국은 그동안 호시탐탐 프라타스 제도를 침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왔다. 중국은 지난해 12월 산둥호를 동원해 프라타스 제도 인근 해역에서 훈련을 실시하기도 했다. 미국은 3개 항모전단을 투입함으로써 중국의 군사 위협에 맞서 대만의 안전 보장을 확실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미국의 3개 항모전단은 현재로선 중국 해군력을 압도한다. 3개 항모는 전장 330여m, 너비 70여m, 배수량 10만~11만t급이다. 각 항모에는 F/A-18 슈퍼호넷 전투기, E-2C 공중조기경보기, EA-18G 그라울러 전자전기, 70~80여 대의 각종 항공기가 탑재돼 있다. 3개 항모전단의 항공기를 모두 합치면 240여 대다. 이지스 순양함은 한 번에 총 24개 표적에 대응할 수 있고, 최대 사거리가 2500km인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이 탑재돼 있다. 이지스 구축함도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과 SM-3 대공요격미사일 등으로 무장했다. 로스앤젤레스급 핵잠수함은 12개의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 발사관을 장착하고 있다. 1개 항모전단이 발사할 수 있는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은 300여 발이나 된다.
반면 중국은 남중국해를 수호하겠다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리제(李傑) 전 인민해방군 해군 소장은 “미국 항모의 태평양 집결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을 위협하고 역내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인민해방군 기관지 ‘제팡쥔르바오(解放軍報)’는 ‘중국은 둥펑(東風·DF)-21D, DF-26 같은 대함탄도미사일 등 ‘항모 킬러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며 ’남중국해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는 북한의 군사도발에 확실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2017년 11월 12~14일 이들 3개 항모전단을 동해에 투입해 한국 해군과 합동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미국 CNN 방송은 “미 해군 항모 3척이 태평양에 동시에 전개되기는 북한의 핵 위협이 고조되던 2017년 이후 3년 만”이라면서 “미국이 최대 규모의 해군력을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양안관계 악화 등으로 중국과 대결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까지 겹치자 군사력 동원에 나선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아프가니스탄 공격(2001), 이라크 침공(2003), 이란과 핵 갈등(2012)이 있을 때 3개 이상의 항모전단을 배치한 적이 있다. 한반도의 경우 1968년 북한의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1976년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3개 항모전단을 전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3일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더글러스 맥아더가 한 말인 “전쟁에는 승리를 대체할 것이 없다”를 인용하면서 강력한 군사력을 강조했듯이, 미국 3개 항모전단의 위력은 가히 압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항모 산둥호가 남중국해를 항해하고 있다. [중국군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