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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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프로야구도 예비군의 시대 [베이스볼 비키니]

과거 군필자도 없었지만, 최근에는 예비군 선수 각광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20-06-0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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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 [동아DB]

    예비군 훈련을 받고 있는 사람들. [동아DB]

    ‘엊그제 예비군 훈련을 함께 받은 우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 야구선수들의 군 면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냥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군대를 다녀왔으니, 너도 당연히 가야 한다고 인상 쓰진 않았다. 한심한 청춘이었지만 독한 청춘은 아니었다. 

    꼭 군대 때문은 아니었지만, 재기발랄하던 우리는 시들시들해져 사회로 돌아왔다. 교수님께 더 깍듯한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선배들을 더 공손히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후배들이 유난히 개념 없어 보이게 되었다. 그러니까, 군대를 가야 남자인 건 맞는데, 그 남자가 너무 남자여서 탈. 당신들은 남자가 되지 말고 그저 멋진 야구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서효인 시인은 산문집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닙니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12년이 지난 2020년에는 멋진 야구선수가 되려면 군대부터 다녀와야 합니다.

    군복무 후 더 유명해진 박찬호

    군복무 후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KIA 타이거즈 내야수 박찬호. [동아DB]

    군복무 후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KIA 타이거즈 내야수 박찬호. [동아DB]

    박찬호에게 물어봐도 좋습니다. 물론 ‘코리안 특급’ 박찬호(47)가 아니라 KIA 타이거즈 내야수 박찬호(25)입니다. 박찬호는 서울 장충고를 졸업하고 2014년 2차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전체 50번으로 지명받아 프로야구 선수가 됐습니다. 그래도 사실 2017년 입대 전까지 박찬호는 야구 실력보다 이름으로 더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2014~2016년 3년 동안 1군 무대 155경기에서 그가 남긴 통산 타율은 0.169가 전부. 그러나 ‘예비역’으로 맞이한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는 157경기에 나서 타율 0.262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로 톱타자로 나서고 있는 올 시즌만 따지면 타율 0.275입니다. 



    방망이 솜씨만이 아닙니다. 8년 동안 KIA 주전 3루 자리를 지킨 이범호(39)가 지난해 은퇴식에서 등번호(25번)를 물려줄 정도로 탄탄한 수비력을 자랑합니다. 올 시즌에는 아예 김선빈(31)을 2루로 밀어내고 주전 유격수 자리까지 차지했습니다. 

    박찬호는 입단 후 두 시즌을 보낸 뒤 2016년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지원했지만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다음해(2017) 1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자대 배치를 받을 무렵 100% 모집병만 뽑는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에 자원했습니다. 

    제1경비단은 청와대 외곽 경비를 담당하는 부대입니다. 부대 자체는 서울 도심에 있지만 이 부대 소속 장병은 일반전초(GOP)에 근무하는 것처럼 산속 근무지에 한 번 들어가면 4개월 동안 나오지 못합니다. 박찬호는 “순전히 (집과 가까운) 서울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원한 것”이라며 “자대에 가기 전까지는 청와대 외곽 경비가 고된 임무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습니다. 

    사회인은 대부분 예비역 신분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만 프로선수가 현역병으로 입대한다는 건 그만큼 ‘경력 단절’을 경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박찬호는 “(현역 입대는)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입대 초기에는 야구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 TV 중계도 일부러 잘 안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박찬호가 다시 ‘야구가 그립다’고 느끼게 된 건 2017년 팀 우승을 지켜보면서부터. 박찬호는 “일단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마른 몸에 근육을 붙이려고 PX(군대 내 매점)에 있는 냉동식품부터 단백질 보충제까지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 결과 65kg이던 몸무게를 78kg까지 늘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동문인 김호재(25·삼성 라이온즈)가 선임병인 것도 박찬호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김호재가 병장을 달면서 두 선수는 캐치볼 정도는 간단히 주고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김호재가 제대한 후에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수비 감각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박찬호는 “구체적인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제대 후에도 적응이 빨랐던 것 같다”고 자평했습니다.

    권병장이 권병장인 이유

    프로야구 주전급 선수 중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LG 트윈스 시절의 권용관. [동아DB]

    프로야구 주전급 선수 중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LG 트윈스 시절의 권용관. [동아DB]

    사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현역병으로 입대하면 프로야구 선수 생활은 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2004년 병역비리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당시 프로야구 선수 51명이 사법처리 대상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걱정하는 나라였습니다. 1970~1974년 5년 동안 연평균 97만 명이 넘는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이때 태어난 남성은 아예 군 면제를 받거나 방위병으로 근무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심지어 방위병으로 근무하는 프로야구 선수는 ‘위수지역’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퇴근 후 안방 경기에 출전하는 데 별문제가 없었던 겁니다. 휴가를 쓰면 방문 경기 출전도 가능했습니다. 

    예컨대 해태(현 KIA) 타이거즈 이종범(50)은 1995년 방위병 신분으로 63경기에만 출전하고도 타율 0.326, 16홈런, 32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이종범과 입단 동기인 양준혁(51)은 신체검사에서 방위병 판정을 받았지만 상무에 입대했습니다. 그러다 삼성으로부터 지명받은 뒤로는 방위병으로 전환해 프로야구 경기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 가능했던 건 서종철 한국야구위원회(KBO) 초대 총장이 국방부 장관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설득해 ‘복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에서 방위병의 경기 출장을 허용한다’는 하명을 이끌어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비역 병장’ 출신 프로야구 선수를 찾아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경향신문’은 1997년 8월 12일 노장진(46·당시 한화 이글스), 임창식(51·당시 쌍방울 레이더스), 최향남(49·당시 LG 트윈스) 등 현역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선수를 다루면서 ‘현재 각 구단 1군에서 뛰는 예비역 병장은 10명 선’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프로야구 주전급 선수 중 예비역 병장이 얼마나 적었는지 권용관(44·당시 LG 트윈스)은 아예 대표 별명이 ‘권병장’일 정도였습니다. 권용관은 1998~1999년 육군 제39사단에서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쳤습니다.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났다면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을 걸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말입니다. 하지만 원래 ‘신성한 의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대부분 하기 싫어하는 일에 붙게 마련입니다.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군대는 원래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렇게 가기 싫은 마음이 모여 ‘진짜 사나이’가 됩니다. 이들이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기에 우리는 프로야구 경기가 끝난 뒤 (응원팀이 이겼을 때는) 단잠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인용한 서 시인의 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혹시 모르지. 우리도 (베이징올림픽 야구 대표팀처럼) 9연승 하고 금메달 목에 걸지도. 연승을 하려면 일단 당장의 게임을 이겨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당장을 살고 있다. 당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지 몰라도, 너희는 너희의 금메달을 목에 걸 거야. 그때도 금메달을 닮은 맥주를 같이 마시고 있으면, 참 좋겠다.’ 

    전국에 계신 현역병 여러분, 분명 여러분의 금메달이 여러분이 제대할 날만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 금메달을 목에 걸려면 당장의 게임에서 이겨야 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세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 ‘너무 남자’ 대신 ‘그저 멋진 남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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