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불스 시절 톰 티보도 감독(왼쪽).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 [AP=뉴시스, 뉴스1]
톰 티보도(61) 전 감독은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를 이끌던 2015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터뷰 자리에서 ‘좋은 지도자가 되는 법’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던 중이었습니다.
티보도는 확실히 경험 많은 좋은 지도자였습니다. 적어도 코치로는 확실히 그랬습니다. 1981년 세일럼주립대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모교 코치가 된 그는 하버드대 코치를 거쳐 1989년 NBA 무대에 입성했고 이후 21년 동안 6개 팀을 거치면서 코치로 일했습니다. 감독은 몰라도 코치를 맡기기에는 충분한 능력을 지녔다는 방증.
2010~2011시즌 기어이 시카고 감독 자리를 맡게 되자 그는 30년 가까이 쌓은 코치 경험을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카고는 이 시즌 정규리그를 62승 20패(승률 0.756)로 마치면서 NBA 30개 팀 가운데 제일 높은 승률을 기록했고, 주전 포인트 가드 데릭 로즈(31)는 NBA 역사상 최연소(만 22세 191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가 됐습니다. 물론 ‘올해의 감독상’도 티보도에게 돌아갔습니다.
단, 이 시즌 시카고는 ‘반지 원정대’를 구축한 마이애미 히트에게 동부 콘퍼런스 결승전에서 1승 4패로 패하면서 우승 도전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로즈를 비롯해 루올 뎅(34), 조아킴 노아(34), 카를로스 부저(38), 타지 깁슨(34) 같은 주축 선수가 당시 20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차기 대권’을 노릴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시카고는 ‘직장 폐쇄’로 팀당 66경기만 소화한 2011~2012시즌 정규리그 때도 50승 16패(승률 0.758)로 또 한 번 정규리그 (공동) 1위 기록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로즈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는 것. 게다가 주전 센터 노아마저 경기 도중 발목을 다치면서 시카고는 2승 4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티보도는 이후 세 시즌 더 시카고 감독을 맡았지만 다시는 이런 성적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2014~2015시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2승 4패로 패한 뒤 자리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자기가 쓰고 싶은 선수만 계속 쓴다’는 비판이 티보도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경험 많은 염경엽
‘감독석까지 달려간 대주자.’ 한국 프로야구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가 2012년 오프시즌에 염경엽(51) 현 SK 와이번스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을 때 나온 ‘동아일보’ 기사의 제목입니다. 당시만 해도 염 감독은 1군 감독이 되기에는 어딘가 경험이 부족해 보였습니다.염 감독은 야구 명문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유망주였지만 프로 무대에서는 10년간 통산 타율 0.195가 전부였습니다. 이런 선수는 감독은커녕 코치도 되기 쉽지 않은 게 현실. 염 감독은 지도자 대신 프런트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 뒤로도 프런트와 코치 사이를 오가면서 감독이 되기까지 12년을 프로야구판에서 버텨냈습니다.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염 감독은 넥센 지휘봉을 잡자마자 자신이 얼마나 준비된 감독인지 신나게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감독 부임 첫해 곧바로 팀에 창단 첫 포스트시즌 티켓을 선물했고, 이듬해에는 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습니다. 그사이 박병호(33)와 서건창(30)이 나란히 정규리그 MVP를 차지했습니다.
어쩌면 2014년 넥센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게 오히려 이상한 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같은 팀에 MVP 및 최다안타왕(서건창), 홈런왕(박병호), 다승왕(앤디 밴 헤켄), 구원왕(손승락)이 모여 있는데도 우승 도전에 실패했으니 말입니다. 염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패한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염 감독은 2015년과 2016년에도 팀을 포스트시즌까지 이끌었지만 끝내 ‘대권’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2016년 준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넥센을 떠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염 감독에게 ‘(포스트시즌 때) 너무 쓰는 투수만 쓴다’는 꼬리표가 붙은 다음이었습니다.
티보도 전 감독의 시카고 사랑
2017~2018시즌 시카고 불스에서 뛰던 지미 버틀러. [AP=뉴시스]
2017~2018시즌을 앞두고 티보도는 선수단 개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첫 단추는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지미 버틀러(30)를 영입한 것. 이어 역시 시카고에서 같이 뛴 깁슨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속해 시카고 출신 자말 크로퍼드를 데려왔고, 정규시즌 막바지에는 로즈마저 미네소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미네소타는 이 시즌 47승 35패(승률 0.573)로 서부 콘퍼런스 8위를 차지하면서 플레이오프행 막차를 탔습니다. 비록 ‘팀버울브스’가 아니라 ‘팀버울불스’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시카고 출신 선수가 많았지만 14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나갔다는 건 분명 고무적인 결과였습니다.
티보도의 ‘시카고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미네소타는 2018~2019시즌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LA) 레이커스에서 방출당한 루올 뎅까지 영입했습니다. 최종적으로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뉴욕 닉스에서 노아를 방출하자 미네소타에서 그를 영입할 것이라는 소문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시카고 출신이 많아지자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미네소타파(派)’ 대표 앤드루 위긴스(24), 칼 앤서니 타운스(24)와 ‘시카고파’ 대표 버틀러는 서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결국 버틀러는 트레이드를 요구한 끝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떠났고 팀 성적도 내리막길로 돌아섰습니다. 2018~2019시즌 첫 40경기에서 19승 21패(승률 0.475)를 기록하자 미네소타는 티보도 감독을 경질했습니다.
염경엽의 넥센 사랑
SK 와이번스 허도환(왼쪽). SK 와이번스 강지광. [뉴스1, 뉴시스]
이번 오프시즌에도 염 감독의 넥센 사랑은 식을 줄 모릅니다. SK는 올해 2차 드래프트 때 KIA 타이거즈 김세현(32), 롯데 자이언츠 채태인(37)을 1, 2라운드에서 지명했습니다. 두 명 모두 염 감독과 넥센에서 함께 뛴 인연이 있는 선수들. 또 트레이드를 통해 kt 위즈에서 윤석민(34)도 영입했습니다. 윤석민 역시 2014~2017년 넥센에서 뛴 선수입니다.
kt에서 SK로 ‘번호이동’을 한 게 윤석민 혼자는 아닙니다. 2년간 kt 1군 트레이닝 코치를 맡았던 이지풍(41) 코치도 내년부터 SK에서 컨디션 코치로 활약하게 됩니다. 이 코치도 물론 넥센(2010~2017) 출신입니다.
물론 야구는 농구보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가 많고 코칭스태프 규모도 더 크기 때문에 이 정도 인원이 합류했다고 ‘SK 와이로즈’라고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 전력을 물려받고도 올해 최종 순위 3위에 그친 상태에서 내년에도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어떤 비판이 뒤따를지 알 수 없습니다. 과연 염 감독은 다음 시즌 어떤 경험을 새로 쌓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