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주부가 시장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VCG]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이 사육하는 돼지 두수는 전 세계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인의 육류 소비에서 돼지고기 비중은 64%에 달한다. 중국인이 소비하는 돼지고기는 연평균 5500만t으로 전 세계의 절반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 중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8월 기준 모돈(어미돼지) 두수는 전년 대비 37.4%, 전체 돼지 두수는 38.7% 감소했다. 중국의 돼지 두수는 8월 기준 3억8000만 마리로 전년 대비 1억5000만 마리나 줄어들었다. 말 그대로 ‘돼지대란’이 일어난 것이다.
돼지대란의 원인은 지난해 8월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 Swine Fever·ASF)이다. 중국 전역으로 퍼진 ASF 때문에 돼지들이 폐사하거나 살처분되고 있다. 게다가 많은 양돈업자가 ASF로 큰 손실을 볼까 두려워 돼지 사육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사업을 접는 바람에 돼지 두수가 급감하고 있다. 일각에선 ASF 때문에 살처분된 돼지가 중국 전체 돼지의 60%에 이를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ASF로 인한 직접 손실도 엄청나다. 중국 공정원 원사인 리더파(李德發) 중국농업대 동물과학원장은 “ASF에 따른 직접 손실이 1조 위안(약 170조 원)으로 추산된다”며 “산업 사슬상 사료와 요식업은 뺀 수치”라고 밝혔다. 리 원장은 “중국인의 육류 소비에서 돼지고기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돼지고기 값 상승이 소비자물가지수와 국민 생활수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中, ASF 직접 손실 1조 위안
[VCG]
중국은 자국의 돼지고기 공급 부족분을 메우고자 이미 각국의 돼지고기를 싹쓸이하다시피 수입하고 있다. 주요 수입 대상국은 독일, 스페인, 캐나다, 브라질이다. 특히 중국 정부가 10월 10일부터 이틀간 미국 정부와 고위급 무역협상을 벌인 끝에 이른바 ‘스몰딜’에 합의한 이유도 돼지대란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양국이 합의한 주요 내용을 보면 미국은 10월 15일부터 2500억 달러(약 297조3750억 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율을 25%에서 30%로 올리려던 방침을 철회하고, 중국은 대두와 돼지고기 등 400억~500억 달러(약 47조~59조 원)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했다. 무역전쟁 이전인 2017년 구매액(210억 달러)의 2배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양국은 이런 내용을 앞으로 3〜5주에 걸쳐 합의문으로 만들고, 11월 16~17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서명할 계획이다.
중국이 미국산 돼지고기를 적극적으로 수입하려는 이유는 올해 들어 지금까지 각국으로부터 수입한 돼지고기(880만t) 양을 모두 합쳐도 중국의 돼지고기 부족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국이 돼지를 대폭 증산할 수 없어 중국에 그 이상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것이 불가능한 데다, 돼지고기 값이 지금보다 훨씬 더 뛸 것으로 예상돼서다. 미국 월가의 농축산 상품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ASF로 전체 돼지의 3분의 1이 죽었는데 가격이 80%가량밖에 안 오른 이유는 ASF에 걸릴까 봐 도축한 돼지고기 냉동육이 지금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 냉동육이 다 소비되고 나면 돼지고기 수급이 무너져 값이 몇 배나 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사육하는 돼지의 비중은 10%로 세계 3위며, ASF가 발생한 적이 없는 곳은 미국뿐이다.
스페인 육류가공회사 엘포조의 직원들이 중국으로 수출할 돼지고기를 포장하고 있다(왼쪽). 중국에 수출된 미국산 돼지고기가 진열된 모습. [사진 제공·엘또조, VCG]
돼지고기 선물 4.5% 급등
브라질 닭가공 공장의 한 직원이 중국으로 수출할 닭고기들을 손질하고 있다. [브라질 모니터]
호주의 양고기 가격도 전년 대비 14%나 올랐다. 뉴질랜드에서는 쇠고기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대중 쇠고기 수출이 50% 이상 늘었고 가금류는 68% 증가했는데, 쇠고기 값은 전년 대비 51% 상승했다. 8월까지 중국의 쇠고기 누적 수입량은 전년 대비 32.4%, 냉동 닭고기 수입은 51% 증가했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하는 육류인덱스에 따르면 쇠고기, 돼지고기, 가금류, 양고기 값이 평균 10%나 올랐는데, 이는 2015년 이래 최고치다. 내년에도 돼지고기는 물론, 다른 육류 가격 역시 계속 오름세를 보일 것이 분명하다. 세계 최대 인구를 보유한 중국의 돼지대란이 전 세계 육류 수급체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식탁 물가까지 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냉동·냉장 가능한 리퍼컨테이너 공급 비상
양돈 농가에서 키우는 슈퍼 돼지 등에 올라탄 중국인 여성. [VCG]
중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돼지고기 부족 현상이 나타나리라 보고, 돼지고기 공급을 늘리기 위해 대규모 양돈정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농업 담당인 후춘화(胡春華) 중국 부총리는 “육류 공급 상황은 내년 상반기까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며 “산둥성, 허베이성, 허난성 등 돼지 사육을 많이 하는 지방정부들이 양돈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대규모 양돈을 장려하고자 양돈 농가에 최고 500만 위안(약 8억4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은행 대출도 크게 늘려주기로 결정했다. 또한 각국으로부터 종돈 수입을 확대하고 돼지용 사료인 대두(콩)도 충분히 확보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는 미국산 대두 연간 구매량을 2000만t에서 3000만t으로 늘리기로 했다.
중국 양돈 농가 가운데 일부는 돼지고기 공급량을 늘리고자 무게가 500kg이나 나가는 ‘슈퍼 돼지’ 사육에 나서고 있다. 중국 양돈 농가에서 키우는 일반 돼지의 무게는 110kg 전후지만, 최근 대형농장들은 175~200kg의 돼지들을 잇달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컨설팅업체 브릭농업그룹의 린궈파(林國發) 선임연구원은 “중국 대형농장들이 돼지 무게를 최소 14% 이상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최대 양돈업체 원스(溫氏)식품그룹을 비롯해 코프코미트(中糧肉食), 베이징 다베이눙(大北農)과기그룹 등도 돼지의 평균 무게를 늘리고자 품종 개량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의 돼지대란은 조만간 한국 가정의 식탁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