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입점한 영풍문고. [사진 제공 · 아이파크몰]
대형서점 1년에 한 개만 오픈 가능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몰의 반디앤루니스(왼쪽)와 서울 마포구 합정동 딜라이트스퀘어의 교보문고.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조영철 기자]
중기부는 서점업에서 소상공인 비중이 90%에 달할 뿐 아니라, 최근 대기업 서점이 크게 증가하면서 인근 동네 서점의 매출이 감소하고 폐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이번 규제안의 배경으로 설명한다.
이번 규제를 받게 된 ‘대기업 등에 속하는’ 서점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문고(서점명 반디앤루니스), 그리고 대교문고다. 온라인 서점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는 신간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서점에 진출할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단, 중고책을 판매하는 온라인 중고서점은 ‘고물상’으로 분류돼 규제 대상이 아니다.
대형서점은 “정부 정책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적잖은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출판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다 온라인 구매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 대형서점 형편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 매출은 2009년 1조 원에서 지난해 1조8200억 원으로 10년 만에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소 책을 구입하는 곳에 대한 질문에서 2017년 성인 응답자의 38.5%가 시내 대형서점을, 23.7%가 인터넷 쇼핑몰을 꼽았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온라인 서점의 성장세가 더 가팔랐고 젊은 층의 인터넷 구매 선호도가 뚜렷해졌기 때문에 올해 말 발표되는 조사에서는 주요 구입처 응답에서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격차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출 성장세 차이도 크다. 예스24 매출이 2013년 3304억 원에서 2018년 4856억 원으로 5년 새 47%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교보문고 매출은 6% 증가(2013년 5351억 원 → 2018년 5684억 원)에 그쳤다. 영풍문고와 서울문고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1352억 원, 826억 원으로 예스24에 한참 밀린다. ㈜대교는 8월 서울 용산구 서울역사에 위치한 대교문고의 문을 닫으면서 아예 서점 사업에서 철수했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중기부는 대기업 서점이 2013년 63개에서 2018년 105개로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 철수한 대교문고를 제외하면 83개(교보문고 36개, 영풍문고 35개, 반디앤루니스 12개)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1위 교보문고가 그나마 선방하는 이유로도 ‘온라인 판매’가 꼽힌다. 교보문고의 온라인 매출은 오프라인 매출과 비슷할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10% 할인된 가격에 미리 결제하고 영업점에 들러 책을 받아가는 ‘바로드림’ 서비스가 꽤 호응이 좋은데, 이것 역시 온라인 매출로 잡힌다.
동네 서점 와서 구입은 모바일로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알라딘 중고서점(오른쪽)과 동네 서점에서 학습참고서를 살펴보는 여고생. [뉴스1, 박해윤 기자]
대형서점만 없으면 동네 서점은 살아날까. 학습참고서는 팔지 않고 개성 있는 도서 큐레이션(curation·선별 및 전시, 유통)을 내세우는 ‘독립서점’을 2011년부터 시작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 ‘땡스북스’의 이기섭 대표는 “대기업 서점이 새로 오픈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손님들은 대형서점과 동네 서점을 함께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과 교보문고 합정점 오픈 이후 땡스북스 매출이 각각 10%와 40% 감소했는데, 이는 방문 손님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보통 2~3권씩 구매하던 손님이 1권 정도만 구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형서점과 동네 서점은 지향하는 바가 달라, 손님 입장에서는 각각의 장점을 다 누리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또 다른 독립서점 대표는 “대형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이 더 큰 경쟁자”라고 했다. “매장에 전시된 책을 두루 둘러보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주문을 하는 손님이 꽤 많다”는 것. 도서정가제에 따라 책의 최대 할인 폭은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15%로 동일하지만, 온라인 서점은 신용카드사와 제휴 등을 통해 사실상 추가 할인을 시행하고 포인트 적립 같은 혜택도 제공한다.
‘변질된 서점’ 판칠라
중기부에 서점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청한 이종복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한길서적 대표)은 “온라인 서점의 위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점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에서 얻는 편익을 고려해 온라인 서점에 대한 규제는 요구하지 않았다”며 “이번 대기업 서점의 출점 제한은 대형서점의 증가로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서적 도매업체를 살리고, 이들 도매업체 의존도가 큰 군소도시 동네 서점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민음사 대표를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융복합형 서점에 한해 규제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이 오히려 대기업의 서점업 진출 방식을 안내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과 같이 동네 서점의 역량을 키우는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이기섭 대표는 “프랑스, 일본 등 문화적 성숙도가 높은 국가들은 도서 할인을 금지하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동네 서점이 더 많아지려면 한국도 완전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