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금융산업의 상징인 센트럴 지하철역 입구가 시위대의 방화로 불타고 있다. [SCMP]
지난해 10월 1일 중국 국경절을 맞아 펼쳐진 홍콩 불꽃놀이(왼쪽). 홍콩증권거래소 모습. [HKFP,차이나데일리]
관광과 쇼핑에 타격
홍콩 패션 거리인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소고 쇼핑몰. [위키피디아]
하지만 시위 사태 장기화로 홍콩의 주요 산업인 관광업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예년 같으면 8월은 휴가철 최대 성수기로 고급 호텔들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올해는 관광객이 급감함에 따라 고급 호텔들은 파리만 날렸다. 이 때문에 미라호텔 같은 최고급 호텔은 직원들을 강제적으로 무급 휴가를 보냈다. 홍콩 호텔·식음료직원협회가 8월 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38명 가운데 77%가 사측으로부터 최대 사흘간의 무급 휴가를 요구받았다고 한다. 46%는 자신의 월 수입이 3000홍콩달러(약 46만 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호텔은 자구책으로 가격 할인에 들어갔다. 애드미럴티, 완차이, 코즈웨이베이, 침사추이 등 시위대가 자주 모이는 시내 중심가 호텔들은 8월부터 숙박비를 1년 전보다 50% 이상 할인해 받고 있다. 일부 호텔은 90%나 내렸다. 호텔의 객실 점유율은 대부분 50% 밑으로 내려간 상황이다. 중심가의 5성급 호텔 숙박비가 1박에 1000홍콩달러(약 15만 원) 이하인 곳도 수두룩하다.
홍콩 정부에 따르면 8월 관광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40%나 급감해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홍콩 호텔·식음료직원협회는 “사스는 5개월 만에 잦아들었지만 시위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며 홍콩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다. 홍콩 최대 항공사인 캐세이퍼시픽은 앞으로 수개월간 항공편 예약 건수가 예년보다 두 자릿수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광객 급감 등의 여파로 명품업체, 패션업체, 화장품업체, 대형식당도 심각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221개 매장을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I.T는 영업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고, 화장품 전문매장 봉주르도 적자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고급 쇼핑몰이 밀집한 코즈웨이베이의 1087개 점포 중 102개가 비어 8월 공실률이 9.4%에 달했다. 소매업종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8월 소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나 급감했다.
역사상 가장 긴 시위로 기록
1 홍콩 시위대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발로 차고 있다. 2 홍콩 시위대가 첵랍콕국제공항에서 시위하고 있다. 3 홍콩 경찰이 정부청사 앞에서 파란색 염료가 든 물대포를 발사하고 있다. [HKFP]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였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됐다. 이후 홍콩은 한동안 중국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전진기지로 상당한 호황을 누렸다. 특히 각국 은행 등 금융기관이 중국에 대한 자본 투자를 위해 홍콩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법인 설립이 자유롭고 간편한 데다 외환거래 규제가 없고 기업 활동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도 홍콩을 외국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해왔다. 이에 따라 홍콩은 아시아 금융허브로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금융시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88층 높이의 국제금융센터(IFC), 홍콩증권거래소, 세계 유수 금융회사들이 포진해 ‘아시아의 월스트리트’로 불리는 금융 중심가 센트럴은 홍콩의 부(富)를 상징했다. 홍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불안에 떨지 않았을 정도로 발전해왔다.
이처럼 금융산업은 홍콩 경제의 꽃이지만 이번 시위 사태로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거래소 중 하나인 홍콩증권거래소의 올해 기업공개(IPO)는 지난해보다 3분의 1가량 줄어 88건에 불과했으며, 자금모집액도 108억 달러(약 12조9440억 원)로 55.9% 급감했다. 특히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미국 뉴욕 증시에 이어 홍콩 증시에 2차 상장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시장에서는 알리바바의 상장 공모액이 최대 150억 달러(약 12조947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세계 최대 맥주 제조업체 앤하이저부시 인베브도 아시아·태평양지역 사업체인 버드와이저 브루잉을 홍콩 증시에 상장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청다바이오, 위닥터, 톈스리바이오 등 중국 기업도 홍콩 증시 상장 계획을 연기했다. 실제로 6월 한 달 동안에만 총 110억5000만 달러 규모에 이르는 3개 기업의 대형 상장 계획이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7월에는 홍콩 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 수가 15곳으로,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0개)의 절반에 불과한 수치다. 8월에도 홍콩 증시에서 기업을 공개한 기업은 딱 한 곳이었다.
홍콩 엑시트 현실화 가능성
시위 사태 이후 홍콩 호텔들의 주가 추이. [ForwardKeys]
중국 정부는 아예 ‘홍콩 죽이기’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 지역을 연계해 세계적인 혁신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 프로젝트에서 홍콩을 제외시켰다. 중국 정부는 선전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선행 시범구’로 지정하고 2050년까지 글로벌 금융과 비즈니스 도시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홍콩과 접경한 가난한 어촌이던 선전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2조4222억 위안(약 408조3344억 원)을 기록하면서 홍콩(2조4001억 위안)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주권이 2047년 중국으로 완전히 넘어가면 ‘동양의 진주’라는 말을 들었던 홍콩은 별 볼 일 없는 도시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