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영 기자]
서문에 쓰인 이 글을 읽고 지난해 출간된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이 떠올랐다. ‘당청꼴찌’(해당 검찰청에서 꼴찌)로 불릴 만큼 무능한 데다 외모도 맹탕으로 생겨 ‘구걸수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피의자들에게 휘둘리는 ‘호구 검사’의 일상을 코믹 풍자극처럼 풀어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그러다 서문 말미에 등장하는 글을 읽고 장르가 다름을 직감했다
‘그저 판사이기만 하면 행복했던 나는, 그렇게 쭉 행복할 줄 알았다. 매에 장사가 없고, 가랑비에 옷 젖고, 잔 펀치에 나가떨어진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변호사 출신 경력판사의 고해성사
[사진 제공 · 김영사]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판사라서 행복한데, 왜 이럴까? 판사생활이 길어지며 재판 경험이 쌓일수록 행복의 총량 대신 불면과 악몽의 나날이 늘었다. 불면은 두통과 소화불량이 되고, 소화불량은 미란성 위염이 되고, 급기야 이것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법원은 물론 나에 대한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도 신경 쓰지 않는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중략) 국민의 신뢰니 정치니 하는 거창한 구호는 내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했지만, 재판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눈빛은 고스란히 누적되어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제야 퀭한 눈동자의 사내가 옆으로 고개를 살짝 돌린 표지 속 흑백삽화와 ‘어떤 양형 이유’라는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양형이유란 판결문 마지막에 형벌 정도를 정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장르는 자신을 피폐하게 만든 범인을 추적한 스릴러일까. 아니다. 책에는 저자가 재판에서 마주친 피해자와 범죄자 가운데 잊을 수 없었던 눈빛에 대한 기억이 담겼다. 그 기억에는 저자의 감정이 녹아 있다.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소수자들의 억울함과 아픔을 제대로 풀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이다.
저자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고령의 실직자가 된 이후 관료주의에 젖은 복지제도의 탁구공 신세가 된 주인공의 항변을 길게 인용한 뒤 이렇게 적었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I’m not a dog”라는 말이 내게는 자꾸만 “I’m not a doc”으로 들렸다. 그는 개가 아니고 서류나 기록도 아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판결문이나 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판사 박주영(51·사법연수원 28기)의 진면목을 마주하고 싶어서였다.
허우대 멀쩡하지만 소심한 경상도 사내
그가 근무하는 울산지방법원은 울산시 남구 법대로에 있었다. 바로 옆에 울산지방검찰청이 자리하니 법을 다루는 큰 길이라는 뜻에서 법대로라는 도로명이 붙었겠지만, 합의가 어려울 때 최후수단으로 “법대로 하자”를 외치게 되는 세속적 삶에 대한 풍자처럼 들리기도 했다.그는 그 법대로에 있는 울산지원 형사부 부장판사였다. 별 볼 일 없는 판사라고 주장했지만 키 크고 인물도 훤칠해 변호사를 해도 잘했을 성싶었다.
“성적에 맞춰 가다 보니 법대(성균관대)에 들어갔고 남들 따라 고시공부를 시작했는데 계속 1차에서 떨어졌습니다. 4학년 때 광고회사 원서까지 다 써놓고 진짜 마지막이라 생각한 시험에서 커트라인 점수에 딱 걸려 합격하고 다음 해 2차까지 붙었습니다. 그제야 진로 고민을 시작했는데 사법연수원 성적이 신통치 않으니 변호사도 감지덕지했죠. 그런데 벌이가 신통치 않았어요. 혼자 개업했다 망하기도 했고요. 특히 당사자(소송 의뢰인)에게 시달리는 게 도통 제 적성에 맞질 않더라고요. 한 가지 더, 변호사라는 직업은 늘 판단을 구하는 건데 실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과 동경이 있었죠.”
그래서 2005년 법조일원화로 경력법관 1기 판사가 됐다고 한다. 법관 임용 경로가 과거엔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수료→판사 임용으로 이뤄졌지만, 2018년부터는 법학전문대(로스쿨)를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변호사와 검사로 3~10년간 단계적 경력을 토대로 법관임용시험을 거쳐야만 판사로 임용된다. 그러니까 지금은 박 판사처럼 경력법관으로만 판사가 될 수 있다. 지역법관제도도 2014년 폐지됐다.
“지역유착 문제로 폐지되긴 했지만 저처럼 처음부터 지역법관을 지원하고 별문제 없던 판사에겐 그 의사를 존중해줍니다. 사법부의 승진 코스는 고등판사(차관급)가 되는 거였는데, 지역법관은 아예 이를 포기한 것이니까요. 물론 2018년부터 고등부장 승진제가 사실상 폐지됐지만 처음 들어올 때부터 지역법관으로 들어온 제가 법원장이나 고등법관, 대법관에 발탁될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웃음)”
그렇게 판사가 된 후 삶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재판에서 패소라도 하면 수임료를 주네 마네라며 못 살게 구는 당사자들이 사라졌고, 그가 ‘해발 8000m 이상 신의 영역’이라고 표현하는 1m 높이의 법대와 ‘아이언맨의 슈트’에 비유하는 법복의 권위를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 달에 4000쪽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읽어야 하고 일주일에 2번 이상 공판을 진행하며 공기 내 ‘납품’하듯 판결문을 써내야 하는 격무(2017년 지방법원 판사 인당 평균 처리 건수 674.6건)로 근골격계 질환과 돌연사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지만 정작 더 힘겨운 건 따로 있단다.
“책에도 썼듯 정의 수호니, 사회질서 유지니, 분쟁 해결이니, 갈등 해소니 뭐 이런 가치를 항상 마음에 품고 재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눈빛, 떨림, 한숨, 몸짓은 그대로 전이돼 깊이 감응됩니다. 다른 형사재판부 재판을 참관했을 때 30대 남자가 법정 구속되는 걸 보니 제 입이 다 바짝바짝 마르더군요. 낙담하는 표정과 망연자실한 표정, 다리의 후들거림을 봤거든요. 선고할 때까지도 유무죄가 대단히 헷갈리는 상황에서 무죄를 선고했는데 피고인이 씩 웃고 나가거나, 반대로 유죄를 선고했는데 억울하다며 큰소리를 치면서 퇴정하면 저처럼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은 그렇게 마음이 불편할 수 없습니다.”
‘휘어진 소나무 같은 판사’
[지호영 기자]
“매번 재판이 끝나면 각 사연의 무게에 압도됩니다. 저는 판사라면 모름지기 개개 사건이라는 습설의 무게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이를 가득 품에 안은 채 부러질 듯 휘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눈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면 그 눈을 빨리 털어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변론주의에 기대는 겁니다.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입증하지 않으면 패소를 선언하는 것이 변론주의입니다. 반대로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자 판사가 당사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입증을 촉구하는 석명권(釋明權)이라는 게 있습니다. 변론주의에 기대면 판사의 업무량은 줍니다. 반대로 석명권을 발동할 경우엔 양심의 가책은 덜지만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죠. 그 무게를 짊어지되 결코 부러지지 않도록 양자의 균형을 유지하는, ‘휘어진 소나무 같은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1년에 700건 가까운 판결을 내리면서 그때그때 마주치는 사건에 대해 변론주의와 석명권 가운데 무엇을 적용할지를 판단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다. 하지만 판사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고, 또 충실한 재판보다 신속한 재판을 원하는 국민 정서가 바뀌기 전까지는 판사 개개인의 직관적 판단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판결 과정에서 이상적인 것은 모든 기록을 살펴본 뒤 귀납적 판단을 내리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대부분 먼저 가설을 세워놓고 구체적인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서 가설이 틀렸는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연역적 판단을 내립니다. 평소 인문학적 소양과 판례, 법리에 대한 감을 키워놓지 않은 채 이런 연역적 판단을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선입견과 편견에 빠지기 쉽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으로 오판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마음을 열어놓고, 책을 읽고 영화도 보면서 정의에 대한 본질을 고민하며 옳고 그름을 예민하게 판단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는 책에서 이를 ‘비정 속에 비정을 곱씹으면서도 끝내 비정을 낳지 않으려 몸서리치는 선승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목에선 ‘일상적인 공무원의 삶과 국민이란 신을 모시는 신의 영역을 주재하는 사제의 삶의 간극을 줄이는 구도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도 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까 싶어 이런 사족도 달았다. ‘공무원이면서 사제인 자, 피터 파커이면서 스파이더맨인 자, 클라크 켄트이면서 슈퍼맨으로 사는 자’라고.
“국민에게 앙형 이유 설명하라”
[지호영 기자]
선승이나 수도승처럼 살아가는 판사가 많다지만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불리던 사법부의 위신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책에도 ‘이 글을 쓸 무렵, 대한민국 판사는 모두 아팠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면서 ‘‘거점법관’을 두고 ‘동향파악’을 하지 않더라도, 평판이라는 자기 암시의 기제를 심고, 연임과 인사상 불이익으로 겁박하지 않더라도, 좋은 보직과 승진이라는 당근이 없어도, 우리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시대정신’이라 표현한 국민의 법 감정과 배치되는 판결이 여전히 많다고 국민은 느낀다. 라면 10개와 현금 2만 원을 훔쳤다고 징역 3년6개월형이 선고되는 반면, 수십억 원을 횡령한 재벌에겐 집행유예가 언도된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결, 동거녀를 때려 살해한 뒤 콘크리트로 암매장한 남성에겐 징역 3년, 미성년자인 딸을 성추행한 교사를 살해한 엄마에겐 징역 10년이 선고되는 ‘남로여불 판결’….
박 판사의 설명에 따르면 판사의 해석은 법률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법률 제정 당시 여론의 입맛에 맞추다 보니 형량의 불균형이 발생한 입법적 모순을 판사 개인의 문제로 투영한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라면도둑의 경우 여러 차례 누범이라 7년형까지 살게 된 것을 해당 판사의 작량감경(酌量減輕·재량에 의한 감형)으로 형량을 최대한 줄인 결과였다. 횡령의 경우 초범에겐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되는데 이를 단순 비교하면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판 기록은 대부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기되고 판결문만 영구 보존됩니다. 그런데 변호사 시절은 물론, 판사가 된 지금도 판결문만 읽어서는 그 사건의 진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판결문은 해당 법적 판단에 도달하게 된 법리적·형식적 논리 구조만 담겼기 때문이죠. 그래서 양형 이유가 중요합니다. 해당 재판과 관계된 구체적인 인간과 그들의 고통이 담겨지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낭비할 시간이 아깝다면서 간소하게 쓰거나 아예 공란으로 비워두는 판사님이 많습니다. 형사합의부 판결에선 의무지만 형사단독부 판결에선 생략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법관은 국민에게 설명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왜 그런 판결이 나오게 됐는지. 사법부가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단숨에 되찾을 길은 없습니다. 긴 호흡으로 차곡차곡 쌓아가야 합니다. 저는 그 첫걸음으로 양형 이유를 충실하게 쓰자고 제안하는 겁니다.”
‘검사내전’을 쓴 김웅 검사는 대한민국 사법부에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처럼 판검사를 선거로 선출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직 판사로서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이 궁금했다.
“‘검사내전’을 읽다 할머니 사기꾼 대목까지 보고 그만뒀습니다. 너무 재미있어 도저히 이분처럼 흡인력 있는 글을 쓸 자신이 없어질 거라는 점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재판에서 무죄를 다투는 사기 피고인들을 믿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웃음)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는 우리 사법 시스템이 가진 가장 취약점이죠.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직업 법관제를 택한 것은 관료주의 아래서 사건을 신속하게 많이 처리해야 한다는 당시 시대정신에 부응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국민이 지금도 여전히 일 처리 속도와 저비용, 효율성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양자를 절충해 판검사 선발 과정 및 교육 과정을 강화해 인품이 훌륭한 직업검사와 법관을 등용하고,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면서 잘라내는 방향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은 사랑처럼’
실제로 만나본 인간 박주영은 수더분했다. 사건 기록을 보며 남몰래 눈물 흘릴 때가 많다고 속삭이는 남자. 법과 정의로 먹고살지만 정작 정의가 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판사. 책을 내고 난 뒤 유명해져 출세하겠다는 딴마음을 품을까 봐 아내로부터 경고를 들었다며 “제 깜냥이 딱 여기까지입니다”라고 스스로 다짐하듯 말하는 남편. 판사로서 너무 채신머리없어 보이진 않느냐고 걱정했지만 반대로 그래서 판사에 대해 없던 친근감이 생기게 하는 그의 모습에서 책에 인용된 영국 시인 W. H. 오든의 시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그러나 차라리 법을 정의할 수 없다면 자랑스럽게 법은 마치 사랑 같다고 말하리라. 사랑처럼 어디 있는지 왜 있는지 알지 못하고, 사랑처럼 억지로는 안 되고, 벗어날 수도 없는 것, 사랑처럼 흔히 울지만, 사랑처럼 대개는 못 지키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