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34주 만에 상승세로 전환됐는데 강남구 재건축 아파트가 상승세를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동아DB]
다른 지표도 미세하지만 상승 추이를 보이고 있다. 온라인 종합부동산포털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전주 대비 0.01% 상승했다. 특히 강남구는 0.14% 올라 2위인 강동구(0.08%)와도 다소 격차를 보이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KB국민은행이 6월 10일 발표한 서울 아파트 매수 우위지수 역시 52.2로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4월 29일 올해 들어 최저치인 38.1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오르는 추세다.
34주 만에 상승 전환, 강남 재건축이 견인
지난해 9월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대책은 2017년 8·2 부동산대책보다 한층 강화된 역대급이었다. 세부적으로 △공시가격 현실화로 보유세 인상 △투기·투기과열지구 매입자금 기금 대출 중단 △임대사업자 혜택 축소 △2주택 이상 전세대출 보증 요건 강화 △투기과열지구 자금조달계획서에 현금 증여 등 신고사항 추가해 실효성 강화 △3기 신도시 공급계획 발표 등이다. 세금, 대출, 청약, 임대를 총망라한 정책에 시장의 과열된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삽시간에 꺾였다.상승장을 주도하던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집값 역시 하락세로 전환돼 호가가 수억 원씩 떨어진 급매물이 나오기도 했다. ‘번호표 뽑고 기다려야 한다’던 대기 수요는 급매물이 나오자 일제히 관망세로 돌아섰다. 이후 올해 1분기까지 잠잠하던 대기 수요가 4월 들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달 사이 지역별로 급매물이 소진되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바닥을 찍고 소폭 오르는 분위기다.
지난해 최고가를 뛰어넘은 재건축 단지도 나왔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 전용면적 47㎡는 5월 7일 21억4000만 원에 거래되면서 전고점인 19억9500만 원을 넘어섰다. 2월 최저 거래 가격인 16억2000만 원과 비교하면 5억2000만 원이 뛰었다.
해당 단지의 경우 물량이 풀리자 대기 수요가 한꺼번에 몰렸다.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에 따라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단지는 조합 설립 시점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10년 이상 보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조합원 매물은 지위 양도가 가능하다. 또 사업시행인가 후 3년 이내 착공하지 못한 재건축 아파트는 착공 전까지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다. 개포주공1단지는 2016년 4월 28일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는데 이주와 철거 등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아직까지 착공하지 못한 상태로, 연말에야 착공될 것으로 보인다. 4월 28일부터 연말까지는 거래가 가능한 셈이다. 보유세 부담을 느낀 일부 다주택자의 매물이 시장에 나왔고, 매수를 기다리던 이들이 순차적으로 계약하면서 매매가가 조금씩 올랐다. 실제로 전용면적 43㎡의 경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거래량은 단 2건(10, 3월)에 불과했지만 올해 4~5월 두 달에만 14건이 거래됐다.
바닥 심리 작용, 저가 매수세 유입
강남 3구 내 일반 아파트 역시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수억 원씩 떨어지다 최근 가격을 회복하는 추세다. 사진은 서초구 반포자이 아파트. [동아DB]
강남권을 중심으로 가격 반등이 시작된 것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가격 바닥 심리’가 대기 수요를 자극했다고 본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 팀장은 “9·13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6개월간 가격 조정이 이뤄졌고, 강남권의 경우 ‘이 정도 가격이면 바닥’이라는 심리가 작용해 저가 매수세가 시장에 유입됐다. 또 5월 7일 3기 신도시 공급계획이 완료되면서 ‘강남 대체지는 없다’는 것을 확인한 대기 수요가 매수세로 돌아선 것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3기 신도시 공급지역의 면면을 살펴보면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 등 4개 지역 모두 서울 북쪽과 서쪽에 위치해 있다. 유일하게 하남 교산이 강동에 위치하나 위례신도시보다 강남 접근성이 떨어진다. 과천지구가 그나마 강남에 가장 인접해 있지만 공급량이 7000가구에 불과해 신도시라 부르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3기 신도시 공급계획 발표 당시 ‘강남권 대기 수요를 흡수할 만한 신도시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물음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특정지역(강남)에 살아야 주거 만족도가 높은 나라가 아니라, 어디에 살아도 주거 만족도가 높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과 관계없이 시장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3기 신도시 공급계획 발표 이후 ‘강남의 희소성’은 더욱 높아졌고, 시중의 유동자금은 강남 부동산으로 또다시 몰리는 형국이다.
금리인하 가능성, 불확실성 해소 등 상승 요인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역시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1.75%로 지난해 11월 이후 변동이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경제지표 부진을 이유로 7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우리나라도 악화된 국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3분기(7~9월) 중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물론 금리가 낮아진다 해도 정부가 대출을 규제하고 있어 다주택자의 신규 대출은 쉽지 않다. 그러나 무주택자와 1주택자가 저금리를 발판으로 매수에 나설 개연성도 높다. 통상적으로 거래량이 늘어날 경우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어 시장 불안 요소로 지목된다.
4월 공동주택 공시가격 확정 이후 불안 요소가 제거된 것도 집값 상승 원인으로 거론된다. 김 팀장은 “다주택자의 경우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이번에 공시지가 인상이 현실화됐지만 우려와 달리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때문에 재산세 부과 시점인 6월 1일 이후 다주택자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는 기존 전망과 다른 방향으로 시장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지난해 9월 이전과 같은 부동산시장 과열 양상은 없으리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강남권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도 “최근 호가가 올랐지만 지난해 최고가 수준까지는 무리”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초구 반포동 R부동산공인중개업소 실장은 “9·13 부동산대책 이후 올해 3월까지 매수세가 뚝 끊겼다. 전용면적 84㎡ 호가가 2억~3억 원 떨어졌을 때도 반응이 없다 4월부터 하나 둘 거래됐다. 지금은 또 급매가 싹 들어갔다. 서울 집값이 다시 오른다는 언론보도 때문인지 집주인들이 호가를 지난해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갭이 1억 원가량 벌어져 매수세가 붙지 않는 데다, 팔려는 사람도 최근 집값이 오름세라 가격을 굳이 낮추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집값 상승 시 정부 규제 또 나올 수 있어
3기 신도시 공급 예정지가 강남 대기 수요를 흡수할 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은 고양 창릉지구 전경. [동아DB]
이 때문에 다주택자는 집값 상승세를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강남구 개포동과 서초구 반포동에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한 70대 다주택자 A씨는 “20년 전 은퇴 후 노후 생활비 마련용으로 매입한 재건축 아파트들이 이렇게까지 오를 줄 몰랐다. 집값이 오르면 보유세만 더 내야 하는 실정이라 좋을 것 하나 없다. 근로 수입이 없기 때문에 세금이 오르면 임대료를 올리는 수밖에 없다. 죽기 전까지 보유하다 자녀들에게 양도할 생각이라 시세차익에도 관심 없다. 집값이 더는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강남 집값 상승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정부 규제로는 억누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강남은 교통·교육·편의시설 등 여러 면에서 주거환경이 완벽한 곳으로 사실상 대체지가 없다. 주거 이동의 정점에 있는 것이 강남 아파트다. 돈을 모아 이쪽으로 이사하려는 유효 수요가 늘 존재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강남 집값은 우상향할 수밖에 없다. 집값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부가 강남 집값을 누르는 데 치중하기보다 수도권 주택 공급 방안을 지속적으로 이행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