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ON THE STAGE

불친절한 말괄량이 삐삐

청소년극 ‘영지’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9-06-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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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청소년’ 하면 자연스레 중고교생이 떠오른다. 하지만 청소년은 11~18세의 성장기 아이를 가리킨다.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사실 아동이라기보다 청소년에 가깝다. 이들 10대 초반의 학생을 주 관객층으로 하는 청소년극 ‘영지’(허선혜 작·김미란 연출)가 관객과 만나고 있다. 

    연극의 배경은 가장 깨끗한 동네 1위로 뽑힌 완전무결의 ‘병목안’ 마을. 이곳에 11세 영지(김수빈 분)가 이사 온다. 마을 사람들은 평범함과 거리가 있는 영지네 가족을 예의주시한다. 하지만 영지의 부모님을 좀처럼 만날 수 없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한 몸에 받는 효정(박소연 분)과 모범생 소희(전선우 분)는 영지가 알려주는 신기한 놀이와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이를 통해 겉만 번지르르한 마을의 문제점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이를 두려워한 어른들은 모든 화살을 영지에게 돌린다.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주인공 영지는 스웨덴의 유명 아동문학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1907~2002)의 ‘말괄량이 삐삐’(원제는 삐삐 롱스타킹)의 주인공과 비슷한 인물이다. 전 세계 독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삐삐는 기발한 상상력과 명랑하고 엉뚱한 매력을 가진 아웃사이더다. 하지만 특이한 인물과 달리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는 평이한 권선징악이다. 이것이 삐삐가 어린 학생들을 위한 시리즈로 오랜 기간 자리 잡을 수 있던 이유다. 확실하고 단순한 메시지 덕에 아웃사이더 삐삐의 기행에 대한 독자들의 우려는 단숨에 불식된다. 

    반면 ‘영지’의 메시지는 ‘말괄량이 삐삐’처럼 명료하지 않다. 영지와 친구들은 ‘환생’을 부르짖으며 공연을 끝낸다. 누가, 왜, 어떻게 환생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청소년극의 주제가 반드시 교육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청소년의 가슴에 꽂힐 메시지는 공연 안에서 친절하게 설명돼야 한다. ‘영지’의 메시지는 불친절하다. 국립극단 제작진이 극을 올리기 전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를 읽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만 확인했어도 10대 초반 관객에게 이런 난해한 연극을 보여줄 용기는 내지 못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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