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숙주와 기생충의 共生이 현실이라면

영화 ‘기생충’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9-06-10 09: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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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개봉 일주일 만에 450만 관객을 돌파했다(이하 스포일러 포함). 앞으로 더 많은 관객이 찾을 이 영화는 참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매우 재밌다’는 감상평이 주를 이루지만,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는 사람도 많다. 한 사람의 관객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추정, 분석해본다. 영화는 식구 넷이 모두 백수로 형편이 어려운 기택(송강호 분) 가족이 박사장(이선균 분) 집으로 한 명씩 일자리를 얻어 들어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정면에서 확인하는 리얼한 빈부격차

    첫째, 권선징악의 무너짐이다. 

    어릴 적 읽은 동화책과 그간 봐온 수많은 영화를 떠올려보자. 동화책 속 주인공은 나쁜 무리의 방해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영화 속 주인공은 온갖 역경을 이겨내 악당들을 물리친다. 물론 주인공을 돕는 착한 조력자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래, 정의는 역시 승리하게 돼 있어”라는 믿음을 다시 한 번 갖게 된다. 물론 가끔씩은 “왜 현실은 동화나 영화와 달리 나쁜 사람들이 더 잘살까” 하고 실망하지만, 그래도 정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진 않는다. 

    ‘기생충’은 불편한 진실을 부각한다. 악한 쪽은 가난한 자고, 그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부자를 해친다. 물론 처음부터 맘먹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로 속이려는 의도는 처음부터 분명했다. 비록 박사장이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면모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기택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적은 없었다. 단지 기택의 열등감을 의도치 않게 자극했을 뿐이다. 결말에 이르러 영화는 법치주의를 따르지도 않는다. ‘기생충’ 뒤를 이은 흥행 성적 2위의 ‘알라딘’이나 최근 1300만 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결말과 아주 대조적이다. 

    둘째, 빈부격차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빈부격차 문제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도무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 간단치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고 어느 정도까지는 빈부격차를 수용할 만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쉬운 것도 아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특히 자신이 속한 사회경제적 지위에서 벗어나 사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이처럼 예민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기택 가족은 바퀴벌레가 나오는 반지하 방에서 이웃의 와이파이를 훔쳐 쓰고, 피자박스 접기 일거리로 치킨과 맥주를 간신히 사 먹으며, 길거리 소독차의 소독약을 집 안에 들여 위생을 도모한다. 반면 박사장 집에는 온갖 신선한 과일이 넘쳐나고, 라면에도 한우 채끝등심을 듬뿍 넣어 먹는다. 한편 기생충의 적은 기생충이다. 가사도우미 문광(이정은 분)이 남편을 몰래 지하공간에 숨겨놓은 사실이 알려져 기택 가족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놀라움과 함께 커다란 슬픔마저 느껴진다. 문광은 새로 온 가사도우미 충숙(장혜진 분)에게 애원한다. “우리 남편에게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음식을 주면 안 될까요?” 기생충에게 기생하고자 하는 더 작고 약한 기생충의 존재라니…. 

    셋째, 거짓말과 배신의 만연이다.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의 거짓말과 배신의 정도를 가늠하면 어느 정도일까. 과거보다 더 높아졌을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불신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거짓 증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명백한 사실 앞에서 끝까지 거짓말을 주장해 법적 책임을 회피하며, 경쟁자를 거짓말로 모함하고, 누군가의 돈을 노려 거짓을 발설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지는 않은지 걱정된다. 서로 뜯어 먹으려 하고, 서로 약점을 후벼 파며, 급기야 서로 믿지 못해 경계하고 불신하는 사회는 지옥 같은 세상이다. 

    영화로 돌아가보자. 기택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와 동생 기정(박소담 분), 기택과 그의 아내 충숙 모두 거짓말과 배신, 음모로 박사장 집에서 한 자리씩 얻어낸다. 이 과정에서 다치거나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길을 간다. 한마디로 일가족 사기단이다.

    ‘화목한 가족’, 현실보다는 이상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사진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넷째, 냄새라는 원초적 감각의 중요성이다. 

    동물은 냄새로 먹잇감을 쫓고 천적의 출현을 감지하며 새끼나 어미의 존재를 확인한다. 냄새가 이로운지 해로운지에 따라 동물의 감정 상태 또한 달라진다. 후각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감각의 한 형태인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기는 엄마 품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평온함을 느끼고, 사랑에 빠진 남녀는 서로의 냄새를 향기롭게 여긴다. 반면 씻지 않은 몸 냄새, 땀 냄새, 입 냄새, 대소변 냄새 등은 우리에게 불쾌감을 준다. 심한 경우 혐오감으로 번진다. 

    기택의 냄새를 불쾌하게 여긴 박사장과 그의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차 안에서 그러한 기색을 표출한다. 밀폐된 실내공간이니 냄새를 피할 길이 없었을 테다. 부부는 차문을 내리고 손을 휘저어 냄새를 없애고자 한다. 기택은 이들의 찡그린 얼굴을 보고 혼잣말을 들었다. 여기서부터 기택의 복수심이 싹튼 게 아닐까. 지배계급의 착취가 아닌 혐오가 피지배계급을 자극해 봉기하게 만든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기생충’에서 형성된다.

    다섯째, 가족의 중요성이다. 

    영화에서는 묘하게도 등장하는 모든 가족이 서로 똘똘 뭉친다. 현실 세계에서는 모든 가족이 화목하지 않고, 심지어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기생충’에서만큼은 예외 없이 식구끼리 사이가 좋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현실을 넘어선 이상적 모습이다. 기택 가족은 서로를 위하면서 끌어주고, 문광은 경제능력을 상실한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박사장도 아내와 아이들을 정성스럽게 챙긴다. 그나마 보기 좋은 부분이었다. 

    ‘기생충’에서 벌어진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실제로 일어난다면 매우 끔찍할 것이다. 혹여 비슷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누군가는 숙주가, 또 누군가는 기생충이 되는 것이 무척 싫고 불편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면 숙주와 기생충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기생충이 숙주를 죽이면 기생충도 죽는다. 숙주가 기생충을 없애면 더 강력한 기생충이 침범한다. 영화에서 씁쓸한 현실을 확인하고 나왔기에 많은 이가 ‘기생충’이 마냥 재밌기만 하지는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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