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술집. 다양한 와인이 구비돼 있다(왼쪽). 야마야 주류 가게의 와인 코너. [사진 제공 ·김상미]
주변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하니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일본은 와인 천국일까. 직접 확인하고자 지인들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와 야마나시를 방문했다.
숙소는 교통이 편리하고 상권이 밀집한 신주쿠로 정했다. 여장을 풀고 근처 주류 가게부터 들렀다. 큰 슈퍼마켓 규모 정도인 가게에는 맥주, 사케,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이 있었는데, 그중 와인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제일 먼저 가격에 눈이 갔다. 저가 와인은 우리나라와 가격이 비슷했고, 고가 와인일수록 저렴했다. 한국과 일본의 주류세 차이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술 가격에 비례해 세금이 붙지만, 일본은 알코올 함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다.
돈가스·스키야키 식당에서도 와인 즐길 수 있어
샤토 메르시앙의 샤르도네 와인과 메를로 와인들. [사진 제공 ·김상미]
미쓰코시백화점 지하의 와인 코너. 와인을 잔술로 즐길 수 있다. [사진 제공 ·김상미]
에노테카 와인숍은 마치 와인 거리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시음 코너를 지나자 와인 판매대가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된 것은 로제 와인.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로제 와인 붐이 일본에도 상륙한 모양이었다. 일본 와인 비중도 상당했다. 메이지유신 때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규모와 다양함이 놀라운 수준이었다.
저녁때가 다 돼 신주쿠로 돌아왔다. 이곳의 백화점은 어떨지 궁금했다. 마침 문 닫을 시간이어서 여러 가지 간편식을 10% 할인해 팔고 있었다. 음식을 이것저것 담고 샴페인도 한 병 골랐다. 호텔로 돌아와 와인과 음식을 펼치니 그럴싸했다. 약 7만 원으로 맛있는 만찬을 즐겼다.
야마나시는 온천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온천욕으로 여독을 풀고 일본 와인을 즐기는 것도 일본 여행에 재미를 더한다. [사진 제공 ·김상미]
샤토 메르시앙의 시니어 와인메이커 후지노 씨가 야마나시에서 재배하는 포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42년 역사의 일본 와이너리 ‘샤토 메르시앙’
샤토 메르시앙의 와인 박물관. 1904년에 지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양조장이다. [사진 제공 ·김상미]
머스캣 베일리 A로는 레드 와인을 만드는데, 우리가 평소 먹는 식탁용 포도의 향미가 강해 맛이 익숙하고 편했다. 산딸기, 크랜베리 등 베리류의 향미가 경쾌하고 타닌도 적당하며 뒷맛이 깔끔해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맞는 타입이었다.
샤토 메르시앙 와인 박물관 내부. 과거에 사용한 오크통과 그동안 생산한 와인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 ·김상미]
우리나라처럼 여름이 덥고 습한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와인을 만들 수 있는지 묻자 후지노 씨는 야마나시가 산으로 둘러싸여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와인 품질이 비단 자연에서 온 것만은 아닐 터. 일본은 와인을 생산한 지 140년이 넘었고, 와인 소비가 본격화된 것도 1964년 도쿄올림픽 때부터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 와인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국산 와인의 품질도 날로 나아지고 있어 앞으로 기대해볼 만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일본에서 와인을 체험해보니 예상한 것보다 격차가 크지 않았다. 다만 시음 코너 등 와인을 저렴하게 즐길 곳이 많다는 점은 부러웠다. 일본을 여행할 때 가볍게 와인 한 잔 즐기거나 일본 와인을 체험해본다면 좀 더 색다른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