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미의 와인 포 유

가격은 한국과 비슷, 규모와 다양함은 놀라운 수준

정말 일본 와인은 싸고 맛있을까

  •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9-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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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술집. 다양한 와인이 구비돼 있다(왼쪽).  야마야 주류 가게의 와인 코너. [사진 제공 ·김상미]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술집. 다양한 와인이 구비돼 있다(왼쪽). 야마야 주류 가게의 와인 코너. [사진 제공 ·김상미]

    “일본은 와인이 싸더라고요. 맛있는 와인 많이 마시고 왔어요.” 

    주변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하니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정말 일본은 와인 천국일까. 직접 확인하고자 지인들과 함께 3박 4일 일정으로 도쿄와 야마나시를 방문했다. 

    숙소는 교통이 편리하고 상권이 밀집한 신주쿠로 정했다. 여장을 풀고 근처 주류 가게부터 들렀다. 큰 슈퍼마켓 규모 정도인 가게에는 맥주, 사케, 위스키 등 다양한 술이 있었는데, 그중 와인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제일 먼저 가격에 눈이 갔다. 저가 와인은 우리나라와 가격이 비슷했고, 고가 와인일수록 저렴했다. 한국과 일본의 주류세 차이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술 가격에 비례해 세금이 붙지만, 일본은 알코올 함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다.

    돈가스·스키야키 식당에서도 와인 즐길 수 있어

    샤토 메르시앙의 샤르도네 와인과 메를로 와인들. [사진 제공 ·김상미]

    샤토 메르시앙의 샤르도네 와인과 메를로 와인들. [사진 제공 ·김상미]

    식당에서 메뉴판을 볼 때도 와인이 있는지 찾아봤다. 돈가스집도, 스키야키집도 모두 와인 몇 가지는 갖추고 있었다. 와인이 상당히 보편화된 모습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곳은 야식을 먹으러 찾아간 술집이었다. 여러 가지 술이 구비돼 있었지만 와인이 가장 많았다. 가격도 저렴해 가벼운 안주 몇 가지와 스파클링 와인 한 병을 주문했는데 5만 원이면 충분했다. 

    미쓰코시백화점 지하의 와인 코너. 와인을 잔술로 즐길 수 있다. [사진 제공 ·김상미]

    미쓰코시백화점 지하의 와인 코너. 와인을 잔술로 즐길 수 있다. [사진 제공 ·김상미]

    다음 날은 긴자의 백화점과 쇼핑몰을 둘러봤다. 미쓰코시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 들어서자 간단한 안주와 함께 와인을 잔술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눈에 띄었다. 긴자식스 쇼핑몰 지하의 에노테카 와인숍에도 500엔(약 5400원)부터 1500엔(약 1만6200원)까지 다양한 가격으로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코너가 있었다.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기는 문화가 상당히 정착된 듯했다. 



    에노테카 와인숍은 마치 와인 거리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시음 코너를 지나자 와인 판매대가 나타났다.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된 것은 로제 와인.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로제 와인 붐이 일본에도 상륙한 모양이었다. 일본 와인 비중도 상당했다. 메이지유신 때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규모와 다양함이 놀라운 수준이었다. 

    저녁때가 다 돼 신주쿠로 돌아왔다. 이곳의 백화점은 어떨지 궁금했다. 마침 문 닫을 시간이어서 여러 가지 간편식을 10% 할인해 팔고 있었다. 음식을 이것저것 담고 샴페인도 한 병 골랐다. 호텔로 돌아와 와인과 음식을 펼치니 그럴싸했다. 약 7만 원으로 맛있는 만찬을 즐겼다. 

    야마나시는 온천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온천욕으로 여독을 풀고 일본 와인을 즐기는 것도 일본 여행에 재미를 더한다. [사진 제공 ·김상미]

    야마나시는 온천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온천욕으로 여독을 풀고 일본 와인을 즐기는 것도 일본 여행에 재미를 더한다. [사진 제공 ·김상미]

    다음 날 야마나시현으로 이동했다. 야마나시는 신주쿠에서 기차로 약 1시간 반 거리인 와인산지다. 이곳은 일본 와인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으며 온천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야마나시에 소재한 약 80개의 와이너리 가운데 우리가 방문한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샤토 메르시앙(Chateau Mercian)’이었다. 

    샤토 메르시앙의 시니어 와인메이커 후지노 씨가 야마나시에서 재배하는 포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샤토 메르시앙의 시니어 와인메이커 후지노 씨가 야마나시에서 재배하는 포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와이너리에 들어서자 시니어 와인메이커 후지노 씨가 반겨줬다. 후지노 씨는 1979년 입사해 40년째 샤토 메르시앙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샤토 메르시앙의 전신은 1877년 설립된 대일본 야마나시 포도주 회사다. 이 회사는 일본 최초 사설 와이너리로 19세기 말엽 포도 재배와 와인양조를 배우고자 젊은 인력을 유럽으로 파견하면서 기반을 다졌다. 와인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건물은 1904년에 지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양조장으로 2010년까지 와인 숙성실로 이용됐다고 한다.

    142년 역사의 일본 와이너리 ‘샤토 메르시앙’

    샤토 메르시앙의 와인 박물관. 1904년에 지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양조장이다. [사진 제공 ·김상미]

    샤토 메르시앙의 와인 박물관. 1904년에 지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양조장이다. [사진 제공 ·김상미]

    샤토 메르시앙은 아키타, 후쿠시마, 나가노, 야마나시에 포도밭과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고, 야마나시에서는 일본 토착 품종인 고슈(甲州)와 머스캣 베일리 A(Muscat Bailey A)를 주로 생산한다. 고슈는 1300년 전 캅카스 지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일본으로 전해진 품종이다. 껍질이 핑크색이어서 화이트 와인과 오렌지 와인이 생산되는데, 화이트 와인은 껍질 없이 즙만 발효시켜 만들고 오렌지 와인은 발효시킬 때 껍질을 담가 색을 추출한다. 화이트 와인은 자몽, 라임 등 과일향이 신선하고 맛이 상큼했으며, 오렌지 와인은 사과, 감귤 등 과일향이 달콤하고 질감이 부드러웠다. 고슈 화이트가 회와 잘 어울린다면, 고슈 오렌지는 초밥과 즐기기 좋은 스타일이었다. 

    머스캣 베일리 A로는 레드 와인을 만드는데, 우리가 평소 먹는 식탁용 포도의 향미가 강해 맛이 익숙하고 편했다. 산딸기, 크랜베리 등 베리류의 향미가 경쾌하고 타닌도 적당하며 뒷맛이 깔끔해 다양한 음식과 두루 잘 맞는 타입이었다. 

    샤토 메르시앙 와인 박물관 내부. 과거에 사용한 오크통과 그동안 생산한 와인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 ·김상미]

    샤토 메르시앙 와인 박물관 내부. 과거에 사용한 오크통과 그동안 생산한 와인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제공 ·김상미]

    놀라운 것은 샤토 메르시앙의 샤르도네(Chardonnay)와 메를로(Merlot) 와인이었다. 샤르도네는 과일향, 신맛, 보디감 등 모든 요소가 균형을 잘 이뤘고, 메를로도 정교함과 탄탄함을 잘 갖추고 있었다. 아이콘급 메를로 와인인 옴니스(Omnis)는 농익은 과일향과 묵직한 보디감의 조화가 우아해 눈을 감고 마시면 잘 만든 보르도 와인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세계적인 와인매체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의 그랜드 테이스팅에 참가하는 유일한 아시아 와이너리다웠다. 

    우리나라처럼 여름이 덥고 습한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와인을 만들 수 있는지 묻자 후지노 씨는 야마나시가 산으로 둘러싸여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편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와인 품질이 비단 자연에서 온 것만은 아닐 터. 일본은 와인을 생산한 지 140년이 넘었고, 와인 소비가 본격화된 것도 1964년 도쿄올림픽 때부터다. 우리나라도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 와인이 대중화되기 시작했으며 최근 국산 와인의 품질도 날로 나아지고 있어 앞으로 기대해볼 만하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일본에서 와인을 체험해보니 예상한 것보다 격차가 크지 않았다. 다만 시음 코너 등 와인을 저렴하게 즐길 곳이 많다는 점은 부러웠다. 일본을 여행할 때 가볍게 와인 한 잔 즐기거나 일본 와인을 체험해본다면 좀 더 색다른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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