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단유필름]
고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식들은 다 떠나버린 지금, 지친 몸과 고독한 일상이 남았지만 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다.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한글, 그리고 시다. 삐뚤빼뚤 매일매일 새로운 글자를 창조하기도 하지만, 사투리를 말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투박하게 써내려간 짧은 시에는 일곱 할매가 평생에 걸쳐 다져온 지혜가 넘쳐난다.
“몸이 아프면 죽고 싶다가도 재미지게 놀다 보면 더 살아봤음 싶다”는 고백은 이들의 현재가 발견과 놀이로 충만하다는 증거다. 도시로 나간 아들에게 쓴 편지를 부치고자 난생처음 우체국에 가보고, 예전에 팔아버린 기특한 소를 그림으로 그려본다. 먼저 떠난 남편에게 수줍은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고, “가수가 되면 좋았을걸”이라며 노래경연대회에도 참가한다.
[사진 제공 · 단유필름]
할머니들의 사연은 구구절절할 것이다. 가족을 위한 희생, 고된 노동, 자녀에 대한 그리움, 홀로 살아가야 하는 힘겨움, 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거기에다 이 시골마을로 오게 된 젊은 여선생의 사연까지. 그러나 영화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그 사연들을 쏟아내지 않는다.
영화는 그 대신 과감한 선택을 한다. 현재를 충실하고 재미있게 살아가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러닝타임을 모두 할애한다. 인생 끝자락의 이별 준비가 아닌, 놀이와 공부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즐기고 있는 모습 말이다.
일곱 할매가 저마다 써내려간 시에는 글자를 알고 난 후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기쁨이 충만하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진 아픔은 관객 각자의 몫이다. 그래서 영화는 묘하게 행복하고, 묘하게 짠하다. 과거 칠공주를 결성했던 여고동창을 만나러 가는 영화 ‘써니’의 할매 버전 다큐멘터리다.
‘트루맛쇼’ ‘MB의 추억’ ‘미스 프레지던트’ 같은 사회적 이슈 추적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오던 김재환 감독이 처음으로 휴먼 다큐멘터리에 도전했다. 사람이 꽃보다 곱다는 걸, 늙은 얼굴도 참 아름답다는 걸, 그리고 그 마음속에 누구나 한가득 시상(詩想)이 있다는 걸 이 영화는 말해준다. ‘우리 엄마’를 그리던 할머니의 모습은 낯설다. 그들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나 보다. 주름이 깊게 팬 할매들의 얼굴에 환하게 퍼지는 웃음에서 그들 마음속에 숨어 있는 소녀들을 봤다. 즐겁게 나이 듦의 롤모델을 찾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