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제39차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 참석자들. 왼쪽부터 사바 알 아흐마드 알 사바 쿠웨이트 국왕, 술탄 빈 사드 알 무라이키 카타르 외교부 부장관, 파드 빈 마흐무드 알 사이드 오만 부총리, 살만 사우디 국왕, 하마드 빈 이사 알 할리파 바레인 국왕,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카타르는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국왕은 물론 무하마드 알 사니 부총리 겸 외교장관보다도 한 단계 아래 인물이 참석했다. [신화 | 뉴시스]
카타르 측은 일일 평균 원유 생산량이 약 61만 배럴(OPEC 전체 생산량의 2% 수준)에 불과하고 주력 수출 자원이 천연가스(세계 1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국)라 OPEC 활동이 사실상 무의미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사우디에 대한 반발과 더욱 적극적인 마이웨이 의지를 담은 정치적 결단이라는 해석에 무게중심이 더 실리고 있다.
12월 9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제39차 정상회의에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이 참석하지 않은 것도 화제다. 타밈 국왕은 사우디 측이 초청했는데도 GCC 정상회의에 불참했다. 중동 외교가에선 “당분간 단교 주도 국가들과 카타르의 화해를 기대하는 일은 어렵다는 게 다시 확인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이웨이 메시지 담은 ‘도하포럼’
12월 15일 열린 ‘도하포럼 2018’의 ‘뉴스메이커 인터뷰’ 세션에서 미국 언론인 로빈 라이트와 대화 중인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 [이세형 동아일보 기자]
도하포럼은 카타르의 주요 정부 부처(외교부, 재무부, 무역산업부 등)와 공공기관(카타르재단, 카타르대, 카타르국영석유회사)을 비롯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와 랜드연구소,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국제학부, 독일 뮌헨안보콘퍼런스(MSC) 같은 유명 기관이 참여하는 연례행사다. 카타르 정부는 이 행사를 중동의 ‘다보스 포럼’으로 육성하고자 한다. 카타르 안팎에선 이 나라 정부의 국정운영 어젠다를 엿볼 수 있는 자리로도 여긴다.
이번 도하포럼에서는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교장관과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을 초청한 것이 큰 화제였다. 사우디가 오랜 기간 갈등을 겪어왔고, 외교·안보 측면에서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두 나라의 외교장관을 ‘뉴스메이커 인터뷰’ 세션에 앉힌 것 자체가 상당히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차우쇼을루 장관은 사우디 당국이 올해 10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벌인 ‘자말 카슈끄지(사우디에 비판적이던 언론인) 살해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핵심 인사 가운데 한 명이다. 적어도 사우디 입장에선 현재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인물. 실제로 두 외교장관은 도하포럼 무대에서 노골적이고 강경하게 반(反)사우디 발언을 쏟아냈다.
“사우디 전투기들의 폭격으로 예멘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있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자리프)
“카슈끄지 사건은 계획된 살인이다. 우리는 사우디가 신속하고 투명한 수사를 진행하길 바란다.”(차우쇼을루)
도하포럼의 주요 세션에 패널로 참여한 카타르 정부의 핵심 고위 관계자들 입에서는 마이웨이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완곡한 발언들이 나왔다.
“카타르는 지난 18개월 동안(단교 기간) 많은 것을 배웠다. 단교가 계속돼도 (카타르는) 괜찮다.”(알리 알 쿠와리 무역산업장관)
“OPEC 탈퇴는 오래전부터 검토돼왔다. 카타르는 OPEC 탈퇴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고 판단했다.”(사드 알 카비 에너지장관)
GCC 탈퇴, GECF 강화로 이어지나
카타르 라스라판에 있는 천연가스 정제시설. 세계 1위 액화천연가스 생산국인 카타르는 전 세계 천연가스의 26%를 공급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런 GCC가 카타르 단교 사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마르완 카발란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정책분석파트 디렉터는 최근 알자지라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지난 18개월 동안 GCC의 존재 이유는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GCC의 부활을 위해선 큰 정치력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카타르가 마이웨이 행보의 일환으로 천연가스 생산·수출 국가모임인 가스수출국포럼(GECF)을 더욱 강화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카타르를 비롯해 이란, 러시아, 알제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GECF는 도하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그동안 GECF에선 천연가스의 생산량, 가격, 에너지 정책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타르의 OPEC 탈퇴가 이란, 러시아와 같이 사우디와 미국의 영향력이 반영되는 OPEC의 메커니즘에 불만을 갖고 있고 천연가스 생산량도 많은 나라들의 ‘GECF 기능 강화’ 움직임에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미 GECF의 핵심 국가 사이에 관련 대화가 진행되고 있으리란 분석도 나온다. 카타르의 인문·사회과학계열 대학원대학인 도하인스티튜트(DI)의 술탄 바라캇 ‘갈등과 인권 연구원’ 원장은 “향후 카타르가 이란, 러시아, 알제리와 어떤 식으로 협력해갈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됐다”고 말했다.
카타르가 핵심 국가 브랜드 중 하나로 내세우는 ‘중동의 교육·문화 허브 전략’에서도 앞으로 마이웨이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부분에선 카타르가 △2022년 월드컵 △알자지라방송 △에듀케이션시티(미국과 유럽 명문대의 분교를 유치해 구성한 교육·연구특구)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동 전문가는 “작은 나라가 시도하는 마이웨이 전략에는 적잖은 리스크가 따르고, 주변국들의 위치와 규모는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카타르는 어떤 형태로든 단교 주도국들과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형_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 있는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