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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외됐던 상위 10%, 썩 반기지 않아
아동수당 사전 신청 시작 일인 6월 20일 각 동주민센터는 이를 신청하기 위한 이들로 붐볐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아동수당 사전 신청을 하는 모습(왼쪽)과 송파구 오금동주민센터에서 한 주민이 아동수당 지급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 [뉴시스]
올해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던 소득 상위 10% 가정의 부모들은 바뀐 정책에 크게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거주하는 워킹맘 최모 씨는 6월 인터넷으로 아동수당을 신청했다. 맞벌이를 하는 데다 전세를 살고 있어 당연히 지급받을 줄 알았던 것. 그러나 석 달 뒤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최씨는 다소 실망했으나 소득 상위 10%에 들어간다고 하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서초맘 카페를 검색해보니 못 받는 사람이 더 많았다.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상위 10%에 들었다는 데 안심하는 기색도 보였다. 최씨는 “이 지역은 전용면적 82㎡의 평균 매매 가격이 20억 원, 전세가가 10억 원이라 못 받는 이가 더 많을 게 뻔했다. 내년부터 100% 지급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딱히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한 달에 10만 원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상위 1%만 걸러서 안 주면 좋겠다고 하더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반응이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고민 없이 퍼주기 식으로 나눠주는 게 무슨 의미냐는 이야기다. 서초구 서초동에 거주하는 전업주부 정모 씨는 “올해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만약 지급받았다면 아이들 이름으로 주식을 사려 했다. 식생활비로 써버리는 것보다 남겨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내년부터 100% 지급한다고 하니 좋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그 돈을 소득 하위 10%, 한부모 가정 등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더 주는 편이 의미 있을 것도 같다. 주말에 장 보고, 외식 한 번 하면 사라지는 돈인데 더 어려운 사람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는 선심성 포퓰리즘에 반감을 드러내며, 정부가 선별적 복지와 세금 감면 등 국민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정책을 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전업주부 박모 씨는 “솔직히 아동수당 지급 대상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전혀 관심 없었다. 한 달에 10만 원 받아봐야 애들 학원비도 안 된다. 1년에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차라리 세금이나 덜 걷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출산 가능 연령대의 국민이 무엇에 부담을 느끼고 왜 출산을 꺼려하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일 듯”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출산율 감소 속도 낮추는 데 도움”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 [뉴시스]
현재 아이 세대는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향후 노년층에 대한 부양 부담 의무가 커지고, 노년층에 비해 국가 혜택은 덜 받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역차별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출산율이 낮은 선진국은 대부분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31개국에서 아동수당 10만~20만 원을 준다. 이 가운데 20개국은 계층 구분 없이, 11개국은 고소득층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 지급한다. 지급 대상 연령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31개국은 대부분 만 15~20세에 해당하는 이들을 아동수당 지급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향후 우리나라도 지급 대상 연령을 점차 올릴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예산이다. 정부가 매년 예산을 책정해 국회 동의를 얻어 아동수당을 지급해야 하는데, 확대 지급하기로 한 만큼 국가 재정이 충분할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고소득층을 제외한 나머지 계층에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OECD 11개국 가운데 일부는 재정 상황이 열악해지자 정책을 변경했다.
고제이 보건사회연구원 미래전략연구실 사회재정연구센터장은 “영국, 프랑스는 재정 문제 때문에 고소득층을 제외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나라도 모든 사회적 지출을 줄인 다음 아동수당만큼은 마지막까지 보류하다 최종 논의 끝에 초고소득층만 제외했다. 또 상위 4%를 가려내는 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가 부모의 재산을 조사해 대상자를 가려내지 않고 신청주의를 적용했다. 즉 아동수당 지급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아동수당 지급이 출산율을 높이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전문가들은 아동수당이 출산율 감소 속도를 낮추는 데 기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제이 센터장은 “프랑스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1993년 1.65명까지 떨어진 합계출산율이 국가 지원으로 2010년 2.03명까지 오른 뒤 지난해 2.10명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0년 6명에서 1998년 1.48명으로 급격히 떨어진 후 지난해 1.05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경우다. 국민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출산하게 하려면 ‘아이는 사회가 같이 키우는 것’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야 한다. 당연히 아동수당 하나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회가 어느 정도 보조해준다는 인식이 생기고, 추가적인 복지 혜택이 뒷받침된다면 출산율 감소 속도 또한 차츰 둔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