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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회계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김모(25) 씨는 재직자 내일채움에 가입했지만 반쪽짜리 혜택밖에 누리지 못한다. 회사 측이 “사정이 어렵다”며 기업 납부금 월 20만 원 중 10만 원을 김씨 월급으로 충당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매달 12만 원인 적립금을 사실상 22만 원씩 내는 셈이다. 그는 “월급이 10만 원 깎이더라도 회사(10만 원)와 정부(18만 원)로부터 매달 28만 원씩 지원금을 받는 셈이라 회사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기부의 핵심 일자리 정책인 재직자 내일채움은 중소·중견기업에 1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다. 고용노동부(고용부)가 주관하는 ‘청년 내일채움공제’가 중소·중견기업에 갓 입사한 신입사원을 위한 제도라면, 재직자 내일채움은 중소·중견기업에 근무하는 기존 직원을 위한 것이다. 청년 인재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해 중소·중견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청년의 목돈 마련을 지원하고자 올해 6월 도입됐다.
고용부와 대비되는 중기부 실적
재직자 내일채움 참여율은 현재 저조한 편이다(표 참조). 중기부 관계자는 “12월 중순 현재 총 가입자 수가 2만 명 가량”이라고 밝혔다. 제도 도입 당시 중기부가 밝힌 올해 가입 목표치 4만 명의 절반 수준이다. 10월 말까지 이 제도에 가입한 기업도 8406개사에 불과하다. 6월 1일부터 10월 말까지 5개월간 청년 내일채움공제에 신규 가입한 기업이 1만7895개사, 가입자 수가 5만2464명인 것과 비교하면 실적이 매우 낮은 편이다.
재직자 내일채움에 대한 참여도가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기업 납부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에 가입한 기업은 청년 직원 인당 월 20만 원씩을 부담해야 한다. 반면 청년 내일채움공제의 경우 정부가 기업 기여금(2년간 400만 원)을 전액 지원해준다. 기업에게도 2년간 100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 납부금을 고려하면 재직자 내일채움은 청년 내일채움공제에 비해 메리트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직자 내일채움에 참여하되 ‘꼼수’를 쓰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김씨의 경우처럼 기업 납부금 일부를 직원 월급에서 삭감하거나, 재직자 내일채움 가입을 이유로 월급을 올려주지 않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기업 재직자는 “회사가 재직자 내일채움에 가입하는 대신 향후 몇 년간 월급 인상은 어렵다고 했다”고 전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기업 납부금을 직원 월급에서 제하면 안 되느냐는 몇몇 중소기업의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엔터테인먼트사에 재직 중인 강경민(26) 씨는 “기업 납부금이 있는 한 영세한 회사들은 재직자 내일채움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여건이 좋은 중소·중견기업 재직자만 정부 지원을 받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도 기업 납부금 때문에 재직자 내일채움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중기부는 기업 납부금을 낮추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견이다. 중기부 한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이 재직자에게 꾸준히 투자해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것이 제도의 취지”라며 “정부 예산이 한정돼 있어 기업 납부금을 낮추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단, 기업 규모에 따라 납부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회사가 재직자 내일채움에 가입한 대신 직원에게 기업 납부금 일부를 전가한 사실이 적발되면 공제는 중도 해지되고 해당 회사는 추후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중기부 관계자는 “재직자 내일채움에 가입한 회사가 직원의 월급에서 기업 납부금을 제한 사례는 아직 적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 재직자가 회사를 고발하는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다. 공제가 중도 해지되면 재직자도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양질 일자리여야 인재 몰린다”
정부는 앞으로 재직자 내일채움을 더욱 확대하기로 하고, 내년도 예산을 2207억 원으로 크게 늘릴 예정이다. 이는 올해 예산 897억 원(6~12월) 대비 23% 증액한 액수다. 그러나 최근까지 근무하던 서울 소재 중소기업에서 재직자 내일채움 가입을 거절당한 고모(25) 씨는 “기업이 매달 적잖은 금액을 부담해야 한다는 조건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일부 중소기업 위주로 혜택이 돌아간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중소기업 재직자들은 목돈 마련보다 ‘현실밀착형’ 정책을 주문한다. 중소 웹 개발업체에 근무하는 신모(25) 씨는 “야근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중소기업이 많은데, 이런 기업에 대한 감시 강도를 높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소 모바일광고 대행사에서 4년째 디자이너로 일하는 임모(25) 씨는 “내일배움카드로 배울 수 있는 양질의 직업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근 경남 창원 한 제조업체에서 퇴사한 이모(27) 씨는 “지방 중소기업 직원들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교통편”이라며 “이 문제를 해결해주면 지방 중소기업에서 일하려는 청년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생색내기 처방에 집중하기보다, 영세 중소기업의 판로를 개척해주는 등 기업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면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거기에 종사하려는 청년도 저절로 늘어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