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꿈의 오디오’로 불리는 골드문트의 오디오 시스템. [동아DB]
“명색이 음악평론가인데 제대로 된 오디오는 있어야죠”라며 웃던 한 지인이자 오디오 마니아의 말이 시작이었다. 나는 마치 위조학위로 교수를 하다 걸린 사람처럼 뜨끔해졌다. 그래도 꽤나 좋은 PC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집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그 소리에 감탄하곤 했는데 뜨끔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내 표정에 나타난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중하고 집요하게 오디오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집으로 초대해 자신의 시스템으로 음악을 들려줬다. 매시브 어택의 ‘Angel’ 도입부에 등장하는 비트에서 마치 스님이 죽비로 머리를 내려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며, 레베카 피전의 ‘Spanish Harlem’을 틀었을 때는 ‘입술이 보이는’ 체험을 했다. ‘뻥’이 아니다. 매우 오래된 일인데도 생생하다.
늪에 빠지다
2013년 한국을 방문한 스위스 오디오 브랜드 골드문트의 미셸 르베르숑 회장. [동아DB]
그는 여기엔 이런 것들이 있어야 한다며 뭘 더 사야 한다고 강권했다. 물론 늘 미소를 지으며. 순식간에 전원 케이블, 연결 케이블, 멀티탭, 대리석, 스파이크, 스탠드 등등으로 이어지는 자잘한 아이템들이 집에 쌓였다. 동났다고 생각한 예산이 화수분처럼 솟아났다.
물론 그때부터 은행 잔고 앞에는 마이너스가 붙기 시작했지만. 1분의 중고 거래를 위해 경기도 양평을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마음에 드는 중고 앰프를 집어 오려고 난생처음 보는 타인의 집에서 30분씩 음악을 들었다(그분의 아내가 짓던 싸늘한 미소도 기억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서울 상수동 좁은 원룸에 그럴싸한 시스템이 마련됐다. 그 또한 기뻐했다. 이상하게 남자들은 자신의 취미를, 그것도 돈과 시간이 드는 취미를 주변에 전파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 된다. 전파를 완수할 때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곤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당할 수 없지’라는 심리의 발현이 아닐까도 싶다. 당시, 그리고 지금 나에게도 무리인 돈을 들인 오디오는 새로운 세계를 선사했다.
그동안 듣던 음악들, 특히 녹음이 잘 된 음악들을 오디오로 들으면 마치 소셜미디어로만 알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의 오디오와 사랑에 빠졌다. 그 전의 스피커들이 ‘썸’이나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면, 이 오디오는 명백히 첫사랑이었다. 밖에 나가 술을 마시다가도 갑자기 라디오헤드의 ‘Paranoid Android’ 기타 솔로가 만들어내는 매트릭스가 생각나 집에 돌아가 듣고 다시 술을 마시러 나갔다. 그해 여름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참석차 긴 영국 여행을 했을 때 가장 생각나는 건 엄마도 누구도 아닌, 내 오디오가 뿜어내는 사랑의 소리였다.
처음으로 갖춘 그 시스템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많은 장소를 떠돌았다. 몇 번의 이사를 했다. 몇 번 짐을 줄여야 했다. 그래도 내 오디오와 관련된 건 하나도 남김없이 꼭 끌어안고 다녔다. 케이블 1mm도 버리지 않았다. 새로운 집을 꾸밀 때 최우선 고려 사항은 늘 오디오의 위치였다. 그걸 기준 삼아 다른 가구를 배치했다. 그래서 내가 살던 집의 공간 구성은 늘 기이했다. 물론 인테리어도 기이했지만 구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식으로 10년 가까이를 살았다.
‘나만 당할 수 없지’
미국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매킨토시의 진공관 앰프 MC2152. [매킨토시 홈페이지]
기존에 쓰던 시스템은 팔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귀찮고 번거로웠다. 혹은 첫사랑에 대한 미련이었다. 방치 과정에서 자잘한 문제가 생겼다. 1990년대 생산된 앰프인지라 세월 탓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용산까지 직접 들고 가 수리했다. 거금이 들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피커에 물려 있던 새 앰프를 뺀 후 케이블에 연결했다. 오랜만에 듣는 ‘그때 그 소리’가 반가웠다. 어떻게든 이 시스템으로 다시 돌아가볼까 생각했지만 생각만으로 공간이 확보되는 건 아니다. 더는 연애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그저 미련만 남은 사이가 된 것이다.
쓰지도, 팔지도 못하던 앰프와 CDT, DAC를 처분했다. 낯선 사람에게 내놓기를 주저하고 있던 차에 지인이 오디오에 관심을 갖게 됐다.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일단 스피커를 샀다고 했다. 안성맞춤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늪으로 향했다. 나 또한 제대로 된 오디오의 필요성을 역설한 건 물론이다. 그가 구매를 결정했을 때 내 일처럼 기뻐했던 것 또한 물론이다. ‘나만 당할 수 없지’라는 심리가 발현한 것 역시 물론이다.
햇수로 딱 10년을 채우고 내 첫사랑은 떠났다. 다른 남자에게, 다른 가족에게로. 그는 다음 날 이렇게 전했다. 처음으로 장만한 오디오 시스템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를 들은 그의 아내가 어디 시골에 집 짓고 내려가 음악이나 들으며 살자 한다고. 음악 듣기의 새로움을 깨달은 것이다.
오디오란 그런 것이다. 한순간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마성의 물건이다. 내가 갖고 있던 음악에 대한 개념을, 소리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리셋해버리는 신세계행 편도티켓이다. 개나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지인에게 분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 첫사랑이 다른 이에게 어떤 기쁨을 주는지, 안부처럼 묻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