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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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음반여행

눈과 손으로 음악을 고르는 시간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12-02 11:4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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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사카 음반여행

    사진 제공 · 김작가

    일본 오사카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는 많이 가봤어도 오사카는 처음이었다. 짧은 일정 중 짬을 냈다. 레코드 가게에 가기 위해서다. 주변 컬렉터들에게 몇 군데 추천받고 동선 등을 고려해 아메리카무라에 있는 두 곳을 골랐다. 꼭 사고 싶은 음반이 있던 건 아니었다. 구경을 하고 싶었다. 예전에 음반을 사러 일본에 가면 주로 CD(콤팩트디스크)가 많은 곳을 다녔지만 다시 LP(엘피반)로 옮겨 타고 난 후에는 첫 방문이었으니까. 게다가 오사카 레코드숍에의 컬렉션은 도쿄와는 또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으니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사이바시행 지하철을 탔다. 
    처음 간 곳은 타임밤 레코드였다. 큰 건물 지하를 통째로 쓰고 있었다. CD도 적잖았지만 LP가 방대했다. 록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답게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록음악이 세밀하게 구분돼 있었다. 수백㎡는 될 것 같은 매장에 온갖 세밀한 장르가 섹션별로 나뉘어 있다는 게 기가 찼다. 한 장 한 장 정성껏 비닐 포장을 하고, 간략한 설명과 가격이 적힌 라벨을 붙여놨다. 20년간 음악을 들었음에도 이름조차 생소한 아티스트들의 앨범이 즐비했다. 
    잡지에서나 보던 희귀음반도 많았다. 음반 상태와 음악적 가치 등을 따져 가격을 매겨놓았다. 이건 컬렉터 사이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엔, 특히 음원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낯설 것이다.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담고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 공장에서 갓 출시됐을 때는 모두 같은 가격을 갖고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보존 정도가 달라지고 상업적으로 얼마나 히트했는지 등에 따라 나중에 구하기 쉽거나 희귀해지거나가 결정된다. 각각의 음반이 단순히 같은 음악을 담고 있는 물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물성을 갖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중고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아이템이 다 그러하듯. 
    문제는, 비쌌다. 한두 장만 사고 말 거라면 지르고 싶은 음반이 적잖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양이냐 질이냐. 고민 끝에 양을 택했다. 가격을 우선시하기로 했다는 거다. 충분히 윈도쇼핑을 즐긴 후 나와서 킹콩 레코드(사진)로 향했다. 그곳은 온갖 장르를 다 취급하며 가격이 저렴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바로 근처에 자리한 킹콩 레코드는 듣던 대로 허름했다. 타임밤 레코드가 음반을 신주단지처럼 여기는 컬렉터의 사설 갤러리라면, 킹콩 레코드는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음반들을 소생시켜 쌓아둔 창고랄까. 록, 힙합, 일렉트로니카는 물론이고 아프리카부터 남미까지 월드 뮤직에 엔카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신성우 1집과 ‘사랑의 미로’가 담긴 최진희 음반까지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장점은 가격. 몇만 엔짜리 음반도 있었지만 1000엔 미만으로 살 수 있는 음반도 많았다. ‘뭘 살까’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가격만 봤다. 처음 보는 음반일지라도 가격이 맞고 커버가 괜찮으면 바구니에 담았다. 
    생각해보면 주말마다 서울 청계천에서 음반을 사던 1980~90년대에는 이 모든 일이 당연했다. 지금처럼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다는 열망은 강했다. 남들이 모르는 음악을 먼저 아는 게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오직 감으로 고른 음반에 어쩌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당장 친구들에게 으스댔다. 그렇게 음악을 배웠다. 음반가게는 광산인 동시에 학교였다. 음악을 고르는 건데 청각을 활용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는 오히려 그 덕분에 눈과 손가락, 즉 시각과 촉각만으로 좋은 음반을 고르는 감을 키우게 해줬다. 그 시대 음악 애호가는 다 그랬다. 
    양손 가득 음반을 들고 나오면서 그때의 무수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빨리 집에 가서 오늘 산 음반을 듣고 싶었던, 그래서 버스가 오늘따라 왜 이리 천천히 가나 초조해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오사카 한복판에서, 시간이 거꾸로 갔다. 퇴근하는 직장인과 관광객들로 뒤엉킨 도톤보리강 앞에서 담배 한 대를 물었다. 연기가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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