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맥주 여행/ 백경학 지음/ 글항아리/ 308쪽/ 1만6000원
포도주가 신의 선물이라면 맥주는 인간의 발명품이다. 책은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하며 가장 친숙한 술(음료)이 된 맥주의 역사, 그리고 맥주와 문명의 관계를 탐색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만든 수메르인은 인류 최초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맥주를 문명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엔키두는/ 음식 먹는 것을 몰랐네/ 맥주 마시는 법도 몰랐네/ 여인은 엔키두에게 말했지/ “음식을 들어요, 엔키두/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맥주를 마셔요. 이것이 이 땅의 관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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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에서 ‘말 오줌처럼 누렇고 (포도주에 비해) 싱겁다’고 폄하되기도 했던 맥주는 쉽고 빠른 제조 과정과 시원함, 상큼함으로 배고픈 이에겐 ‘마시는 빵’으로, 전쟁터 병사에겐 ‘용기를 북돋우는 음료’로 각광받았다.
맥주는 8세기 신성로마제국의 카를로스 황제가 가톨릭 수도원에 양조장을 건설하게 하면서 서서히 퍼져나갔고, 홉을 첨가하면서부터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빨리 발효돼 쉽게 상하는 맥주를 마시고 탈이 나는 사람이 적잖았다.
이어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한자동맹’이 맥주 대중화를 선언했다. 이때 맥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라거 맥주가 탄생했다. 낮은 온도에서 서서히 발효시킨 에일 맥주가 대세이던 시절, 고온에서 발효시켜 효모를 모두 죽인 뒤 걸러낸 투명한 맥주가 등장한 것. 최초의 라거 맥주는 필스너 우르켈이었다. 라거 맥주는 보관의 용이성 때문에 들불처럼 번졌고, 전 세계 맥주의 80%를 차지하는 대표 주자가 됐다.
책은 각 고장의 독특한 맥주와 그 문화도 소개한다. 인도로 보내려고 만들었다 미국에서 부활한 IPA(인디안 페일 에일), 기네스의 본고장 아일랜드, 10월이면 관광객 680만 명이 모이는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제국주의가 이식했으나 중국의 대표 맥주가 된 칭타오 등을 소개한다.
아울러 맥주를 사랑한 명사들도 다룬다. ‘맥주 한 잔을 위해서라면 명예를 버려도 좋다’고 한 셰익스피어, 맥주 양조사와 결혼한 마르틴 루터,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날 맥주를 먹고 쓰러진 아인슈타인 등 맥주와 명사의 일화를 보여준다.
저자는 1990년대 3년간 뮌헨대에서 독일 통일 문제를 연구하며 중세 맥주 양조술의 전통이 남아 있는 수도원과 맥주 공장을 순례했다. 그리고 귀국한 뒤 2003년 국내 최초로 하우스맥주를 직접 만들어 파는 맥줏집 ‘옥토버훼스트’ 종로점을 열기도 했다. 책 곳곳에서 저자가 체험한 독일 등 유럽 현지의 맥주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책 읽기 만보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