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뉴시스]
재판거래 의혹을 중심으로 법원행정처를 통한 재판 개입 의혹, 상고법원제 도입에 반대한 인사를 블랙리스트에 올려 불법사찰과 보복을 한 것 등은 결코 대법원이 희망하는 대로 조기에 종결될 일이 아니다.
책임이 중한 인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 그리고 처벌이 이어질 것이다. 처벌 후에는 현재 여당이 발의한, 법원행정처 폐지 및 대법원이 그토록 싫어하는 대법관 대폭 증원을 골자로 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수습의 길을 걷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이번 ‘사법농단 사태’를 통해 사법부를 움직여온 이들이 감춰온 진짜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과거 법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였다.
사법부는 조직 내에서 어떤 부정이나 부당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무흠결주의’를 내세워왔다. 지금 와서 보면 이는 조작된 신화였다. 그 신화의 나무 그늘에서 얼마나 많은 독버섯이 자라나 해악을 끼쳤는지 모른다.
국민의 실망은 부당한 재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현재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그의 수족으로 움직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처신은 보기에 딱할 정도다.
양 전 대법원장은 6월 1일 재임 기간 중 대법원 재판이나 하급심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관여한 바가 결단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속 드러나는 사정을 보면 그의 주장이 힘을 잃고 있다.
그들은 상고법원제를 추진한 것이 사익을 위한 일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잘못된 정책 결정과 집행이었음을 인정하고, 기꺼이 책임지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기대하는 판사의 품격이다.
그러나 어디 두 사람의 문제에 그치겠는가. 그간 법원행정처나 소속 법원장을 통해 재판 간섭을 받았을 숱한 법관이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사법부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명분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그들 역시 국민이 기대하는 법관의 품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