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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마님은 팔방미인이어야

타격부터 수비까지 전부 잘해야 인정받는 포수

  • |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kini@donga.com

    입력2018-07-2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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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자이언츠 주전 포수 나종덕.

    롯데 자이언츠 주전 포수 나종덕.

    “아예 처음부터 맞혀버리지 그랬어.” 빈볼을 맞을 뻔한 타자가 말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겠니….” 끝내 ‘빈볼 사인’을 이행하지 못하고 퇴장당한 투수가 답했다. 

    빈볼 시비 끝에 이런 대화가 오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좀처럼 보기 힘들다. 심지어 이 둘은 경기가 끝난 뒤 따로 만나 대화를 나눴다. ‘도대체 어떻게?’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저 타자 이름이 박경완(46·SK 와이번스 코치)이고, 투수가 김원형(46·롯데 자이언츠 코치)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올드 팬’이 적잖을 것이다. 

    두 선수는 전북 전주중앙초 6학년 때부터 학창 시절 내내 배터리로 짝을 이뤘다. 김원형이 먼저 쌍방울 레이더스의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김원형은 “박경완이 포수가 아니면 공을 던지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쌍방울은 결국 박경완을 연습생(현 육성선수)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계속 같은 팀에서 뛸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쌍방울은 1997년 겨울, 현금 9억 원과 선수 2명을 받는 대가로 박경완을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했다. 

    트레이드 발표가 나던 날 김원형은 스쿠터를 몰고 쌍방울 연고지이자 고향이던 전주 시내 곳곳을 소리치며 돌아다닐 정도로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도 지나지 않은 1998년 7월 26일 인천 도원야구장에서 9회 말 선두타자로 나선 박경완에게 빈볼을 던지라는 사인을 받게 된다. 이미 두 팀이 8회 말, 9회 초 한 차례씩 몸에 맞는 공을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김원형은 박경완에게 위협구는 던져도 빈볼을 던질 수는 없었다. 세 번째 공이 박경완의 등 뒤로 날아가면서 4심 합의 끝에 퇴장.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튿날 김원형에게 5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100만 원을 부과했다. 박경완이 아쉬워했던 이유는 처음부터 바로 빈볼을 던졌더라면 김원형이 퇴장당하지 않았을 테고, 추가 징계도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꾸로 김원형은 친구를 다치게 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포수에 대한 오해 너무 심하다”

    박경완 SK 와이번스 코치의 선수 시절 모습.

    박경완 SK 와이번스 코치의 선수 시절 모습.

    두 선수는 박경완이 2003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사실상 친정팀’인 SK 와이번스에 입단하면서 재회했다. 그 뒤로 2010년 김원형이 은퇴할 때까지 배터리로 손발을 맞췄다. 역대 최다승 6위(134승)로 커리어를 마친 김원형이 그저 ‘불알친구라서’ 박경완을 믿고 의지했던 건 아니다. 물론 박경완 역시 김원형에게만 인정받는 포수가 아니었다. 김원형은 이렇게 설명했다. 

    “경완이는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도 한 번도 투수 탓을 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에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왜 그렇게 해야 했고, 왜 제구에 미스가 났는지 이야기하기는 해도 절대 경기 중엔 안 했어요. 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경완이는 누구도 쉽게 근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화를 내려는 게 아니고, 모든 걸 자기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기 때문이죠. 그런 모습 때문에 투수들의 신뢰를 얻은 게 아닐까요?”(김정준의 ‘포수란 무엇인가’ 중에서) 

    이만수(60) 전 SK 감독의 생각은 ‘굳이 저럴 필요까지는 없다’에 가깝다. 1980년대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포수로 활약한 그는 7월 17일 페이스북에 ‘미국 생활 9년 동안 ‘나의 리드 때문에 경기를 졌다’는 포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글을 남겼다. 

    이 전 감독은 ‘(한국에서는) 타격이 좋은 포수보다 리드가 좋은 포수를 더 선호하고 인정해 주기도 한다’며 ‘(공격형 포수라는 말은 쓰면서) 공격형 외야수니 공격형 유격수 같은 표현은 아직도 쓰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도 포수에게는 수비와 볼 배합의 전적인 책임이란 무거운 짐을 지운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썼다. 그는 또 ‘이제 포수에게 짐을 좀 내려놓게 하자. 수비에 치중하느라 공격의 맥이 끊길 정도의 저조한 타격은 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전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는 △강한 어깨 △블로킹 △포구 능력 △타격 등 네 가지를 총족하는 선수를 좋은 포수라 하고, 이 네 가지를 기초로 포수 레벨이 정해진다’면서 ‘요즘 가장 눈여겨보는 포수는 롯데 나종덕 선수다. 여러 면에서 강점을 고루 갖춘 탐나는 선수’라고 평했다. 

    롯데 팬들도 이 견해에 동의할까. 기록으로 보면 나종덕(20)은 아직까지 ‘공격의 맥이 끊길 정도의 저조한 타격’을 구사하는 포수로 분류되는 것이 맞다. 그는 올해 전반기 137타석에 들어서 타율 0.130, 1홈런, 9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 득점권(주자 2루 이상)에서는 0.105(38타수 4안타)로 타율이 내려간다. 동점 또는 역전 주자가 베이스에 있을 때는 11타수 무안타로 아예 타율 제로(0)다.
     
    나종덕뿐 아니다. 올해 전반기 포수로 출전한 롯데 타자들의 성적을 모두 더해 계산한 OPS(출루율+장타력)는 0.391밖에 되지 않는다. 당연히 리그에서 제일 나쁜 기록이다(공교롭게도 김원형이 현재 롯데 수석코치다). 

    그런데 조원우(47) 롯데 감독은 “포수 자리를 강화하겠다”며 퓨처스리그(2군)에서 타율 0.374, 12홈런, 39타점을 기록 중인 나원탁(24) 대신 ‘수비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안중열(23)을 1군으로 불러올렸다. 그렇다면 조 감독은 ‘메이저리그 트렌드’와 어긋나는 선택을 내린 걸까.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주전 포수 야디에르 몰리나(36)는 이 전 감독이 ‘메이저리그 포수론’을 띄운 그날 “현재 계약 마지막 해인 2020년에 할 수만 있다면 선수 겸 감독으로 뛰고 싶다”고 밝혔다.

    포수는 태평양을 건너도 포수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역시 그가 ‘클럽하우스 리더’이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이 팀을 이끈 토니 라 루사 전 감독은 “몰리나는 투수진뿐 아니라 팀 전체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리더”라며 “포수로서 타격 자세나 방금 전 투구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등을 면밀히 관찰한 다음 이를 토대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공을 주문해 경기를 풀어갈 줄 안다”고 평가했다. 메이저리그라고 꼭 포수를 이 전 감독이 제시한 네 가지로만 평가하지는 않는 것이다. 

    선수 겸 감독 이야기가 나온 건 2012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지휘봉을 잡았던 마이크 머시니(48) 감독이 올해 7월 15일 자리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몰리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건 내 잘못이기 때문”이라고 인터뷰했다. 여전히 ‘나의 리드 때문에 경기를 졌다’는 포수는 없을지 몰라도 감독이 잘린 게 자기 때문이라는 포수는 존재하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전 감독의 이론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야구계 전체적으로 포수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건 사실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KINDS)에서 ‘포수 기근’을 찾아보면 한국 프로야구는 1994년부터 포수가 부족하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팬들은 눈을 좀 낮추되 포수 본인은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야 한다. 데뷔 첫해 8타석에 들어서 삼진을 6개 당하는 동안 안타는 하나도 치지 못했던 열아홉 살짜리 연습생을 쌍방울 구단 혹은 선수 본인이 포기했다면 프로야구사에 박경완이라는 이름은 남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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