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서울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 사건의 원인이 주사제 오염에 따른 패혈증이라고 발표했다. [뉴시스]
의료계는 “일단 개봉한 주사제는 쓰고 남은 양을 버려야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버린 주사제에 대해서는 수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이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심평원 측은 “주사제를 버린 이유만 명시한다면 버린 주사제까지 수가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신생아 사망 사건이 일어난 이대목동병원은 주사제를 5번에 나눠 사용하고는 1번만 주사한 뒤 남은 주사제를 버린 것으로 기록했고 이를 심평원에 제출해 부당하게 수가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보건당국이 조사 중이다.
수가 인정안해 나눠 쓴다?
주사제 1병을 나눠 주사해 감염 등의 위험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보건당국은 일부만 사용하고 남은 주사제를 버리더라도 1병의 수가를 인정해주고 있다. [동아일보]
원칙대로라면 감염을 피하기 위해 주사기로 주사제를 뽑은 뒤 남은 것은 버려야 한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최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일단 개봉한 주사제는 쓰고 남은 것을 버려야 하지만 심평원이 의료보험 수가를 인정해주지 않아 주사제 중복 사용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의료계의 이 같은 해명은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상반기 C형 간염이 갑자기 유행한 일이 있었다. A형과 B형 간염의 경우 전염성이 있지만, C형 간염은 전염보다 소독되지 않은 의료기구나 수혈로 전파되는 혈관계 간염으로 알려져 있다. 조사 결과 갑작스러운 C형 간염 유행은 주사기와 주사약 재사용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양천구 D병원은 주사기 재사용, 강원 원주시 H정형외과는 주사약 재사용이 C형 간염의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의료계는 재사용할 주사약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의료정책의 미비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6년 3월 대한평의사회(평의사회)는 성명을 발표해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의 수가 책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문제가 된 주사약은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 평의사회는 당시 판매되는 리도카인의 가장 적은 용량은 20cc인데 5cc 정도를 사용하고 나머지 15cc를 폐기처분한 뒤 해당 수가를 심평원에 청구하면 심평원은 5cc의 수가만 지급한다고 주장했다. 평의사회는 리도카인 외에도 신생아 비타민, 펜토탈소디움(마취제) 등 대다수 주사약이 병원 경영상 재사용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에 수가 정상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 심평원은 “주사제를 일부 쓴 뒤 감염 등의 이유로 폐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 그 사유를 적어 제출하면 1병 값을 모두 지불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관상 이유 등으로 버렸다’는 내용만 적어도 소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소명이 얼마나 어려운데”
이대목동병원 사고로 주사제를 나눠 쓰는 관행이 다시 불거지자 의료계는 과거에 했던 해명을 그대로 반복했다. 추 회장이 직접 나서 심평원이 수가를 인정해주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나눠 쓴다고 주장한 것. 이에 심평원은 감염 위험 때문에 조금만 쓰고 버려도 소명만 하면 1병에 대한 수가를 보장해준다는 2016년 설명을 되풀이했다. 심평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스모프리피드 약제 심사 결과, 감염 등의 위험으로 약품을 버렸다고 1병 수가를 보장해주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똑같은 주장과 해명이 반복되는 것은 의사들이 해당 내용을 몰랐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심평원 측은 의료계가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2016년 간염 사건 이후 관련 내용을 의협과 일선 병원에 알렸다. 하지만 매번 주사제를 나눠 쓰는 문제가 나올 때마다 의료계가 수가 문제를 들먹였다”고 밝혔다.
의료계는 심평원이 말하는 ‘소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주현 의협 대변인은 “병원에서 주사제 일부만 사용한 후 감염 위험이 있어 폐기하고 1병을 수가 신청하면 심평원에서 연락이 온다. 다른 병원은 나눠 쓰는데 왜 폐기했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의료보험 진료수가기준에 ‘분할 투여가 가능한 주사제를 일부 용량 사용하고 일률 폐기처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적혀 있어 일선 병원에서는 쉽게 약을 버리지 못한다. 소명하라고 하기보다 폐기해도 1병 수가를 인정해주겠다고 명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소명이라는 절차가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평원 측은 “소명 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1병을 여러 환자에게 나눠 쓰고는 정작 환자 인당 1병을 쓴 것처럼 청구하는 부정 사례를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심평원이 발표한 ‘2017년 요양급여 청구 부당사례 모음집’에 따르면 A병원은 항히스타민제 앰플 1개를 환자 2명에게 나눠 투여한 후 인당 앰플 1개씩 투여한 것으로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하다 적발됐다. B병원은 슈넬리보스타마이신 주사제 1g을 환자 2명에게 0.5g씩 나눠 투약하고 인당 1병씩 투여한 것으로 청구했다.
이대목동병원도 이 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유족 측이 공개한 진료비 명세서에 따르면 모든 아이에게 주사제 한 병 금액인 2만672원이 투여일마다 청구됐다. 병원 실무자들도 이대목동병원의 약품 취급에 의문점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한 의사는 “한 환자에게라면 몰라도 여러 환자에게 주사제를 나눠 투여하면 안 된다는 것은 의료계 종사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 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병원에서는 대부분 주사제 나눠 쓰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여전히 수익 보전을 위해 나쁜 관행을 고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