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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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육각형

벌집·눈 결정…자연의 견고함과 고매함에 매료

  • 신연우 아트라이터 dal_road@naver.com

    입력2017-09-19 12: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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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전 배낭여행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간 적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떠난 배낭여행이라 잔뜩 긴장한 데다 찜통더위까지 겹쳐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였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건축물들을 감상하느라 고개를 들고 다니다 어느 순간 발아래 보도블록이 눈에 들어왔다.

    그라시아 거리(Passeig de Gr`acia)에서 딛고 선 바닥에는 가우디가 디자인한 육각형 모양의 블록이 깔려 있었다. 육각형 블록의 모서리 세 개가 맞물리는 지점에 바다달팽이, 불가사리, 해초 이미지가 원형으로 모여드는 육각형의 바다였다.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밟고 다니는 보도블록도 작품이라니, 육각형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동안 여행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살아났다.



    공간 확보에도 효율적인 도형

    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육각형은 매우 유용한 도형이다. 같은 길이의 선으로 삼각형, 사각형, 육각형을 만들면 가장 큰 면적을 가지는 도형이 바로 육각형이다. 원형은 육각형보다 더 넓은 면적을 만들지만 원을 이어 붙였을 때 사이에 필요 없는 공간이 생기는 데 반해 육각형은 견고하게 딱 맞아떨어진다.

    벌들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벌집도 육각형의 특징이 잘 나타난 자연의 창조물이다. 촘촘한 육각형 모양인 벌집은 방과 방 사이 틈이 없도록 공간이 촘촘하게 채워져 꿀을 최대한 많이 보관할 수 있다.



    육각형은 효율적인 공간을 창조할 뿐 아니라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 때도 유용하다. 또한 육각형은 다른 도형에 비해 다채롭다. 육각형 면들이 맞물린 구조는 수직과 수평, 양쪽 대각선 등 다양한 방향으로 패턴을 만들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육각형에는 두 가지 대칭이 나타난다. 여섯 개 각이 회전하면서 만드는 회전 대칭과, 중심 면을 기준으로 잘랐을 때 양쪽 모양이 같은 반사 대칭으로 도형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눈(雪) 결정 역시 아름다운 육각형의 대칭이다. 눈 결정 사진을 보면 정교하고 청아한 보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처음 눈 결정 사진을 찍은 사람은 윌슨 알윈 벤틀리(Wilson Alwyn Bentley)라는 미국 청년이다. 부모로부터 현미경을 선물 받고 눈을 관찰하던 그는 눈 결정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다. 사진기를 연결하고 필름을 조작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고 2년 후 드디어 눈 결정 사진 찍기에 성공한다. 그로부터 6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00점이 넘는 눈 결정 사진을 찍었다.

    놀라운 점은 그가 찍은 눈 결정 사진 가운데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의 무궁무진한 창조성에 놀랄 따름이다. 벤틀리가 남긴 사진은 마치 보석 컬렉션을 보는 듯하다. 말 그대로 신이 세공한 보석이 아닌가. 눈이 내리는 풍경에 규칙이란 없지만 작은 눈 결정 속에는 완전한 육각형이 숨어 있다.

    눈 결정의 완전한 이미지를 광고에 적용한 사례도 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크고 작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차의 성능도 보호하고자 자동차 정비를 한다. 겨울철 자동차 점검 서비스의 필요성을 알리는 아우디(AUDI)의 광고는 정교한 눈 결정 이미지를 활용했다.



    정교하고 청아한 보석

    2014년 이탈리아에서 발표한 인쇄 광고물 중앙에는 커다란 눈 결정 여섯 개가 자리 잡고 있다. 벤틀리의 사진처럼 검은색 바탕에 반투명한 흰색의 눈 결정들이 마치 자동차 내부의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비록 원 안에 들어간 육각형이지만 중심점에서 여섯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가지들의 단단한 힘이 그대로 살아나는 이미지다.

    한 치 오차도 없는 눈 결정의 대칭이 자동차의 정교한 기술과 섬세한 서비스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듯하다. 빈틈없고 완전무결한 결정체, 깨끗함을 넘어 고매한 분위기를 풍기는 자연의 창조물이 브랜드 품격을 높이고 있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 에모토 마사루(江本勝)는 유리병에 물을 넣고 단어를 프린트한 종이를 핀으로 고정해 물에게 보여줬다. 물을 인격화한 행동 같지만 실험 결과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단어를 보여준 물을 얼리는 방법으로 관찰한 물 결정 사진이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고 말한다.

    ‘사랑과 감사’라는 단어를 보여준 물은 육각형 대칭을 이루는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었고, ‘망할 놈, 짜증 나네, 죽여버릴 거야’ 같은 부정적 단어들을 보여준 물에서는 결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단어의 뜻과 비슷한 우울한 분위기로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주류 과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실험이지만 단어의 뜻에 따라 물이 공명한다는 책 내용이 흥미로웠다.

    자연이 아름다운 육각형을 창조하는 것처럼 인간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창조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성장한 인간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한다. 나에게, 상대방에게, 우리에게 하는 말 한마디가 눈과 물 결정처럼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육각형의 보석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나태주 시인의 ‘너를 두고’ 시구 일부를 읊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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