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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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북에서 만든 ‘Made in China’ 中 통관 거부로 대란

관행상 허용하다 최근 금지하자 北에 큰 타격… 밀수로 중국 내 반입

  • 김승재 YTN 기자 · 전 베이징특파원 phantom386@daum.net

    입력2017-08-21 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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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기 며칠 전 중국이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라벨이 붙은 북한산 제품의 세관 통과를 허용하지 않는 조치를 내렸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인정해오던 ‘메이드 인 차이나’ 표기 북한산 제품의 중국 수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관련 업계는 패닉에 빠졌다. 이미 완성된 제품을 어떻게든 북한에서 빼내오려고 압록강 일대에서는 밀수전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7월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을 잇달아 시험발사하자 유엔 안보리는 8월 5일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북한의 석탄, 철, 철광석 등 주요 광물과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북한의 해외 노동자 신규 송출을 차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대북제재 결의는 안보리 회원국인 중국의 찬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가 있기 며칠 전인 7월 30일 중국 정부는 북·중 접경지역 세관 당국에 주목할 만한 지시를 내렸다.

    지린(吉林)성 지역에서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인 A씨는 이달 초순 기자에게 “중국 당국이 북·중 접경지역 세관에 북한을 오가는 제품을 원칙대로 조사할 것을 구두로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중국 세관은 북한에서 제조해 중국으로 들어오는 완제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이 붙어 있으면 “북한에서 만든 것인데 왜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허위 표기를 하느냐”며 세관 통과를 거부했다. 과거 북한 제품은 대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을 단 채 중국산으로 둔갑해 전 세계로 수출됐다.





    단둥 보세창고서 북한산 제품 발 묶여

    이번 조치로 북한과 교역이 가장 활발한 도시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지역에 비상이 걸렸다. 수입 절차가 끝나지 않은 제품을 임시 보관하는 단둥의 보세(保稅)창고에는 갑작스러운 중국 당국의 조치 탓에 발이 묶인 북한산 제품이 넘쳐나고 있다고 현장을 다녀온 중국 소식통이 전했다. 보세창고에서 물건이 나가지 못하자 창고는 물론, 창고 마당까지 북한산 제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고 한다.

    북한 나선경제특구 공장에서 봉제사업을 하는 중국인 P씨는 이번 조치로 큰 타격을 입었다. 이달 초순 나선경제특구 공장에서 만든 의류 제품에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을 붙여 수출하다 훈춘(琿春) 취안허(圈河) 세관으로부터 거부를 당한 것이다. 나선경제특구 봉제업계에서 꽤 유명한 P씨가 이번 조치로 입을 타격은 적잖을 전망이다. 그동안 P씨가 주선해온 세계 각국의 주문 물량이 ‘올스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사업이 활발한 단둥, 훈춘 등 중국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비밀리에 대북사업을 해오던 한국인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 지린성에서 의류사업을 하는 한국인 K씨는 최근 P씨를 통해 대북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의류 브랜드의 오더를 따낸 K씨는 나선경제특구 공장에 제조 주문을 의뢰했다. 원단까지 직접 구매해 나선경제특구 공장에서 의류 3만여 장을 만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이달 초순 나선경제특구 공장에서 완제품을 받아 고객사에 납품해야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중국 당국의 조치 탓에 모든 완제품이 북한에 묶여버렸다. 이로 인해 K씨는 우리 돈 기준으로 최소 13억 원을 날릴 판이다. K씨뿐이 아니다. 다롄(大連), 칭다오(靑島) 등지에서 활동하며 비밀리에 북한에서 물건을 주문 생산해온 한국인 50명 정도가 사업이 망하다시피 한 상황이라는 소문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서 나오는 제품뿐 아니라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건도 일일이 따지고 있다. 철문처럼 쇠로 된 제품을 가져가는데 “이런 물건이 북한으로 들어가면 쇠를 녹여 무기로 만들 수 있다”는 이유로 통관을 거부했다고 한다. 이 같은 중국의 갑작스러운 조치에 북한 사업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미국과 짜고 인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있다” “혈맹을 배신했다” 등 흥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중국의 이번 조치에 북한 당국이 반발해 북측 세관에서도 중국산 물건을 일일이 확인하며 문제제기를 하거나 통관을 거부하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압록강에선 ‘밀수 어선’ 쟁탈전

    이번 조치로 북한을 왕래하며 부자재나 완제품을 운반해 생계를 유지하던 트럭 업자들도 일자리를 잃는 게 아닌지 불안에 떨고 있다. 단둥의 경우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트럭이 하루 수십 대에 이르는데, 현재 이들 트럭 운행이 뚝 끊기다시피 했다. 대북사업가 A씨는 기자에게 한 대형 화물트럭 업자의 얘기를 전했다. 직원 9명을 데리고 북한행 화물트럭 사업을 꽤 크게 하는 중국인으로부터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 사업을 접어야 하는 거냐”며 불안 섞인 하소연을 듣고 있다고 알려왔다.  

    그렇다면 그 많은 북한산 제품은 북한에서 아예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도 해법은 있었다. 밀수다. 세관을 통한 정상적인 제품 반입이 불가능하자 다급해진 사업자들은 밀수업자를 찾기 시작했다. 단둥의 경우 압록강에서 수시로 북한과 중국 땅을 오가며 운영해온 소형 밀수 어선이 타깃이 됐다. 사업가들이 너나없이 몰려들면서 밀수업자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랴오닝성의 중국인 사업가 B씨는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이 붙은 북한 제품을 밀수 어선을 통해 간신히 받았다고 기자에게 털어놨다. 200kg들이 마대에 의류 800장씩 총 12개 마대에 의류 9600장을 담아 밀수했다는 것이다. 물론 돈은 더 들었다. 정상적으로 육상 운송할 때에 비해 운임이 3배 이상 비쌌다. 200kg들이 마대 2개를 운반하는 데 육상에선 200위안(약 3만4000원)이면 되는데, 밀수 어선을 이용하면 최소 600위안(약 10만2000원)을 써야 했다. 그래도 밀수하겠다고 줄을 선 상황이라 운임 비용은 밀수업자가 부르는 게 값이 돼버렸다. 소형 밀수 어선은 보통 북한 주민이 운영하지만, 일부는 중국인이 운영하기도 한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어선은 북한 쪽으로 들어가면 북측에서 기다렸다는 듯 각종 이유를 들어 추가 비용을 뜯어낸다고 한다.

    북한산 의류가 밀수 어선으로 모여들면서 과거 밀수에서 의류 제품의 비중은 10% 미만이었지만 최근엔 40% 이상으로 뛰어올랐다고 B씨는 전했다. 밀수 어선 운항도 늘어 과거 하루 한두 차례이던 것이 지금은 서너 차례씩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단둥은 압록강이 있어 배를 통한 밀수가 가능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밀수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북한에서 만든 의류는 서울 동대문시장에도 공급돼왔다. 이번에 나선경제특구에서 생산한 의류 6만 장이 못 들어오게 되자 급히 압록강 밀수 경로를 이용해 일부 들어왔다고 B씨는 전했다.

    B씨는 중국의 이번 조치가 계속 이어지면 북한이 치명타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B씨는 “평양과 나선경제특구 등 북한에서 의류 봉제업에 종사하는 주민은 20만 명으로 추산된다”며 “이들의 생계는 물론, 북한의 막대한 외화벌이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네덜란드 한 인터넷 신문은 8월 13일(현지시각) ‘메이드 인 차이나 상표가 붙어 수출된 의류 가운데 일부는 사실상 북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 무역업자들이 북한에서 의류를 생산하면 비용을 최대 75%까지 절감할 수 있다’며 ‘중국산으로 둔갑한 북한산 의류는 미국, 유럽, 일본, 한국, 러시아 등에 수출됐다’고 전했다. 또한 ‘의류는 광물에 이어 북한의 수출품 가운데 두 번째로 비중이 크다’고 보도했다.



    中의 고강도 대북제재, 언제까지 갈까

    ‘메이드 인 차이나’ 라벨이 붙은 북한 제품에 은밀히 압박을 가한 중국 정부는 8월 14일 대북 압박을 공식 표명했다. 중국 상무부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산 석탄, 철 등 광물과 수산물의 수입을 15일부터 전면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 조치로 북한은 수출 제품의 3분의 2가량을 중국에 수출할 수 없게 됐다.

    중국 정부가 8월 5일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9일 만에 제재 이행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금까지 대북제재와 관련해 가장 신속한 조치다. 이 같은 중국의 발 빠른 움직임은 미국 정부의 대북, 대중 압박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당시 미국은 연일 북한에 군사 타격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대북 압박에 미온적인 중국에게도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와 통상법 제301조 적용을 거론하며 압력을 가했다.

    관건은 중국 정부가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중국의 대북사업가들은 이번 조치가 고강도이긴 하지만 중국이 이를 끝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북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으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북한 체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급증한 북·중 간 밀수 활동에 대해 중국 당국은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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