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드라마를 챙겨 보는 재미에 저녁 시간을 기다린다. 다음에 일어날 장면을 상상하며 넋 놓고 있다 보면 어느새 ‘다음 이 시간에…’라는 자막이 뜬다. 하필이면 중요한 장면에서 끊어 시청자의 애간장을 태운다.
궁금한 장면을 모두 보고 싶은 마음은 옛 사람들도 비슷했나 보다. 디르크 바우츠(Dirck Bouts)가 그린 ‘오토 대제의 심판(The Execution of the Innocent Count)’은 드라마를 그림으로 펼쳐놓은 듯 흥미롭다. 1460년 무렵 그려진 이 그림의 내용은 이렇다. 아라곤 공주 출신인 오토 3세의 왕비가 아내가 있는 귀족을 유혹했으나 넘어오지 않자 황제에게 그 귀족이 자신을 범하려 했다며 거짓말하고, 황제는 귀족을 참수형에 처한다.
정지된 이미지를 연결하는 프레임
이 사건의 장면들이 일어난 순서대로 한 폭의 그림에 담겨 있다. 이야기는 크게 세 장면으로 나뉜다. 오른쪽 위는 왕비가 오토 3세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왼쪽 위에는 흰 옷을 입고 손이 결박된 채 끌려가는 귀족이 아내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아내는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목이 잘린 귀족과 담담한 표정으로 남편의 머리를 받아드는 아내의 모습이 있다. 크게 세 장면으로 구분해 사건들이 화폭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흘러가도록 구성했다. 드라마처럼 애간장을 태우지 않아도 모든 장면을 한번에 볼 수 있다.실제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은 촬영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림과 사진, 그리고 영상으로 매 순간을 그대로 담을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영상은 틈새 하나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프레임(frame)이라는 정지 이미지를 연결한 것이다. 보통 영화가 초당 24프레임으로 이뤄져 있고 애니메이션은 12, 24, 30프레임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프레임 수를 사용한다. 하나의 프레임 다음에 그다음 프레임이, 그리고 그다음 프레임이 연결돼 한 흐름이 된다.
1872년 말이 달리는 동작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는 연속동작 촬영 기술을 발명했다. 그의 사진에서 ‘달린다’는 동작이 ‘앞발로 당기고 뒷발로 밀어 몸이 공중에 뜨는’ 많은 행위로 펼쳐졌다. 1881년 프랑스 생리학자 에티엔 쥘 마레(Etienne Jules Marey)는 움직임을 관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자 ‘동체사진법(Chrono-Photography)’을 고안했다. 한 덩어리의 이미지를 12프레임으로 나눠 연속 촬영하는 기술인 것. ‘걷는다’는 행위가 ‘다리를 구부려 앞으로 들어 옮기고, 다른 쪽 다리를 구부려 땅에서 발을 떼고, 동시에 앞으로 나간 발과 반대쪽 팔을 들어 뒤로 보내고, 다른 팔은 앞으로 내민다’는 작은 사건들의 연결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식빵과 궤를 같이하는 인간의 24시간
매일 반복되는 일상도 특별할 것 없는 ‘덩어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은 사건들을 연결한 커다란 흐름이 하루다. 프랑스 식빵 브랜드 해리스(Harry’s)가 2013년 발표한 광고는 한 남자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해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까지 24시간을 24프레임으로 나눠 보여준다.
장면은 왼쪽에서 시작한다. 베개를 베고 누워 있던 남자가 하품을 하며 서서히 일어나 면도를 하고 옷을 갈아입더니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등 일하는 모습이 이어지고 다시 대중교통을 타고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뒤 이부자리에 눕는 모습이 보인다.
도미노처럼 줄지어 선 남자의 하루를 식탁에 세워놓은 식빵처럼 표현했다. 광고 아래쪽에는 짧은 문구가 적혀 있다. ‘All day long(아침부터 밤까지).’ 언제나 함께하는 식빵의 이미지가 그대로 와 닿는 광고다. 광고 속 남자가 겪는 24시간은 저절로 일어나는 일처럼 다음, 그다음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모바일로 광고 보기 adsoftheworld.com/media/print/harrys_all_day_long)
사건들의 연속이 이야기다. 큰 사건 안에 작은 사건들이 연결되고, 작은 사건들 안에는 행동과 생각이 연결돼 있다. 하나의 사건과 그에 따라 일어나는 또 다른 사건, 하나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 행동, 행동을 일으키는 생각과 그 생각을 일으킨 사건들이 끝없이 연결된다. 삶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의 프레임은 씨실과 날실의 짜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다. 붙잡거나 멈추지 않는다면 지금의 프레임을 넘어 다음, 그다음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필요한 것은 기다리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