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15일(이하 현지 시간)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뉴시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6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ABC와 인터뷰를 통해 미국이 앞으로 이란과의 후속 협상에서 도출해낼 합의 내용이 11년 전 자신의 재임 시절 합의에서 크게 진전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7월 이란과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라는 이름으로 핵 합의를 체결하고, 이란이 핵물질과 핵물질 제조시설을 줄이는 대가로 이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고, 이란에 대한 제재 조치도 모두 복원했다.
호르무즈 개방, 금융 제재 해제 MOU 담겨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4일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합의하면서 자신이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훨씬 나은 협상을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어떠한 형태로도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이 현금 17억 달러(약 2조5700억 원)를 포함한 수천 억 달러를 이란에 지급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돈이 오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합의 이후 과거 팔레비왕조가 미국에 무기 계약금으로 선납했던 원금과 이자 17억 달러를 스위스 프랑화와 유로화 등 외화로 환전해 화물 비행기에 실어 이란에 보냈다. 당시 핵 합의로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가 풀리면서 미국에 동결돼 있던 이란 자산도 해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란에 수천억 달러를 퍼줬다”고 주장한 근거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는 이란 동결자산이 수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그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란 메흐르통신은 6월 15일 자국 협상 대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의 전략 고문인 메흐디 모하마디를 인용해 영문판 홈페이지를 통해 MOU 초안을 보도했다.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전쟁 중단 △이란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미국의 약속 △30일 안에 미국의 해상 봉쇄 완전히 해제 △이란 주변 지역 미군 철수 등이 포함됐다. 경제 관련 조항으로는 △이란 측 조치에 따라 30일 안에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열고 △석유·석유화학 제품 및 그 파생 상품 관련 제재를 유예하면서 이란의 금융자산에 대한 완전한 접근을 보장하며 △미국과 동맹국들이 최소 3000억 달러(약 453조9600억 원) 규모의 이란 재건 계획을 제시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메흐르통신은 이와 함께 종전 협상의 최대 난관인 이란 핵 문제는 60일간 협상에서 다룬다면서 선결 조건으로 이란 동결자금 240억 달러(약 36조2900억 원) 중 절반을 먼저 해제하고, 나머지 절반도 협상 기간 이란이 접근할 수 있도록 미국이 약속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메흐르통신은 이번 MOU는 이란이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하면서 최종 합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통해 확정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MOU에는 고농축우라늄이 아닌 다른 핵물질은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란 측 입장도 반영됐다.
BBC “트럼프, 근본적인 문제해결 실패”

이란 반다르아바스 앞 호르무즈해협에 유조선 한 척이 정박해 있다. 뉴시스
핵 문제를 놓고도 양국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구매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성과를 강조했다. 반면 모하마디는 핵 프로그램에 관한 미국 측 요구는 이란이 보유 중인 60% 농축우라늄 비축분 처리에 한정된다고 밝혔다. 이란은 60% 고농축우라늄 440㎏을 포함해 9000㎏에 달하는 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다. 모하마디는 “60% 농축우라늄 비축분을 희석해 이를 국내에 남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희석된 농축우라늄은 나중에 다시 농축할 수 있다. 미국은 이를 자국이나 해외로 반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MOU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체결한 이란 핵합의와도 결이 다르다. 당시 핵 합의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도를 3.67% 이하로 제한하고 농축우라늄 재고를 300㎏ 이하로 줄일 것을 명시했다. 이를 위해 이란은 보유 농축우라늄 재고를 대부분 국외로 반출하거나 희석하는 방식으로 재고를 대폭 축소했고, 원심분리기 수도 크게 줄였다. 핵 프로그램 자체를 축소·통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었던 셈이다.
이란의 동결자금 해제 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란은 ‘선(先) 해제, 후(後) 협상’을 담았지만 미국은 이란의 이행에 따라 동결자금을 풀어주겠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 고위 관리는 “120억 달러(약 18조1400억 원)를 무조건 받게 된다는 주장은 허풍”이라며 “이란이 먼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한 동결자금은 절대 해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도 CBS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란의 이행 정도에 맞춰 그만큼의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는 ‘성과 기반 합의(performance-based deal)’”라고 강조했다. 3000억 달러의 이란 재건 자금에 대해 미국은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는 투자 펀드 형태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타결로 107일간의 전쟁이 일단 마침표를 찍게 됐지만, 양국이 합의한 MOU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 언론들은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영국 BBC는 “이번 합의는 트럼프가 전쟁을 시작한 원인과 이란이 강하게 반발했던 핵심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NYT는 “양국 모두 이번 외교적 결과를 자신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포장하고 싶어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은 ‘핵 위협 해결’이라는 당초 목표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트럼프의 합의는 이란에서의 군사 옵션 실패를 반영한다”고 꼬집었다.
네타냐후 “이란과의 싸움 끝나지 않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이란, 헤즈볼라 등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뉴시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월 15일 기자회견에서 “이란, 헤즈볼라 등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며 “레바논 남부 등에 계속 군대를 주둔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도 “이스라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자위권 차원에서 헤즈볼라에 대한 공격을 언제든 감행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레바논 전선의 해법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중동 전문가들은 양국이 60일간 협상 과정에서 사사건건 부딪치며 심각한 마찰을 빚을 것이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란은 걸프 국가는 물론, 중동의 미군기지들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호르무즈해협을 전략무기화해 미국과 세계경제를 인질 삼아 영향력을 과시했다. 전쟁은 일단 중단됐지만 미국과 이란의 전략적 힘겨루기는 이제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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