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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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도기지창에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를 꿈꾼다

‘용도지역제’ 벗어나 호텔, 쇼핑몰, 컨벤션, 박물관 공존하는 창조적 도시계획 필요

  •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입력2023-09-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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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일대 전경. [GettyImages]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일대 전경. [GettyImages]

    국토교통부(국토부)는 도시혁신구역, 복합용도구역, 도시계획시설 입체복합구역 등 세 가지 ‘공간혁신구역’ 도입을 뼈대로 한 국토계획법(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월 발의했다. 기존 한국 도시계획은 토지를 기능별로 구분해 건축물의 용도와 용적률, 높이 등 규제를 달리 적용하는 ‘용도지역제’에 따라 이뤄졌다. 정부의 국토계획법 개정안은 이처럼 경직된 용도지역제에서 벗어난 유연한 도시계획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일본 도쿄 ‘롯폰기힐스’처럼 민간의 혁신적인 도시개발 동력을 통해 창의적인 랜드마크를 조성하자는 취지다.

    우선 국토부가 제시한 공간혁신구역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도시혁신구역에서 핵심은 여느 선진국처럼 도시개발에 ‘화이트 조닝(white zoning)’ 구상을 도입하는 것이다. 토지 용도를 사전에 지정하지 않고, 실제 개발을 맡은 민간 기업이 자유롭게 계획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물론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로 민간의 자율성 남용을 방지할 안전장치 마련과 합리적 수준에서 개발이익을 환수할 방안도 정부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공간혁신구역 3종 세트

    복합용도구역은 원격 근무가 늘면서 주목받는 주거지역 내 거점 오피스의 필요성과 여러 산업 간 장벽이 허물어지는 시대상을 도시계획에 반영하려는 시도다. 업무와 주거생활이 융합될 수 있도록 복합용도구역 지정을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도시계획시설 입체복합구역은 단일 용도의 평면적 활용에 그치는 기존 도시계획 시설을 입체적으로 복합화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도로나 철도를 지하화해 그 상부를 복합 개발하거나 공공청사와 주택, 종합의료시설을 함께 조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늘날 도시 내 토지 이용을 관리하는 제도인 용도지역제는 근대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굴뚝형 공장으로 상징되는 산업시설이 도심 주택가에 무분별하게 들어설 경우 공공의 위생과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막고자 도시의 구역별 기능을 분리하는 게 용도지역제의 핵심 원칙이다. 1916년 미국 뉴욕에서 주거·상업·공업 등 용도에 따른 배타적 구역 설정을 뼈대로 한 용도지역제가 처음 등장했다. 한반도에는 1934년 일제가 ‘조선시가지계획령’으로 처음 도입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도시 토지 이용을 관리하는 기본 골격으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용도지역제는 용도별로 개발 밀도가 일차원적으로 연동된 단선적 위계 구조가 특징이다. 쉽게 말하면 용도지역의 위계가 높아지면 용적률도 함께 높아지는 식이다. 가령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이나 마포구 홍대 앞 거리 일대처럼 용도지역상 주거지역인 곳이 상업화돼 근린상업지역으로 변경된다고 치자. 이럴 경우 용적률이 600%로 높아져 대규모 개발이 유도되기 때문에 기존의 특색 있는 저층 가로(街路) 상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해 용적률 200%의 근린상업지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도시는 끊임없이 변한다. 배타적인 집적화로 도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대는 지났다. 도시 형성의 근원이 되는 생산 기능도 크게 바뀌어 도심에서 굴뚝형 생산시설이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서울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던 준공업지역 성수동 일대의 변화가 대표적이다. 성수동은 고가 주상복합아파트와 소셜벤처·ICT(정보통신기술) 스타트업이 맛집과 혼재하는 복합 도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집적화된 상업시설의 대표 사례인 테마상가는 생명력을 잃었다. 서울 시내 상당수 전자제품 테마상가나 의류 테마상가는 과거 명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기술 발달에 따라 집에도 사무실 같은 네트워크 환경을 조성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근로 조건이 보편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이뤄지던 업무와 휴식, 놀이의 경계도 흐릿해지고 있다. 이제 도시는 혁신의 장소로서 다기능 복합화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미래 도시의 숙명 다기능 복합화

    미국 뉴욕 맨해튼에 조성된 허드슨 야드 재개발 복합단지. [GETTYIMAGES]

    미국 뉴욕 맨해튼에 조성된 허드슨 야드 재개발 복합단지. [GETTYIMAGES]

    최근 세계 각국 주요 도시에서는 기존 용도지역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토지의 복합적인 이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게 뼈대다. 대표 사례가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 개발이다. 화이트 조닝을 통한 도시 개발로 호텔, 쇼핑몰, 컨벤션, 카지노, 박물관, 식물원이 공존하는 복합적 토지 이용이 가능해져 세계적인 성공 사례가 됐다. 한국의 용산 철도기지창 개발에 참고할 만하다. 서울시도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이라는 새로운 용도지역 체계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 도시도 새로운 사회 변화상을 담아내야 한다. 인구 감소와 기후변화, 디지털 전환 가속화, 심지어 신종 감염병 발생 등 도시가 마주한 변화와 위기는 다양하다. 지금 같은 경직된 용도지역 체계로는 시대적 격변에 대응해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물론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공간혁신구역 3종 세트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다만 한국 도시 체질을 개선하려는 고민의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도시란 무엇이고 어떤 공간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끊임없는 토론과 성찰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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