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틀록 교수는 여러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걸프전, 일본의 부동산 거품, 퀘벡이 캐나다에서 분리될 가능성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거의 모든 중요 사건을 대상으로 의견을 모았다.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예외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밥값을 못하는가? 15년 넘게 걸린 테틀록의 연구 결과는 사회과학계를 엿 먹이는 것이었다. 그가 살펴본 전문가들은 직업이 뭐든 간에, 경험이 얼마나 오래 쌓였던 간에, 전공 분야가 뭐든 간에 하나같이 동전을 던져 판단을 내릴 때보다 낫지 않았다(네이트 실버, ‘신호와 소음’, 2014, 88~89쪽).
필립 E. 테틀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거창한 생각’을 이야기하기 좋아하면서 별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는 대다수 전문가를 고슴도치로 분류했다. 반면 고슴도치와 달리 예측력이 뛰어난 소수 사람을 ‘여우’로 분류했는데, 이들은 매우 실용주의적이어서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가능성이나 확률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필립 E. 테틀록·댄 가드너, ‘슈퍼예측’, 2017, 112~115쪽). 사회과학계만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책당국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정관수술을 받으면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있었다(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05년 9월 18일, ‘60년대 ‘거지꼴 못 면한다’→요즘 ‘혼자는 싫어요’). 지금 들으면 기가 찰 이야기이지만 사실이다. 필자도 예비군 훈련 중 정관수술을 받고 먼저 집으로 돌아간 선배들을 본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예비군 훈련 가면 정관수술 시켜주던 나라
이 사례가 주는 교훈은 ‘당장의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고갈 시점 예측이야말로 ‘바뀔 수 있는 미래’에 속한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 고갈 시점은 운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국회예산정책처, ‘2019~2060년 국민연금 재정전망’, 2019). 2019~2060년 국민연금 연수익률이 3%에 그치면 고갈 시기는 2054년으로 예측되지만, 캐나다 국민연금(CPP)처럼 연 5.9% 고수익을 낸다면 고갈 시기는 2065년 이후로 늦춰진다고 한다. 참고로 1988년 국민연금 출범 이후 연평균 수익률은 6.3%로 캐나다 국민연금보다 높으며, 고금리 여건이 소멸된 2018~2020년 수익률도 연 6.9%였다. 따라서 국민연금 고갈 시기 예측에만 힘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앞으로도 높은 운용 성과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운용역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고 운용 독립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신경 써야 한다.이 대목에서 “인구가 감소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인가”라고 질문하는 독자가 있을 텐데, 필자도 전체 경제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은 부인하지 않는다. 앞으로 저출산-고령화가 계속된다면 인구는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구의 절대 수준 감소가 국민 개개인의 소득 감소를 유발하느냐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그래프1’은 꽤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가로축은 2001~2020년 평균 인구 증가율을, 세로축은 평균 1인당 실질소득 증가율을 나타낸다. 한국보다 먼저 인구고령화를 경험한 17개 선진국 사례인데, 인구 변화가 국민 개개인의 소득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