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3

1999.12.16

아름다운 테크놀로지?

  • 입력2007-05-11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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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테크놀로지’? 과학적 증명이나 기술의 발전은 과연 ‘아름다움’이란 덕목과 부합한 것일까. 예일대학 컴퓨터 과학부 교수 데이비드 겔런터는 단호히 답한다. “당연히, 그러하다”고. 아니,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겔런터 교수의 책 ‘기계의 아름다움’(Machine Beauty)은 흔히 과학이나 테크놀로지는 ‘논리적-객관적이며 심지어 남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중적 편견에 강력한 태클을 건다. 대신 그는 아름다움이야말로 과학기술 발전의 배후에 존재하는 추진력이라고 단언한다. 그에 의하면 그 아름다움은 ‘힘’과 ‘단순함’이 결합되었을 때 완성된다.

    이 책에서 그는 특히 아름다움의 추구가 컴퓨터의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컴퓨터의 유저 인터페이스나 외관 등을 얼마나 이용하기 편리하고 기능적으로 디자인했는지(즉,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의해 컴퓨터가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 예가 프로그래밍 언어 알골 60과 그로부터 비롯된 ‘객체 지향’ 프로그램, 그리고 애플 데스크톱 등이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스트들은 이같은 ‘아름다움’의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아름다움=남자답지(혹은 과학답지) 못함’이란 오도된 시각 때문이다. MS-DOS 명령체계보다 훨씬 간편하고 기능적으로 뛰어난 애플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벤치 마킹’을 당한 뒤 오히려 윈도즈에 패배를 당한 이유에 대해서도 저자는 “애플이 너무 깜찍하고 아름다워서”였다고 지적한다.

    남성적이고 논리적이어야 마땅한 ‘과학’이 ‘지나치게 아름다웠다’는 사실이 오히려 소비자와 기술자들의 반감을 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컴퓨터는 보다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쓸데없이 복잡한 기능 추가는 사용자를 골치 아프게 만들기만 한다. 그보다는 빠른 시간 안에, 손쉽게 원하는 자료를 찾을 수 있는 단순한 기능이야말로 컴퓨터가 추구해야 할 아름다움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데스크톱 형태를 대체할 차세대 컴퓨터의 형태는 어떤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인터넷 환경에 기초한 ‘라이프스트림즈’를 제시한다. ‘라이프스트림즈’는 개인의 정보가 인터넷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정보의 저장은 ‘하나의, 구체적 컴퓨터’라는 물리적 한계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 얼마나 편리하고 아름다운 컴퓨터인가!

    확실히 테크놀로지-컴퓨터의 발전사를 ‘미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저자의 시각은 유니크하고 독보적이다. 게다가 저자는 다양한 은유와 유머러스한 풍자적 서술을 시도하며 읽는 맛을 돋워준다. 단 프로그래밍 언어의 발전과정 등에 대해 기술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한 부분은 컴퓨터 메커니즘에 기초지식이나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고 난해한 대목일 수도 있겠다.

    그래픽을 곁들여 설명해 주었더라면 훨씬 이해하기 수월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약간의 난해함을 감수하고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이라면 당신은 책상에 놓인 컴퓨터가 이제까지 와는 ‘달리’ 보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처 몰랐는데, 내 컴퓨터와 거기에 깔린 프로그램들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이야!

    데이비드 겔런터 지음/ 현준만 옮김/ 해냄 펴냄/ 234쪽/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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