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54

2014.09.15

‘체크무늬’ 벗고 혁신을 입다

제품 DNA까지 바꿔가며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 구축

  • 이수지 명품칼럼니스트 sognatoriszq@naver.com

    입력2014-09-15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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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크무늬’ 벗고 혁신을 입다
    재봉사 토머스 버버리(Thomas Burberry)가 1856년 설립한 후 158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버버리. 트렌치코트의 대명사인 버버리는 클래식 명품 브랜드로서도 높은 인지도와 탁월한 브랜드 가치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런 명품도 성장만 거듭한 것은 아니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버버리에도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영국 훌리건이 버버리를 자신들의 상징적 아이템으로 사용하고, 코카인에 중독된 미국의 한 여배우가 버버리 제품으로 온몸을 감싸고 다니는 모습이 대중에게 노출되던 때다. 이 무렵부터 버버리의 체크무늬는 차브(Chav)의 상징으로 전락하기 시작한다. 차브는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계층이 향유하는 반사회적 하위문화를 뜻하는 말. 버버리는 자신의 고유 패턴을 본뜬 디자인이 싸구려 셔츠와 야구모자 등에 사용되는 걸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제품의 확산과 더불어 유럽에서 버버리의 브랜드 가치는 급속히 추락했다.

    결국 버버리가 택한 건 혁신이었다. 2006년 버버리는 미국 의류브랜드 리즈 클레이본의 부사장 앤절라 아렌츠를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아렌츠가 받은 주문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토퍼 베일리와 함께 ‘새로운 버버리’를 만들어내라는 것. 이들은 버버리의 시그니처와도 같던 체크무늬 비중을 전체 상품의 10% 이하로 낮추는 모험을 감행했다. 150년간 이어온 갈색과 빨간색 체크무늬 패턴 일변도에서 벗어나면서 버버리가 새롭게 브랜드 상징으로 삼은 것은 말 탄 기사 문양과 창업자 토머스 버버리의 흘림 서명이었다. 제품 소재도 레이스, 메탈, 가죽 등으로 다변화해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세련되고 우아하게 변화시켰다.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버버리 어쿠스틱’으로, 재능 있는 영국 신예 음악인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버버리는 신제품 발표 컬렉션에 ‘버버리 어쿠스틱’ 출신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용하는 등 이 프로젝트를 다방면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정적이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다.

    2012년 매출 20억 파운드



    아렌츠는 “버버리는 영국 브랜드인 만큼 음악, 모델 등 모든 요소가 영국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세계 모든 매장이 일관성을 갖도록 관리하면서, 그와 동시에 세계 각국 ‘패션 피플’이 이러한 ‘영국의 멋’을 즐기는 모습을 과시하는 전략을 쓴다. 버버리가 2009년 개설한 ‘아트 오브 더 트렌치’(artofthetrench.burberry.com)는 버버리의 트렌치코트를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사진을 업로드하고 다른 이용자와 공유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웹사이트. 이곳에 들어가면 세계 각지에서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길을 걷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다양한 인종, 연령, 성별의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런 다양한 시도를 통해 버버리는 2012 회계연도에 매출 20억 파운드(약 3조3437억 원)를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5배나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체크무늬’ 벗고 혁신을 입다

    2012년 4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버버리 월드 라이브’ 디지털 패션쇼장. 행사장에 빙 둘러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비와 바람 등 영국 날씨를 상징하는 영상과 버버리 트렌치코트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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