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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호남도 안철수를 버렸다

어제는 ‘혁신 실패’, 오늘은 ‘정풍’, 내일은 탈당?…오락가락 행보에 지지율 뚝↓

호남도 안철수를 버렸다

호남도 안철수를 버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9월 6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 혁신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절반쯤 물이 채워진 유리컵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아직 물이 절반이나 남아 있다고 여유를 부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겨우 절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며 조바심을 내는 이도 있다.

선거는 절반쯤 물이 채워진 유리컵을 보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다. 선거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반응이 크게 엇갈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투표권을 행사할 대한민국 주권자이자 유권자는 전자에 속한다. 다음 대통령선거(대선)는 2017년 12월 20일 치를 예정이다. 유권자 대부분은 다음 대선까지 2년 3개월, 27개월이나 남아 있다며 여유롭게 지켜본다. 아직 각 당 후보로 누가 나설지 결정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대선을 고민할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다음 대선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자 하는 대선 예비후보의 처지는 다르다. 앞으로 대선을 준비할 시간이 27개월, 아니 2년 3개월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권 핵심층 외면, 차기 대선주자에서 밀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실시한 8월 둘째 주 정례조사에서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정치 지도자, 즉 다음번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는 이 가운데,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 결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16% 지지율로 1위를 기록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5%로 2위,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 문재인 대표가 12%로 3위를 기록했다. 한 달 앞서 실시한 7월 둘째 주 조사 때도 박원순(17%)-김무성(13%)-문재인(12%) 순이었다. 박 시장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맹위를 떨치던 5월 말 ‘메르스 방역사령관’을 자처한 뒤 한국갤럽 6월 둘째 주 조사 때 17% 지지율로 1위로 올라선 이후 7월(17%)에 이어 8월(16%)까지 석 달째 1위를 달리고 있다.

외형상 차기 대선주자 경쟁은 박원순-김무성-문재인 등 이른바 빅3 경쟁구도로 압축돼가는 모습이다. 올림픽에서 금·은·동 3명의 메달리스트를 제외하고 4위 이하 순위에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것처럼 대선구도도 빅3, 또는 빅2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4위는 새정연 안철수 의원(9%·한국갤럽 8월 둘째 주)이 차지하고 있다. 야권 대선 예비주자만 놓고 보면 빅3에 포함되지만 여야로 범위를 넓히면 메달권 밖으로 순위가 밀린다.

문제는 10% 이하의 낮은 지지율이 아니다. 안 의원에 대한 야권 핵심 지지층의 이탈이 눈에 띈다. 한국갤럽 8월 조사에서 안 의원은 호남권에서 박원순 시장(35%)과 문재인 대표(18%)는 물론, 김무성 대표(7%)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6%),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6%), 심지어 야권 대선후보군에 새롭게 편입한 이재명 성남시장(3%)보다도 낮은 2% 지지율을 기록했다. 새정연의 핵심 지지기반인 호남이 안 의원을 버렸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령별 지지율을 보면 안 후보는 20대와 30대에서 전체 평균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박원순-문재인 후보보다 낮은 지지율에 머물렀다. 20대 지지율은 박원순(19%)-문재인(17%)-안철수(14%) 순이었고, 30대 지지율은 문재인(20%)-박원순(18%)-안철수(17%) 순이었다. 유권자가 많은 40대(8%)와 50대(4%), 60대 이상(1%)에서 안 의원은 극히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안 의원이 차기 주자로 다시 부상하려면 여론 탄력성을 회복해야 하는데, 야권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외면받아서는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은 앞으로 시정(市政)을 통해 국민에게 어필할 기회가 있고, 당권을 쥔 문재인 대표 역시 내년 총선 성패에 따라 지지율 제고를 노려볼 수 있다. 그에 반해 초선의원 신분인 안철수 의원이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지지율을 끌어올릴 마땅한 수단이 없는 상태다.

한마디만 더 하면 큰일 난다?

그래서 그랬을까. 안 의원이 최근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8월 29일 대전에서 열린 박영선 의원의 북콘서트에서 그는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야권 후보단일화 협상 당시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문 후보가 후보직을 양보하면 민주통합당(현 새정연)에 입당할 의사를 전달했지만 사실상 거부당했다는 것. 안 의원은 “한마디만 더 하면 큰일 난다”고 덧붙였다. 그의 과거사 폭로 발언에 새정연 안팎의 반응은 싸늘했다. 호남의 한 원외인사는 “죽은 자식 나이 세는 것도 아니고, 다 지난 대선 때 일을, 그것도 좋은 기억도 아니고 단일화 실패로 대선에서 패한 뼈아픈 기억을 이제 와 새삼스럽게 꺼내는 것은 안 의원이 여전히 자기 도그마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9월 2일 안 의원은 전북대 좌담회에서 “혁신 작업이 실패했다”며 낡은 진보 청산, 당 부패 척결, 새로운 인재 영입 등 3가지를 혁신 방향으로 제시했다. 공천 룰에 대한 혁신위원회(혁신위)의 쇄신안 발표를 하루 앞둔 9월 6일에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대로 간다면 공멸할 것이라는 위기감과 절박감 때문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9차 혁신안까지 당무위원회(당무위)를 통과하고 마지막 10차 혁신안 발표를 앞두고 나온 안 의원의 ‘혁신 실패론’은 뒷북 지적이란 평가가 많았다.

새정연 한 인사는 “혁신위원장 제안을 고사했던 안 의원이 뒤늦게 혁신위의 혁신 활동을 ‘지적’하고 나선 것은 정략적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안 의원 자신이 당대표 때도 못해낸 혁신을 혁신위 활동 말미에 뒷북치듯 지적하면 누가 그 얘기를 귀담아듣겠느냐”고 말했다.

안 의원은 9월 9일 오전 새정연 당무위가 혁신위가 마련한 내년 총선 공천 룰에 대한 논의를 하던 시각, 호남을 기반으로 신당을 추진 중인 무소속 천정배 의원과 회동했다. 천 의원은 안 의원에게 “새정연에 미련을 둘 게 아니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며 “새판을 짜는 게 불가피하다”며 사실상 신당 합류를 요청했고, 안 의원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호남 민심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를 나눴다. 지금 우리 당의 혁신으로는 호남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안 의원이 천 의원과 주고받은 대화로만 보면 ‘탈당 및 신당 창당 시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천 의원과 회동에 앞서 안 의원은 9월 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탈당 가능성을 묻는 물음에 “(단호한 표정으로) 없다”고 답했다.

안 의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9월 9일 만난 새정연 한 당직자는 “안철수의 모호한 새 정치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이제는 안 의원의 갈지(之)자 행보에 짜증을 내지 않을까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4년 전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으로 국민적 열망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안철수 의원이 2012년 9월 정치에 입문한 지 꼭 3년 만에 당내에서조차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그에게 과연 ‘다음’은 있는 걸까.



주간동아 2015.09.14 1005호 (p12~13)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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