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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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산 가옥이 ‘적(敵)의 재산’이 아닌 까닭

광복 전후 재산권 성립 哀史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8-10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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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군산의 ‘히로쓰가옥’은 일제강점기 미곡유통업으로 거대한 부를 얻은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건물로, 화려한 양식과 예쁜 정원 덕에 아직도 찾는 이가 많다. 일제가 패망한 후 히로쓰는 재산을 모두 환전해 귀국길에 올랐으나 가는 도중 돈을 대부분 잃어버렸다고 한다.

    역시 군산에 있는 ‘이영춘가옥’도 일제강점기 당시 지역 최대 농장주로 악명을 떨쳤던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건물이다. 구마모토는 고리대금업 등으로 교묘하게 토지를 끌어 모아 부를 축적했다. 한인 소작농만 2만 명에 달했을 정도. 구마모토는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탓에 한인 소작농들이 견디지 못하자 의사를 채용했다. 훗날 한국 농촌의료봉사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 쌍천 이영춘 박사가 바로 그다. 이 박사는 그렇게 한인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해 광복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핵, 매독, 기생충 퇴치에 평생을 바쳤다. 그가 머물던 구마모토 농장의 별장이 바로 ‘이영춘가옥’이다.

    ‘히로쓰가옥’과 ‘이영춘가옥’처럼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이 소유했던 가옥은 보통 ‘적산(敵産)가옥’이라고 불렀는데, 후일 대부분 일반인에게 불하됐다. 미군은 일제가 패망한 후 일본 본토와 한반도 남쪽 지역을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그런데 같은 점령지역 주민이었지만 남한에 있는 한인 소유의 재산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반면, 일본인 소유의 재산은 ‘신한공사’ 소유로 전환, 관리했다. 이들 재산은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소유로 넘어왔다.

    이런 미군정의 일본인 재산 몰수와 일반인 불하는 전쟁에서 이긴 점령군의 조치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었다. 국제법상 전쟁에서 이긴 국가는 패전국의 영토를 점령해 획득할 수 있고, 점령 이전 재산권에 대한 법체계는 부정되는 게 상례였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을 알고 보면 ‘적(敵)이 소유한 재산’이라는 뜻의 적산(敵産)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적산가옥은 미군정이 소유권을 인수해 대한민국에 넘겨준 것이므로 ‘적이 만든 재산’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948년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과 동시에 한인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토지소유권 등 법률관계의 출발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령 제2호 토지조사령(옛 토지조사령, 1912. 8. 13. 제령)에 따라 실시한 토지사정 결과를 그 기준으로 하게 됐다(대법원 1986. 6. 10. 선고, 84다카1773 전원합의체 판결). 점령군인 미군정이 점령지역의 재산권 법체계를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총독부령 토지사정 결과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지역에서는 별도 정권이 성립돼 기존 소유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변경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남북통일이 되면 우리의 경우처럼 다시 뒤집어 본래 소유권을 인정해줄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사용관계를 인정하고 본래 소유자에게는 적절한 보상만 해줄 것인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나 막대한 노력과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8월 15일로 광복 70년이 됐지만 한일 간에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너무나 많다. 실질적으로 일본을 넘어서고 진정한 의미의 광복을 완성하려면 그날의 감격을 간직하는 한편, 냉철한 이성으로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하고도 진지한 연구가 절실해 보인다.

    적산 가옥이 ‘적(敵)의 재산’이 아닌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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