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2015.06.08

쓰레기 더미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증거

스티븐 돌드리 감독의 ‘트래쉬’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6-08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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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더미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증거
    아이는 눌러도 자란다. 일본 소설가 사카구치 안고가 한 말이다. 아이는 우려보다 강하고 생각보다 위대하다. 아이처럼만 살아간다면 굳이 성문법이 필요 없을지 모른다. 윤리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고, 도덕을 겁낼 줄 알기에 아이들만 있는 사회는 유토피아라 불러야 마땅하다. 영화 ‘트래쉬’의 아이들 역시 그렇다.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갈지언정, 그들은 어른들의 선생이다.

    ‘트래쉬’는 앤디 멀리건의 소설 ‘안녕, 베할라’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워낙 유명하지만 영화화한 손길은 더 인상적이다. 먼저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등을 연출한 스티븐 돌드리. 소설을 영화 언어로 각색한 사람은 ‘어바웃 타임’의 감독이기도 한 리처드 커티스다. 제작사는 ‘노팅힐’ ‘속죄’ 같은 우아한 영국풍 영화를 만들어온 워킹 타이틀 필름스. 이 정도 궁합이면 영화 질에 대한 기대가 충만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트래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제 빈민가에서 성장한 아이들로 구성된 주연 배우진이다. 영화에는 올해 일흔다섯이 된 마틴 쉰, ‘밀레니엄’으로 주목받은 루니 마라 등 유명 배우도 등장하지만, 이들은 말 그대로 조역에 불과하다. 영화 주인공은 아이들, 쓰레기 더미에서 생을 길어내고 커나가는 쓰레기촌 아이들이다.

    시작은 우연히 주운 지갑이다. 주인공 하파엘은 어제처럼 오늘도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것을 찾다 현금이 꽤 들어 있는 지갑을 줍는다. 안에 든 돈을 절친 가르도와 나누는데, 다음 날 경찰이 몰려와 지갑의 행방을 캐묻는다. 똑똑한 소년은 지갑에 뭔가 비밀이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스스로 비밀을 찾아나간다. 이 추적에 하수구 소년 들쥐가 큰 도움을 준다. 세 아이는 지갑 속 단서들을 퍼즐로 엮어가며 하나 둘씩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연다.

    문제는 그 출구가 꽤 위험하다는 것이다. ‘트래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바로 이 위험이다. 지갑을 감추고 진실을 찾던 하파엘은 결국 경찰들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게 된다. 영화 속 고문 장면은 아이에게 저런 일이 가당키나 할까 싶을 정도로 잔혹하다. 돌드리 감독은 이를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보라고 말한다. 지독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진실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라는 듯 말이다.



    아이들은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다. 더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버스, 지하철 구석구석 빈틈을 잘도 돌아다닌다. 아이들의 작은 몸은 민첩한 조사 및 도피의 도구가 된다. 틈새를 비집고, 담을 넘어 다니는 아이들의 행적은 파르쿠르(Parkour·도시나 자연환경의 장애물을 활용하는 스포츠) 액션보다 더 짜릿하다. 가장 큰 이유는 당위성이다. 아이들의 움직임에는 ‘옳은 일을 한다’는 도덕적 이유가 존재한다. 어른들의 액션스릴러 영화처럼 돈과 욕망을 위한 게 아닌 셈이다.

    물론 아이들이 이루는 성과는 현실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이루기 힘들다 해서 꿈조차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이 된다.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살아가지만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 알고 있는 한 아이들은 투명하게 빛날 수 있다. 이 역설법 위에서 ‘트래쉬’의 제안은 무척 건강하게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의미 있는 영화가 무척 짜릿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영국 거장에게 배워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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