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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히말라야 트레킹 “지금 가도 되나요?”

네팔 3대 코스 쿰부·안나푸르나·랑탕…사라진 ‘신성한 길’에 망연자실

  •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히말라야 트레킹 “지금 가도 되나요?”

히말라야 트레킹 “지금 가도 되나요?”

네팔 쿰부 지방 칼라파타르에 오르면 에베레스트 산이 한눈에 펼쳐진다. 왼쪽 뒤편 검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산이다. 가운데 뾰족한 봉우리는 눕체다.

3월 23일, 10년 만에 다시 네팔을 찾았다. 10년이면 강산이 서너 번 바뀔 시간이지만, 네팔은 예전 그대로였다. 소박한 카트만두 트리부반 공항, 공항에 입국하면 길게 줄을 서 비자를 받는 시스템, 택시운전사와 요금을 놓고 벌이는 가벼운 승강이, 어두침침한 거리, 우리나라 서울 이태원 격인 타멜 거리의 화려함…. 눈에 띄는 큰 변화는 도심의 네팔 사람 대부분이 마스크를 착용했다는 점이다. 그들 스스로 공기가 나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네팔 루피 환율이 많이 하락한 것도 조금 놀라웠다. 여행자들에게 좋지만, 네팔 경제가 안 좋다는 방증이었다.

네팔 여행의 목적은 에베레스트 산이 솟은 쿰부 히말라야를 걷는 것이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뭔가 변화가 필요했다. 혼자 오래 걷고 싶었다. 내 바닥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피로와 고소 증세로 극한의 고통에 처하면 내 바닥이 보이지 않을까. 그 과정에서 내 안의 쓸모없는 것들을 비우고, 히말라야의 순정한 정기를 가득 채우고 싶었다. 물론 세계의 유명 트레킹 코스를 밟아보려는 계획이 있었고, 그 첫 코스로 네팔 히말라야는 제격이었다.

쿰부 트레킹 마치고 열흘 뒤 참사

히말라야는 어떤 여행지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한 번 맛본 사람은 십중팔구 다시 찾고, 제각각 무언가를 얻어서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사람은 히말라야를 다녀온 사람과 다녀오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네팔에는 난이도, 고도, 개인 능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다양하다. 트레킹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로지에서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짐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포터와 가이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 때문에 네팔을 트레킹 천국이라 부르는 것이다.

네팔에는 3대 트레킹 코스가 유명하다. 쿰부(에베레스트 산 지역), 안나푸르나, 랑탕이 그곳이다. 쿰부와 안나푸르나 지역은 이미 다녀왔기에 이번에는 랑탕 차례였다. 그런데 다시 쿰부를 선택했다. 쿰부는 첫사랑이다. 12년 전 처음 만난 히말라야가 쿰부였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서였을까.



이번에는 지리에서부터 걸었다. 쿰부 트레킹은 대개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에 내려서 시작한다. 하지만 본래는 지리에서부터 걸어야 한다. 이 길은 1953년 영국 에베레스트 산 원정대가 지나간 유서 깊은 길이다. 지리에서 루클라까지 꼬박 6일을 걸었다. 2700m, 3500m, 3000m 고개를 연달아 넘어야 하는 길은 지독하게 힘들었지만, 랄리구라스(붉은만병초) 꽃이 피는 히말라야는 지독하게 황홀했다. 11일 만에 트레킹 정점인 칼라파타르(5550m) 정상을 찍고 루클라로 내려오면서 트레킹을 마무리했다. 총 14일을 걸었다.

4월 12일, 네팔 트레킹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산은 꼴도 보기 싫었다. 포터나 가이드 없이 직접 짐을 지고, 짧은 일정으로 다녀오느라 무리한 탓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로지에서 깨어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는 계속 먹고 자고 걸었다. 달콤한 꿈은 4월 25일 네팔에서 들려온 지진 소식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히말라야 트레킹 “지금 가도 되나요?”

페리체에는 아름다운 쿰부의 설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네팔 지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진 발생 16일째인 5월 10일에도 규모 4·#12316;4.4 여진이 3차례 발생했고 12일에는 규모 7.4 지진이 또 일어났다. 사망자는 8000명을 넘어섰다. 네팔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부상자는 1만7871명이고 완전히 파괴된 집이 29만9588채다. 아직 지진 피해를 집계조차 하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네팔 주요 관광지의 지진 피해는 심각하다. 알려진 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파탄 더르바르(왕궁) 광장, 바크타푸르 더르바르 광장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현지 네팔 지인들이 무너진 것으로 알려졌던 보드나트와 스와얌부나트 사원은 아직 건재하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네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일대를 둘러보는 패키지 여행이 인기였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네팔 패키지 여행은 아예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 2회 네팔을 운행하던 국적기가 끊기는 것도 시간문제다.

네팔 3대 트레킹 코스 가운데는 랑탕 지역 피해가 가장 심하다. 랑탕이 지진 발생 지점인 람중 현에서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트레킹 도중 묵어가는 랑탕 마을은 안타깝게도 마을 전체가 산사태도 매몰됐고, 최근 시신 100여 구가 발견됐다. 하루아침에 평화로운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인터넷 네이버 블로그 이웃 한 분이 당시 랑탕을 트레킹 중이었는데, 하산 도중 지진을 만나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운이 나쁜 몇몇 사람은 아비규환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랑탕 지역은 아직까지 구조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이 많아 희생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랑탕 트레킹도 상당 기간 재개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5월 우기엔 지반 약화로 산사태 우려

쿰부 지역의 경우 트레커 피해는 거의 없었고, 원정대 피해가 컸다. 지진 여파로 발생한 엄청난 눈사태가 에베레스트 산 베이스캠프를 덮쳤기 때문이다. 베이스캠프는 쑥대밭이 됐고, 중국 원정대원 등 18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 당시 그곳에 머물던 김홍빈 한국로체원정대 대장은 500m 밖에 있던 다른 나라 산악인들과 텐트들이 눈 깜짝할 사이 눈사태에 휩쓸려 1km 이상 날아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다행히 베이스캠프에 머물던 한국 원정대 3팀은 모두 무사했다. 쿰부 지역은 집이 무너진 곳은 거의 없지만, 정상적인 트레킹이 가능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가장 피해가 덜한 곳은 안나푸르나 지역이다. 현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막혔지만, 푼힐 전망대까지는 가능하다고 한다.

네팔 지진 후 인터넷 트레킹 커뮤니티에는 ‘지금 가도 되나요?’ 하는 문의가 이어진다. 네팔은 관광으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 네팔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다는 일부 의견이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안전이다. 네팔은 5월부터 우기로 접어든다. 비가 많이 오면 지반이 약해지면서 흔들렸던 건물들이 무너지고, 산악 지역에서는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네팔 트레킹 코스들은 가이드인 셰르파들이 길을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 길이 유실되거나 변경된 곳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점검이 끝난 후에도 가이드와 함께하는 것은 필수다.

네팔 트레킹 대안으로 중국 후타오샤(虎跳峽), 말레이시아 키나발루, 유럽 알프스, 파키스탄 카라코람하이웨이 일대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계는 넓고 트레킹할 곳은 많다. 하지만 네팔 히말라야의 공백은 너무 크고 아프다. 세상 어느 곳에 이렇게 신성한 길이 있겠는가.

히말라야 트레킹 “지금 가도 되나요?”

네팔 셰르파들이 건설한 공중 도시 남체의 별이 흐르는 밤.





주간동아 2015.05.18 988호 (p70~72)

진우석 여행작가 mtswam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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