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100만 원 벌면 69만 원 원리금 상환

가계부채 부실, 채무 상환 능력 취약한 하위 20% 고위험군

  • 송경희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ks@woorifg.com

    입력2015-05-11 11:0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0만 원 벌면 69만 원 원리금 상환

    한 노인이 모은 폐지 등을 팔기 위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 재활용센터로 가고 있다.

    1091조 원. 2014년 말 현재 우리나라 가계부채 총액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164%에 달하는 이 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미국 115%, 일본 13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37%였던 것에 비하면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 증가세는 최근 더 가팔라지고 있다. 2014년 하반기 들어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등 주택 관련 금융규제를 완화했고,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상반기 모두 세 차례에 걸쳐 금리를 0.75%p 인하한 데다, 전세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주택 매매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가계부채 총량이 지나치게 증가해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비지출을 위축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우려는 가계부채 규모가 커진 만큼 부실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을 텐데, 그 규모가 금융기관들의 손실 흡수 능력을 넘어설 경우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부분이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 가계부채 문제는 얼마나 위험한가. 일각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특정 수준 등을 임계점으로 제시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국가부채에 비해 가계부채의 임계점을 찾는 작업에서는 통계적 의미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이 돈을 빌리는 가계부채의 특성상, 그 전체 규모가 일정 금액에 이르면 위험하다고 판단하기보다 개별 가계의 재무건전성 같은 세부 사항에 기초해 위험도를 검토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뜻이다.

    소득도 낮고 금융자산도 적고

    우리나라 가계의 재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가계부채 규모를 소득과 자산에 비춰 살펴보기로 하자. 얼마 전 발표된 201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활용해 부채를 보유한 가구들의 경제 현황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공동으로 진행한 가계금융·복지조사는 표본가구 1만 개를 대상으로 가계의 재무상황을 조사한 자료다.



    이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 중 부채를 보유한 가구는 65.7%이며, 임대보증금과 금융부채를 합한 총부채 규모는 평균 9117만 원이다. 부채 보유 가구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4375만 원으로 총부채는 가처분소득 대비 2.1배에 이르고, 이들이 한 해 원리금 상환을 위해 지불한 돈은 1175만 원 규모였다. 정리하면 현재 가계부채의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ebt Service Ratio·DSR)은 26.9%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과거 주요국 사례와 비교해보면 상황은 한층 쉽게 눈에 들어온다. 이들 국가에서 DSR가 20~25% 수준을 넘어섰을 때 은행 위기가 발생한 경우가 많긴 하지만, 위기를 불러오는 DSR 수준은 해당 국가의 주택 자가보유율, 소득 불평등 정도, 인구의 연령 분포 등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주요 금융기관이 일반적으로 DSR 30~40% 수준을 부실화의 임계 수준으로 판단해왔고, 우리 금융당국이 은행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한 DTI를 장기간 40%로 규제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 DSR 26.9% 자체는 그다지 위험한 수치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가구주 특성에 따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부 계층의 채무 상환 능력이 매우 취약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구주의 소득과 직업, 연령에 따라 나눠 살펴보면, 부채 보유 가구 중 소득 1분위층의 DSR는 약 69%에 이른다(그래프 참조). 소득 1분위층이란 소득 순서에 따라 가구를 다섯 그룹으로 나눴을 때 소득이 가장 적은 하위 20% 가구를 가리키는 말로, 간단히 말해 이들이 한 해 100만 원을 벌어들인다면 69만 원을 빚을 갚는 데 쓰고 나머지 31만 원으로 생활을 영위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100만 원 벌면 69만 원 원리금 상환
    소득 2분위층의 DSR 역시 약 37%로 40%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자영업자(DSR 31%), 50대(26%), 60세 이상(27%)의 부채 보유 가구주의 상황 역시 만만치 않다. 부실화 임계 수준으로 거론되는 40%에 비해서는 다소 여유가 있지만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는 수준이다. 이들이야말로 소득 증가율에 비해 부채 증가율이 높은 대표적인 가구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금융부채는 2010~2014년 연평균 4% 이상 늘어났고, 주택 등 자산 마련을 위한 용도보다 사업자금 마련 용도가 컸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소득 증가율은 평균 수준을 밑돌고 있으며, 3년 이상 생존율이 절반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소득의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다. 50대 이상 고령층 역시 소득 증가율이 계속 부채 증가율을 밑돌고 있는데, 은퇴와 함께 기존 소득이 사라지면서 빚을 내 자영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음으로 부채 보유 가구들의 자산 대비 채무 상환 능력을 살펴보자. 부채 보유 가구들은 평균 4억395만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전·월세 보증금과 예·적금, 보험, 펀드, 주식 등 금융상품 보유액을 합한 금융자산 규모는 9673만 원이다. 부채 대비 총자산 규모는 4.4배로,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최종적인 채무 상환 능력은 양호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악순환의 시나리오

    반면 부채 대비 금융자산 규모는 1.1배에 그친다. 이처럼 금융자산이 충분하지 못하면 경기가 급락해 소득만으로 빚을 갚기 어려워질 경우 부채 상환 압력이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 시장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이 경기가 악화할 때 주식 같은 금융자산의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부채 대비 금융자산 규모 1.1배는 충분히 안정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 소득 1분위층과 2분위층, 자영업자, 60세 이상 고령층에서는 이 비율이 아예 1배를 넘지 못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들이 소득 대비 채무 상환 능력 취약층과 그대로 겹친다는 점이다. 소득만으로는 빚을 갚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는 가구주들이 금융자산 역시 충분히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이 한꺼번에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부채 상환 압력은 부동산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부동산가격 하락이 LTV 상승을 가져와 부채 상환 압력을 더욱 심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질 개연성도 있다.

    소득 1분위층과 2분위층이 전체 금융부채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각각 4.3%, 11.4%이다. 채무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계층이 전체 금융부채의 15% 이상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전체 가구를 가구주 특성에 따라 나눈 뒤 각 그룹의 평균값에 근거해 산정한 것이므로 실제와 다소 차이가 날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상환 능력이 취약한 계층의 비중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한 만큼, 가계부채 부실이 한국 경제 전체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정책당국과 금융기관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