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그릭 요구르트 열풍 유업계의 생존 마케팅!

남아도는 우유 재고에 울상, 농축 요구르트 특수에 활짝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5-11 10: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그릭 요구르트 열풍 유업계의 생존 마케팅!
    ‘단백질 2배, 유산균 20배, 고칼슘, 칼로리는 절반.’

    그릭 요구르트(greek yogurt)가 화제다. 그릭 요구르트란 일반 요구르트에 비해 단백질이 풍부하고 지방 함량은 낮은 요구르트를 가리킨다. 일반 요구르트보다 원유가 2~3배 많이 농축돼 있다. 유장(乳漿·젖 성분에서 단백질과 지방을 빼고 남은 액체)을 제거해 순두부처럼 고형질인 것도 특징이다. 그리스인이 즐겨 먹는 형태라고 해 ‘그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는 2012년 일동후디스가 ‘후디스 그릭’을 출시하면서 소비자에게 처음 선보였지만 인기를 끈 것은 최근이다.

    그릭 요구르트 열풍의 진원지는 2015년 3월 15일 방영된 종합편성채널 JTBC ‘이영돈 PD가 간다’이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그릭 요구르트 판매량은 1월 31일~3월 15일에 비해 3월 16일~4월 26일 37.8%나 늘었다. 2, 3, 4월 매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509.7%, 579.9%, 328.4% 급증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방송 직후 그릭 요구르트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출산율 저하로 남아도는 우유

    이를 전후로 기업들이 경쟁하듯 그릭 요구르트 신제품을 내놓았고 마케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양유업 ‘떠먹는 불가리스 그릭요거트’, 빙그레 ‘요플레 요파’, 일동후디스 ‘후디스 오가닉 그릭’, 파스퇴르 ‘뉴거트’, 풀무원다논 ‘그릭 플레인’ 등이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출시된 그릭 요구르트다. 그 밖에 조선호텔 베이커리 베키아에누보, SSG 푸드마켓,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등에서도 ‘프리미엄’을 표방한 그릭 요구르트를 판매 중이다. 기성제품에 만족하지 않는 누리꾼들은 자신만의 그릭 요구르트 제조법과 활용법을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마다 수제 그릭 요구르트를 이용한 레시피, 다이어트 방법이 넘쳐나고 있다.



    그릭 요구르트 열풍의 배경에는 원유업계의 고민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고민이란 남아도는 원유(原乳)의 증가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원유 재고는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150% 증가한 23만 2000여t을 기록했다. 주선태 경상대 축산학과 교수는 “원유 재고와 그릭 요구르트 생산 증가는 연관성이 있다”며 “그릭 요구르트는 남는 원유를 기존 요구르트 대비 2~3배 활용하면서 상품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유업계가 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빙그레 관계자도 “대체로 원유 사용량이 많은 기업이 그릭 요구르트를 판매 중이다. 빙그레의 경우도 원유 소비의 필요성이 그릭 요구르트 생산에 영향을 끼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냉장보관 시 유통기한이 일반 우유는 7~14일인 데 비해 그릭 요구르트는 10~20일로 긴 것도 원유 재고 처리에 장점이다.

    우유 소비 감소도 재고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한국인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000년 30.8kg에서 지난해 26.9kg으로 줄었다. 박상도 한국유가공협회 전무는 “출산율 저하로 우유를 마시는 아동이 줄었고, 몇 년 전 ‘우유의 해로움’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안티(anti) 우유’ 바람이 불어 우유 소비가 급감했다”고 말했다.

    그릭 요구르트 열풍 유업계의 생존 마케팅!

    남양유업 ‘떠먹는 불가리스 그릭요거트’(위)와 파스퇴르 ‘뉴거트’.

    소비량에 맞게 우유 생산량을 줄이려 해도 쉽지 않다. 우유 생산량은 자연적인 영향으로 조절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2014년 1~5월엔 전년도 동절기 기온 상승으로 전년 동기 대비 5~6% 많은 원유가 생산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1분기에도 우유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3.5%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유 소비를 늘리도록 가격을 낮출 수는 없을까. 서울은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홍콩, 싱가포르, 토론토, 도쿄, 오사카 다음으로 우윳값이 비싼 도시다(2013년 9월 서울우유 가격 기준). 하지만 가격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낙농가의 생산비 증진 등을 이유로 2013년 8월부터 원유가격연동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매년 통계청이 조사하는 우유 생산비를 반영하고 전년도 물가상승률을 적용해 다음 해 원유가격을 결정한다. 낙농가는 원유 생산비 증가를 이유로, 유업체들은 영업 이득 보전을 이유로 가격 인상과 관련해 대립하다 합의 아래 시행하게 된 제도다. 2013년 첫 시행 당시 원유가격은 ℓ당 834원에서 940원으로 106원(13%) 올랐고 유업체들은 우윳값을 6.7~9%(150~200원) 올렸다. 이에 소비자들은 흰 우유를 더 외면하게 됐다.

    소비자들은 “우윳값이 비싸다”고 항의하지만 유업계는 “흰 우유는 팔면 팔수록 우유업체에 손해”라고 고충을 토로한다. 박상도 전무는 “우유는 원가를 고려하면 팔아도 ‘마이너스’다. 대형마트에서는 묶음용 판매나 세일 행사를 통해 우유 소비를 촉진하는데 이것이 유업체에 이득을 주지 않는다. 적자는 이미 난 것이고 그나마 손해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업계는 위기 대응책으로 요구르트 개발에 주력하지만 ‘요구르트 붐’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국내 낙농업, 유업계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업계 생존 위한 마케팅

    유업계가 요구르트 판매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익명의 식품업체 관계자는 “요구르트는 장기적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품목이다. 마시는 음료에 비해 소화가 잘 되고, 다양한 맛과 향을 첨가해 식품 주요 소비층인 여성과 어린이를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 트렌드가 지속되는 한 기업들의 요구르트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행에만 힘입어 요구르트 소비를 촉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한 유업체 관계자는 “그릭 요구르트 소비는 3월 방송 직후에 비하면 4월엔 누그러진 상태다. 유행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많이 팔아보려는 것이 업계 속셈”이라고 귀띔했다.

    결국 그릭 요구르트 열풍은 유업계의 생존을 위한 마케팅인 셈이다. 우유 소비는 줄고, 재고는 쌓이고, 비싼 우유는 시장에서 외면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유업계의 유가공품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릭 요구르트 열풍 유업계의 생존 마케팅!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