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신이시여, 아내와 아이들을 돌려주세요

“한국전쟁 난다” 허황한 예언…전쟁 무서워 아이들 데리고 해외로 도피한 아내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5-11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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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시여, 아내와 아이들을 돌려주세요

    K씨는 필리핀과 일본을 오가며 아내와 아이들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자님, 저는 지금 가족이 있는 일본 후쿠오카에 갑니다. 내일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에게 선물 전하러 갑니다. 만나면 좋겠네요.”

    5월은 가정의 달이라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한 아버지가 있다. 평화로웠던 K(47)씨의 일상이 산산조각난 건 수개월 전 일이다. K씨는 모태신앙인 아내(42)를 따라 딸(10), 아들(4)과 경기 파주 A교회에 다녔고, 온 가족이 주말이면 교회 예배에 참여하는 평범한 기독교 가정이었다. 아내가 달라진 건 지난해 A교회 N목사의 사모가 ‘H전도사 한국전쟁 메시지’ 영상을 보여주면서부터다.

    5월 한국에서 전쟁 난다?

    여기에 등장하는 H씨는 재미교포 선교사로 지난해 9월부터 ‘한국전쟁 메시지’라는 영상을 여러 차례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렸고, 지난해 말까지 국내 교회들을 돌면서 관련 내용에 대한 강연과 집회를 해왔다. 영상은 ‘하나님으로부터 12월에 한국전쟁이 벌어진다는 계시를 받았다’는 내용을 다룬다. △이번 한국전쟁은 생화학전이 될 것이다 △북한군이 땅굴을 통해 전쟁을 일으킨다 △적화통일을 막기 위해서는 주요 땅굴을 대기업, 국민 성도들이 연합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 △전쟁이 나면 많은 사람이 생포돼 인육으로 쓰일 것이다 등이 주요 내용이다. N목사의 사모는 관련 영상을 교인들과 공유했고, K씨 아내도 그 내용에 점차 빠져들었다.

    K씨 아내는 남한 내 땅굴의 위험성을 공유하는 네이버 밴드(밴드)에도 가입했다. 해당 밴드에 가입한 회원 1000여 명은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진동을 느꼈다’ ‘서울 잠실 석촌지하차도에서 땅굴 징후를 발견했다’ 등의 글을 올리고 땅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K씨 아내는 “전쟁이 난다. 너무 불안하다. 한국 땅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K씨는 “아내가 너무 불안해하기에 아이들 영어연수도 시킬 겸 필리핀에 3개월간 갔다 오라고 허락하고 비용을 줬다”고 말했다. K씨 아내는 두 아이와 지난해 11월 27일 필리핀 다바오로 출국했다. K씨는 국내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데다 예언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해 함께 떠나지 않았다.



    H씨가 예언한 2014년 12월 14일이 왔다. 전쟁은 나지 않았다. H씨는 당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예언한 대로 지난 14일 오전 4시 30분에 전쟁이 일어났다. 다만 종북 언론이 그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나지 않았다며 SNS에서 비난 여론이 일자 ‘나보고 전쟁 나지 않게 주님께 기도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몇 시간, 아니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기들이 기대했던 전쟁의 모습이 표면에 안 나타난다고 발광들을 한다’고도 적었다. H씨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지난해

    3월 26일 주님이 온라인에 전쟁 예언을 올리라고 해서 올렸다. 주님이 한국에서 발표하라고 하셨고 집회를 하라고 하셨다”고 주장했다. 가족과 생이별한 피난민에 대해서는 “가정 문제는 그 가정이 알아서 해야지 어떻게 똥 기저귀까지 갈아주느냐. 왜 남의 가정사를 내가 신경 써야 하나. 자기가 원해서 피난 간 것이고 자신들이 불안해서 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H씨 예언을 믿고 미국, 태국, 필리핀 등지로 피난을 간 이들은 알려진 수만 100여 명 가까이 된다. H씨의 페이스북이나 그를 따르는 이들이 가입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는 비공개 상태라 접근이 불가능했다. H씨를 강연자로 섭외했던 서울의 한 교회 관계자는 “교인들이 원해서 일회성으로 섭외했던 것일 뿐, 한국전쟁 예언과 우리 교회는 전혀 관련이 없고 이단도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한국교회연합 바른신앙수호위원회는 2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결과가 나오면 ‘H씨 예언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한 상태다.

    신이시여, 아내와 아이들을 돌려주세요
    치료받겠다더니 다음 날 출국

    이제 가족이 안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겠거니 싶었던 K씨에게 아내는 2월 중순쯤 “한국전쟁이 5월에 난다. 5월 말에 오겠다”며 귀국을 거부했다.

    “이쯤 되니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3월 4일 장인어른을 모시고 가족을 데리러 필리핀 다바오로 갔습니다. 아내는 장인어른과 저에게 ‘5월에 심판의 날이 온다.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열한 살 난 딸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아이들만이라도 한국에 데려오고 싶었는데, 아내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반대로 데려올 수 없었습니다.”

    교인들을 이끌고 필리핀으로 간 N목사는 1월 필리핀에 체류 중이던 미성년자 교인들의 부모에게 기소당해 마닐라 이민국 본청 감옥에 수감돼 있다. 이 사건은 ‘한국에서 온 목사가 미성년자들을 납치했다’는 헤드라인으로 필리핀 현지 방송에 보도됐다. N목사는 목사직에서 파면된 상태다. N목사는 잡혀 들어갔지만, 남은 교인들이 K씨를 막아섰다. K씨는 “3월 4일부터 4월 2일까지 한 달여간 현지 경찰과 이민국 관계자를 만나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노력했다. 한 달 동안 가족끼리 식사를 한 건 세 차례뿐이었고,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고 주장했다. 필리핀 이민국과 경찰은 K씨 아내가 성인이고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데려갈 수 없다고 답했다. 결국 K씨는 장기체류하던 교인들이 불법체류자로 신고당해 4월 14일 필리핀 현지 정부로부터 강제 추방돼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비로소 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4월 16일에는 아내와 함께 신경정신과에 가서 진료도 받았습니다. 의사로부터 아내가 ‘현실 검증력이 떨어져 있어 자해나 타해 위험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아내는 치료를 잘 받겠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K씨 아내는 진료를 받은 다음 날 아이들의 옷 사이즈가 작아서 바꾸러 가야 한다며 시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아 아이들과 외출했다. 그러나 아내는 옷가게로 가는 대신 곧장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K씨가 아내가 사라진 걸 알고 출입국 기록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아이들과 일본으로 떠난 뒤였다. N목사의 사모와 딸, 필리핀에서 체류했던 교인 10여 명도 비슷한 시기 일본으로 떠났다. 4월 23일에도 일부 교인의 일본 출국이 이어졌다.

    신이시여, 아내와 아이들을 돌려주세요

    인터넷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H전도사의 ‘한국전쟁 메시지’ 영상(왼쪽)과 H전도사 페이스북에 올라온 기도회 영상.

    K씨는 “아내가 마지막 통화 중 울면서 무섭다고 했다”고 말했다. 혹시 부부 사이에 남모를 불화가 있어 아내가 가출을 감행한 건 아닐까. 그러나 장인마저 K씨를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추측이었다. K씨가 보여준 아내와의 카카오톡 메시지도 그랬다. ‘○○아빠’ ‘○○엄마, 어머니 울고 계신다’ ‘사랑해’ ‘어디냐’ ‘미안해. 나도 울고 있어’ ‘사람 속이면 안 된다’ ‘걱정 많이 했지. 나 무서워’ ‘내가 데리러갈게’ ‘정말 걱정하지 마’ 같은 대화가 오갔다. K씨는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로 아내를 설득했으나 4월 17일 이후부터는 전부 읽지 않은 상태다. K씨 아내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아들 사진이다. 통화를 시도했으나 신호음만 가다 음성메시지로 이어졌고,

    N목사 사모의 휴대전화번호로 전화하자 ‘지금 거신 번호는 당분간 통화하실 수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이후 K씨는 국내 경찰에 N목사의 사모와 딸을 납치 혐의로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말과 함께 “성인이 스스로 외국으로 간 것이기 때문에 납치가 성립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이들도 보호자가 동행하고 있어 문제 삼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찰은 “가정에서의 종교 문제는 경찰이 관여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명시돼 있고, 지나치게 종교에 심취했거나 제삼자가 보기에 명백히 이단, 사이비처럼 보이는 종교에 빠졌다 해도 폭행이나 감금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경찰이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범죄 성립 어려워 추적 난항

    손정혜 비앤아이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종교 활동이 이혼 사유가 되려면 그로 인해 가산을 탕진했거나 아이 양육을 소홀히 하는 등의 갈등이 발생해야 한다. 종교에 심취한 이들의 특징은 무단가출이 잦다는 점인데, 이는 배우자가 동거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기도나 성경 읽는 일이 잦거나 교회를 자주 찾는 것만으로는 이혼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자를 찾아온 K씨는 온몸의 피부가 울긋불긋하게 뒤집힌 상태였다. 가족이 그렇게 되고부터는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게 불가능해졌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A교회에서 K씨네와 또 한 가족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부부, 가족단위로 피난을 간 터라 뭉쳐서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다. 5월 4~6일에는 일본 후쿠오카로 건너가 현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고 아내가 머물 만한 곳을 수소문했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일본 경찰은 “아버님 혼자 가족을 찾아다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단서를 찾게 되면 연락드리겠다”며 그를 다독였다.

    K씨는 “필리핀 경찰도 나를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리 가족 외에 다른 가족의 아이를 감금한 범죄가 성립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 아이를 찾으면 다른 일행의 행방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 집단의 단체 카카오톡 메시지나 통화 기록을 볼 수 있으면 위치 파악이 어렵지 않을 텐데, 국내 경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다바오에서 도움을 준 이민국 직원은 혼자 일본에 머물던 그에게 ‘You are not alone. You have friends who are helping you(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에게는 당신을 돕는 친구가 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제보 e메일에 ‘평생 사랑해야 될 가족을 찾기 위해 메일 보냅니다’라고 적었던 K씨는 언제쯤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K씨 아내는 한국에서 전쟁이 나 불바다가 될 것을 믿으면서 왜 사랑하는 남편은 끌고서라도 도망가려 하지 않았을까. K씨는 “아내가 ‘내가 그곳에서 기도할 테니까 당신은 괜찮을 거야’라고 했다”고 전했다. 지금도 외로운 싸움을 하는 K씨의 휴대전화에는 ‘○○아빠 사랑해’라는 아내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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