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6

2015.05.04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이다’

바흐와 재즈, 聖과 俗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5-05-04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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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이다’
    폴란드 영화 ‘이다’는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작품이다. 지난해 소개된 뒤 사진 작품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흑백 화면과 진지한 주제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어찌 보면 형식은 대단히 단순한 ‘로드무비(Road Movie)’다. 주요 인물이 길 위를 떠돌다 종국에는 자기 내면의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하는 내용이어서다.

    주인공은 두 여성, 수녀와 판사다. 말하자면 ‘성’과 ‘속’의 상징적 인물들이다. 수녀의 이름이 영화 제목인 ‘이다’이다. 원래 유대인인 이다는 제2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서 졸지에 부모를 잃은 뒤 자신이 폴란드인인 줄 알고 살아왔다. 본명이 유대식 이름(이다)이라는 사실은 유일한 친척인 판사 이모를 방문한 날 처음 알게 됐다.

    이모는 전쟁 중 외국에서 반나치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다. 종전 뒤 15년 넘게 지난 이제야 이모와 질녀는 처음 만났고, 두 여성은 어디 묻혀 있는지도 모르는 이다 부모의 시신을 찾으려고 고향 길에 오른다.

    무슨 연유로 이다는 홀로 살아남아 이제까지 ‘폴란드인 가톨릭교도’로 지냈을까. 판사는 그 직책으로 볼 때 마음만 먹으면 이다 부모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이때까지 무엇을 했을까. 이런 질문들 때문에 두 여성이 여행길에 오를 때부터 영화 ‘이다’는 그동안 묻어뒀던, 만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찾아가는 역사극이자 심리드라마가 된다. 이들의 여행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 그 와중에 진행된 폴란드인의 유대인 차별, 그리고 종전 후 벌어진 폴란드 공산정권의 독재 등 역사적 비극이 종횡으로 얽혀 있다.

    자칫 역사의 무게 때문에 한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를 자유롭게 풀어놓는 건 음악이다. 감독은 역시 성과 속의 대립처럼, 고전음악과 재즈를 교대로 쓴다. 특히 제바스티안 바흐의 종교음악과 존 콜트레인의 재즈 발라드가 비중 있게 연주된다.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이다’

    이다가 세속의 사랑에 눈뜨게 만드는 재즈곡 ‘나이마’를 작곡한 존 콜트레인.

    이다는 여행길에 색소폰 연주자를 만나 처음으로 세속의 사랑에 눈을 뜬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서원식에 참여할 테고 그럼 정식 수녀가 되는데, 청년이 연주하는 콜트레인의 재즈 클래식 ‘나이마(Naima)’의 매혹 앞에 흔들리는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고전이 된 이 곡은 콜트레인이 사랑하는 여성 ‘나이마’에게 헌정한 재즈 발라드다.

    영화 종결부에서 두 여성은 드디어 시신을 찾는다. 그럼으로써 이다가 폴란드인으로 자란 이유, 판사 이모가 과거사 추적을 주저해온 이유 등이 밝혀진다. 그 배경엔 우리처럼 전쟁 역사를 가진 사람이라면 상상 가능한 증오와 공포의 범죄가 모조리 새겨져 있다.

    이다는 부모의 유골을 다시 묻은 뒤 이모와 헤어지고 혼자 길을 걷는다. 그때 들려오는 음악이 바흐의 오르간 곡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여(Ich ruf zu dir, Herr Jesu Christ)’다. 기도하는 사람의 간절하고 순결한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다. 이다는 무엇을 기도했을까. 이 음악을 배경으로 설핏 세속의 사랑을 느꼈던 이다가 계속 길을 걷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곧 성과 속 가운데 어디일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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