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6

2015.02.16

전사 왕(Warrior King) 요르단 압둘라 2세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 화형 이후 IS 격퇴 선봉장…공수낙하 훈련 지휘, 병사들과 생사고락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2-16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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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사 왕(Warrior King) 요르단 압둘라 2세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53) 요르단 국왕이 자국 조종사를 불태워 살해한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보복 공격에 앞장서고 있다. 다른 중동 국가 왕들과 달리 전투복을 입고 공습을 진두지휘하는 압둘라 2세에게 서방 언론들은 ‘전사 왕(Warrior King)’이란 타이틀을 붙여줬다. 그의 지시에 따라 요르단 공군 전투기들은 IS 본거지가 있는 시리아 라카 등을 연일 폭격했다. 압둘라 2세는 조종사들에게“기름과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공격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왕세자 즉위 전 18년간 군 복무

    압둘라 2세가 IS 격퇴에 선봉장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보다 IS가 이슬람이 금기시하는 화형이란 잔악한 수단으로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죽였기 때문이다. 2월 3일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IS는 지난해 12월 유엔군의 공습에 참가했다 격추, 생포된 알카사스베 중위를 철창에 가둔 채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질러 살해했다. 이슬람권 국가에선 ‘사람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것은 알라만 가할 수 있는 형벌’이라는 이슬람 교리 때문에 이를 금기시한다. 무슬림이 이슬람 경전 ‘쿠란’(영어명 코란) 다음으로 중요시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에는 ‘오직 알라만이 불로 심판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 때문에 이슬람권에선 장례 때도 화장을 금지한다.

    요르단 등 이슬람권 국가들은 IS의 이번 행위를 신성모독이라며 분노하고 있다. 수니파의 최고 종교기관인 이집트 알아즈하르의 수장 아흐마드 알타옙 대(大)이맘이 IS를 ‘사악한 테러리스트 집단’이라 규정하고 “알라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적인 비열한 테러리스트들을 죽여야 한다”고 비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독실한 무슬림인 압둘라 2세가 IS 격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천명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압둘라 2세는 중동 각국 국왕들과 달리 군 경험이 풍부하다. 1999년 아버지 후세인 1세가 서거한 후 왕위를 계승하기 전까지 군인으로 복무했다.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압둘라 2세는 81년부터 영국군 소위로 임관해 군 생활을 시작했다. 82년 요르단으로 돌아와 육군 기갑여단에서 기갑중대장을 지냈고, 이후 공군 대전차부대로 옮겨 코브라 공격헬기 조종사로 명성을 날렸다. 93년부터는 특수부대로 소속을 옮겨 96년 특전사령관에 올랐다. 99년 왕세자로 지명되기 직전 계급은 소장이었다.



    압둘라 2세는 후세인 1세의 장남이었지만 왕세자가 되지 못했다. 후세인 1세는 당시 요르단의 복잡한 정치 상황 때문에 일찌감치 동생 하산을 왕세자로 지명했다. 18년간 군에서 잔뼈가 굵은 압둘라 2세는 후세인 1세가 죽기 2주 전 마음을 바꾸는 바람에 왕관을 쓰게 됐다.

    압둘라 2세는 즉위하면서 요르단 군을 중동 최고 정예군으로 만들고자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요르단의 전력은 막강하다. 병력 11만7000명과 탱크 1300여 대, 장갑차 4600대, 항공기 250대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특수부대 1만20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압둘라 2세는 지난해 6월 공수낙하 훈련을 직접 지휘하는 등 특수부대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인지는 몰라도 압둘라 2세의 부인 라니아 왕비도 국민과 함께 거리를 행진하며 IS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라니아 왕비는 알카사스베 중위의 아내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이집트 아메리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라니아 왕비는 요르단 시티은행에서 일하던 당시 왕자였던 압둘라 2세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국왕 부부 슬하에는 4명의 자녀가 있다.

    IS와 요르단 왕정은 과거부터 악연이 있다. IS는 2003년 요르단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가 만든 ‘자마트 알타우히드 왈지하드(일신교와 성전)’에서 출발했다. 알자르카위는 같은 해 알카에다의 하부조직이 되면서 자신이 이끌던 조직 이름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로 바꿨다.

    요르단 왕정 전복 기도한 IS

    알자르카위는 1990년 초 요르단 왕정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체포돼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생활을 했다. 출옥 후 다시 테러 모의가 발각돼 이라크로 도망친 알자르카위는 2005년 60여 명이 숨진 암만의 호텔 폭탄테러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 당시 여성 테러범 사지다 알리샤위는 남편과 함께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했는데, 남편만 현장에서 사망했고 자신은 폭탄이 터지지 않아 체포됐다. 알리샤위는 알자르카위의 오른팔로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 폭격으로 숨진 무바라크 알리샤위의 여동생이다. IS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알자르카위의 심복이었다. 이 때문에 IS는 알카사스베 중위와 교수형을 선고받고 감옥 생활을 해온 알리샤위를 교환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요르단 정부는 IS에 대한 보복 조치로 알리샤위를 사형했다.

    압둘라 2세는 그동안 왕정체제를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을 들어왔다. 헌법을 개정하고 의회에 국왕의 권한을 일부 이양해 ‘아랍의 봄’ 때 다른 중동국가들과 달리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다. 요르단은 한국과 비슷한 면적에 인구는 800만 명에 불과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4000달러밖에 안 되는 가난한 나라이며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4%나 될 만큼 비중이 높으나 시리아 내전이 4년째 계속되면서 관광객 발길도 뜸해지고 있다. 게다가 많은 시리아 난민이 요르단으로 넘어오면서 경제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70%가 젊은 층인데 실업률은 30%나 된다.

    이 때문에 젊은 층 일부는 IS 같은 조직에 가입하거나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고 있다. 국민 중 상당수는 IS에 동정적이다. 알카사스베 중위가 IS에 포로로 잡혔을 때 일부 국민이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에 참여한 압둘라 2세를 비난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IS가 알카사스베 중위를 화형이란 극단적인 방법으로 살해한 것도 요르단 왕정을 뒤흔들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압둘라 2세의 강력한 리더십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국민에 대한 사랑이 IS의 ‘야심’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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