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6

2015.02.16

스마트홈이 과연 스위트홈일까

개인정보 유출, 네트워크 부적합 등 난제 첩첩…기업들 표준 확보 위한 정면 승부 시작

  • 민준홍 KT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junhong.min@kt.com

    입력2015-02-16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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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는 등장인물들이 직사각형 모양의 기기로 정보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 화면 속 기기가 아이패드 출시보다 42년을 앞서 태블릿PC의 원형을 보여준 셈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이 영화가 예고한 미래상을 현실로 만든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파울 페르후번 감독의 1990년작 ‘토탈 리콜’은 자동차에서 집 안의 온도와 조명을 조절하고 냉장고 속 식재료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이상적인 스마트홈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그럼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영화 속 스마트홈도 조만간 만나볼 수 있는 것일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스마트홈의 시장 규모가 앞으로 5년간 최대 5배까지 성장하며 빠르게 확산할 것이라 답한다. 장밋빛 전망에 힘입어 구글, 애플, 삼성 등 글로벌 사업자들은 스마트홈을 스마트폰 이후 차세대 수익원이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이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 역시 엄청난 수준. 하지만 실제 구매자인 일반 대중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미래로 가는 길의 걸림돌

    외신에 따르면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 영향력 톱 10 기업인 구글은 스마트홈에 약 60억 달러의 거금을 투자해왔다. 구글의 2014년 하반기 연구개발(R·D) 투자금액보다 큰 액수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스마트홈 관련 기기를 보유한 가정은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어록이나 연기감지기 등 현재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생활가전 제품과 별 차이가 없는 기기까지 모두 포함한 숫자다.

    스마트홈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잿빛 현실 사이에 이처럼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업자들이 고객 처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강점 위주로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한 탓이 크다. 과거에는 CPND(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로 구성된 ‘ICT 가치사슬’ 중 한 분야에서만 성공을 거둬도 시장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으나, 스마트홈 시대에는 이들 분야를 모두 융합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에 실패하면 사용자는 100개의 스마트홈 제품을 이용하기 위해 100가지 사용법을 모두 익혀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할 소비자를 찾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 심리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을 연결한다’는 스마트홈의 강점이 역설적으로 대중에게는 이러한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연결성이 강한 스마트홈의 일부 기기가 해킹에 노출될 경우 다른 기기의 정보까지 연달아 노출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지난해 1월 미국에서 발생한 스마트 냉장고 악성메일 발송사건을 통해 확인된 바 있듯, 스마트 기기도 얼마든지 악성코드 전달자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표준이 확립되지 않아 사업자가 관련 제품을 공급하는 데 리스크가 크다는 점도 한계다. 보통 사업자는 어떠한 표준이 선정되느냐에 따라 설비를 재정비해야 하고, 표준에 맞지 않는 기존 재고를 처리하는 비용도 발생한다. 사용자도 표준이 확립되기 전 구매한 기기를 표준형 기기로 재구매하는 추가 비용을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적극적으로 구매에 나설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는 스마트홈을 운용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네트워크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전 세계 인터넷 사용 인구 비율은 40% 수준까지 확대됐지만, 속도와 용량에 한계가 있는 노후화한 네트워크로는 효율적인 스마트홈 서비스 제공이 어렵다. 미국 AT·T는 현재 네트워크 기술로는 스마트홈 구현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설문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새로운 메가트렌드의 시작

    스마트홈이 과연 스위트홈일까

    2014년 11월 1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2014’에서 홍원표 삼성전자 미디어 솔루션센터 사장이 스마트홈과 가상현실 기술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스마트홈 대중화를 방해하는 이러한 허들을 뛰어넘고자 구글, 애플, 삼성 같은 대표적인 ICT 기업들은 맞춤형 전략을 수립하는 데 부심하고 있다. 균형 잡힌 스마트홈 가치사슬을 단기간에 확보하기 위해 인수합병(M·A)에 집중하는 것이 그 첫 번째 행보다. 구글은 플랫폼·디바이스 사업자인 네스트(Nest)와 네트워크 사업자인 리볼브(Revolve) 등을 인수하며 각 분야 역량을 결집해 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네스트 인수에는 구글 역사상 두 번째로 큰 M·A 금액인 32억 달러를 투자해 이 분야에 대한 구글의 강한 의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두 번째 트렌드로는 스마트홈의 보안 강화가 있다. 현재는 검색엔진과 모바일 운영체제 등 주력 서비스에서 보안이 우선시되고 있지만, 콘텐츠와 플랫폼에 대한 보안이 강화되면서 향후 CPND 가치사슬의 융합체인 스마트홈 전반의 보안도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아이폰 중심의 스마트홈을 구상하는 애플의 경우 고유 운영체제인 iOS8에 대한 암호화와 보안 규정 마련만으로도 스마트홈 보안이 크게 강화되는 결과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표준을 신속하게 확립하기 위한 동맹 다각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삼성은 표준 컨소시엄 3곳(OIC, QIVICON, THREAD GROUP)에 참여하며 경쟁사들에 비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유럽 표준 진영인 QIVICON 가입을 통해서는 표준 확보뿐 아니라 유럽 스마트홈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석이조 효과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스마트홈의 연결성을 뒷받침하며 동맥 역할을 수행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개선 노력은 아직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스마트홈을 포함한 데이터 트래픽은 3년 후 3배까지 폭증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 안정적인 스마트홈 운용을 위해서는 CPND 사업자 모두가 네트워크를 고도화하는 협력 작업에 공동으로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조만간 인터넷은 몸의 일부처럼 익숙해져 아예 인터넷을 느끼는 감각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선언적인 말을 남겼다. 사물인터넷의 등장이 불러올 혁명적 변화의 최전선에 스마트홈이 자리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까지는 스마트홈이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크지만 구글, 애플, 삼성이 준비 중인 전략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스마트홈 시장을 거대시장(mass-market)으로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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