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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터뷰 | 오세훈 전 서울시장

“그래도 복지는 확대해야 한다 ”

소모적 증세 논쟁 그만…지속가능한 복지 위해 해외로 눈 돌려야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그래도 복지는 확대해야 한다 ”

“그래도 복지는 확대해야 한다 ”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쟁으로 한국 사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한국 경제가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복지정책을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국민적 의구심이 커졌다.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가 맞부딪히면서 복지 담론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을 조정하고 리드해야 할 정치권은 리더십 부재로 혼란만 부채질하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한민국에 과연 미래는 있는 걸까.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창과 같다. 잠시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11년 8월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2011년 8월 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8월 24일)를 20여 일 앞두고 ‘주간동아’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을 만나 ‘복지’와 ‘증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눴다.

▼ 과잉복지와 합리적 복지의 핵심적 차이는 뭔가.

“합리적 복지는 먼저 지속가능한 복지여야 한다. 복지정책을 펴더라도 다음 세대에게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시행하다 되돌리는 식의 복지는 지속가능한 게 아니다. 지속가능한 복지의 반대가 과잉복지다. 과잉복지는 표를 얻으려는 복지다. 이게 포퓰리즘이다.”

▼ 증세(增稅)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는데.

“증세해도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 또 증세하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계층이 전형적인 유리 지갑인 월급쟁이다. 과잉복지가 무상급식 하나라면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상 시리즈는 줄줄이 나올 거다. 내년 총선부터 무상 시리즈가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벌써 다 나왔다. 무상의료, 무상보육, 반값등록금까지. 다하려면 매년 20조 원 이상이 들어간다. 그 정도 돈을 감당해야 할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계층이 중산층 샐러리맨이다.”



그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2월 10일 오 전 시장(사진)을 다시 만났다. 주제는 다시 ‘복지’와 ‘증세’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일관된 자세를 보였다. 다만 그는 “‘복지와 증세 논쟁’을 이제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5년 2월 한국 사회는 ‘증세 없는 복지’ 논쟁으로 뜨겁다.

“복지를 늘려 국민 모두가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민주정치의 목적이자 목표다. 그런 점에서 복지는 계속 확대해나가야 한다. 다만 경제적 파이를 키우지 않고서는 복지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수 없다. 복지냐 증세냐에 대한 논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할 문제는 경제적 파이를 어떻게 키워 지속적인 복지를 가능케 할 것인지, 그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은 “‘복지 논쟁’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처럼 흐르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복지) 재원이 부족하다고 가진 자, 힘 있는 자를 적대시하며 빼앗듯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공동체를 위해 가진 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증세 불가피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증세는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나라가 감당하지 못하는 부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른바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 기부를 통해 그 공백을 보충한다. 우리와 다른 제3섹터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 재원 확보를 언급하면서 ‘부유세 신설’ ‘부자감세 철회’ 같은 주장이 나오는데, 그런 주장은 마치 부자한테 더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똑같은 돈을 내놓더라도 무슨 사회적 의무처럼 더 내도록 강제하는 것과, 바람직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여하도록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 바람직한 복지 담론을 위해 어떤 노력이 선행돼야 할까.

“복지를 권리로 여기는 경향이 일부에서 나타나는데, 복지는 권리가 아닌 혜택이다. 무작정, 무한정 도와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국가와 사회가 먼저 돕고, 스스로 일어서면 더 어려운 사람에게 환원할 ‘책임이 수반되는 혜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복지 선순환이 가능하다. 그런데 복지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것처럼, 더 많은 복지가 가능한 것처럼 호도해서 마치 권리와 의무, 갑과 을로 양분해 국민 사이에 투쟁과 갈등을 부추겨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 전 시장은 시장 재임 시절 자신이 시작한 ‘희망통장’을 예로 들었다. 희망통장은 서울시가 최저생계비의 120∼150% 수준인 차상위 근로빈곤층의 자립 의지를 키워주고자 2007년 처음 시작한 복지사업. 희망통장은 시혜적 복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지자체)와 기업, 서민이 삼위일체가 돼 미래로 이어지는 사다리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희망통장은 이명박 정부가 벤치마킹해 ‘희망키움통장’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스스로 노력해 자립할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뜻있는 기업과 독지가가 함께 도울 수 있는 복지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모범적 복지라면 국민도 동의할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지난 1년 동안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중·장기 자문단으로 중남미에 위치한 페루와 아프리카 르완다에 각각 6개월씩 머물렀다. 그는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자신이 몸소 겪은 체험기를 인터넷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아뒀다. 그가 해외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대한민국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로 압축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정부가 앞장서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 해외에서 바라본 한국은 어땠나.

“우리 사회가 복지를 둘러싸고 지지고 볶는 현실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복지 논쟁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지속가능한 복지를 위해 미래 먹거리로 하루빨리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우리나라에서 복지의 중요성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문제는 재원 아닌가. 막대한 재원을 확보하려면 경제를 키워 세수를 늘리거나, 세율을 올려야 한다. 대한민국 안에서 해결하려고 하니 증세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눈을 해외로 돌리면 다른 해법이 보인다. 중남미 시장은 과거 우리가 고속 성장했던 것처럼 도시화와 산업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아프리카도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가도에 진입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중남미 시장과 잠재력이 큰 미래 시장인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우리가 지금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해외에서 우리 경제 파이를 키워 지속가능한 복지 재원을 마련하도록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화두로 논점을 옮겨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 전 시장은 슬로건으로서의 세계화가 아닌, 지역에 뿌리를 깊게 내린 또 다른 얼굴의 세계화를 역설했다.

“페루에는 상주하는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이 1명뿐이다. 자원도 많고 사업 기회도 무궁무진한 곳인데 코트라 직원 혼자 얼마나 많은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겠나. 페루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진출하려는 우리 중소기업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해외 정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코이카 중·장기 자문단이 보통 3년 정도 활동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자문단 활동을 마치고 현지에 남아 우리 중소기업이 진출할 때 교두보가 될 수 있도록 지역전문가를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어떨까. 현지어도 할 수 있고, 사회풍습도 잘 알고, 입찰 정보도 빨리 알 수 있는 해외 지역전문가가 많아지면 우리 중소기업이 해외에서 더 많은 사업 기회를 잡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그래도 복지는 확대해야 한다 ”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국 미래 먹거리를 위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왼쪽)와 세빛섬 같은 ‘감성고속도로’를 더 많이 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자인서울의 상징 DDP

오 전 시장은 한국이란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계로 시야를 넓혀야 미래 한국의 비전이 열린다고 확신했다.

“지금 시점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음 세대 먹거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거기에 정부 전략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 박근혜 정부는 경제 활성화와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있다.

“처음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하겠다’고 하기에 무릎을 쳤다. ‘창의시정’(오세훈 전 시장 재임 때 모토)을 벤치마킹하는 것인가 싶어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창조경제를 제대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어 의아했다.”

▼ 오 전 시장이 이해하는 창조경제는 무엇인가.

“내가 평소 지론처럼 강조하는 ‘창조경제’는 하이테크놀로지와 감성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융합하면 미래 먹거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감성을 디자인으로 구체화해 하이테크놀로지와 융합한 것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세빛섬이다. 그런데 지금의 창조경제는 정보통신기술(ICT)로 대표되는 하이테크놀로지만 강조돼 DJ(김대중 전 대통령) 때 벤처와 창업만 남은 것 같아 안타깝다. 창조경제로 미래 먹거리를 만들려면 감성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고, 정보통신고속도로가 정보강국의 기틀이 됐다면, DDP와 세빛섬 같은 감성고속도로를 많이 깔아야 관광강국이 된다. 서울의 마케팅 포인트는 ‘호감’이다. 창의시정, 디자인수도, 소울 오브 아시아, 해치 등을 통해 서울을 프랑스 파리나 영국 런던과 견줄 수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브랜드로 키운 것도 감성고속도로를 까는 과정이었다.”

▼ 오 전 시장이 그만둔 뒤 대부분 잊힌 브랜드가 돼버렸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브랜드를 애써 만들어놨는데 써먹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누가 그런 브랜드를 만들었느냐에 주목하기보다 그 브랜드가 가진 가치에 더 주목해서 활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국가 브랜드를 어떻게 키워 미래 먹거리로 만들 것인지, 해외로 눈을 돌려 복지에 필요한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담론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목소리를 내겠다.”

2011년 8월 국민은 “과잉복지, 포퓰리즘 복지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던 오세훈을 외면했다. 그러나 3년 반 만에 한국 사회는 다시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이란 후회와 미련 때문만은 아니다. 과잉 무상복지의 한계와 폐해를 일찍이 예견한 그가 지금은 어떤 희망과 비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려는 국민이 많아진 것이다. 2011년 8월에 만난 오세훈은 과잉복지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얘기했다. 그러나 3년 반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우리 사회의 미래와 희망을 준비하고 있었다. 복지와 증세 논쟁이 아닌, 국가 브랜드와 미래 먹거리에 대한 그의 비전을 듣고 있노라니 문득 중국 사상가 ‘루쉰’의 소설 ‘고향’이 떠올랐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 루쉰, ‘고향’ 중에서



주간동아 2015.02.16 976호 (p14~16)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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