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4

2015.02.02

저소득층 옥죄는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

건보료 개편 우왕좌왕…정률 적용으로 저소득층에 더 불리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2-02 0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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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되고 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변경한 소득세법 개정으로 봉급생활자의 세 부담을 늘려 유리지갑의 분노를 촉발했던 정부가 이번에는 고소득자의 보험료를 높이는 대신 서민의 보험료 부담을 대폭 낮추려던 국민건강보험료(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석연찮은 이유로 무산시켰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1월 28일 “올해 중으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고 밝혀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도 1월 29일 건보료 개편 중단에 대해 “백지화된 것은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해 추진하려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보건복지부가 1년 넘게 기획단까지 꾸려 개선안을 논의해왔던 사안을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꼴’이라 풀이한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건보료 부담이 늘어날 부자 직장인과 새롭게 건보료를 부담하게 될 고소득 피부양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백지화한 것 아니냐는 것.

    보건복지부는 2013년 7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을 발족해 지금까지 11차례 회의를 거쳐 개선안을 마련했다. 1월 29일 최종 회의를 앞두고 유력하게 거론됐던 안은 근로소득자의 경우 월급 외 이자와 배당, 임대 등으로 2000만 원 넘는 추가소득이 있는 부자 직장인 26만 명에게서 건보료를 더 걷고, 연간 2000만 원 이상 소득을 거두면서도 직장가입자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는 고소득 피부양자 약 19만 명의 무임승차를 막도록 하는 것이었다. 약 45만 명 고소득자의 건보료는 인상되겠지만 ‘최저 보험료 제도’를 도입해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 지역가입자 602만 명의 건보료 부담을 대폭 낮출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백지화하자, 건보료 인하 혜택을 보게 될 서민보다 건보료 부담이 늘어날 고소득층을 더 크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저소득층 옥죄는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 28일 “올해 중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며 사실상 백지화를 선언했다.

    조세 전문가들은 “연말정산 논란으로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난 중산층의 불만이 폭발했지만, 더 큰 문제는 준조세 성격의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의 가파른 상승”이라며 “서민 소득을 해마다 큰 폭으로 갉아먹는 사회보험이 앞으로 더 큰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월급명세서를 받아든 샐러리맨이라면 급여를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공제되는 금액이 많아 월급이 확연히 쪼그라든 것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소득에 연동돼 공제되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실업보험, 산재보험 등 이른바 4대 사회보장 보험료 부담이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은 1977년 의료보험(2000년 국민건강보험으로 통합)을 도입한 이래 88년 국민연금, 95년 실업보험을 시행했고, 2008년부터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됐다. 각종 사회보험이 도입되면서 근로자가 부담해야 할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 역시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

    건강보험의 경우 2001년 3.4%에서 해마다 보험요율이 올라 2013년엔 5.89%로 올랐다. 2008년 도입된 장기요양보험 역시 5년 만에 보험요율이 2배 가까이 올랐다. 사회보험요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소득 하위 90%의 부담률 역시 급등했다.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근로자 소득에 보험요율을 곱해 산출한다. 다만 근로자가 100% 부담하지는 않는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실업보험의 경우 근로자와 고용주가 각각 절반을 부담하고 산재보험은 고용주가 부담한다.

    2013년을 기준으로 사회보험요율은 소득 대비 국민연금 9%, 건강보험 5.89%, 장기요양보험 0.386%, 실업보험 1.3%였다. 예를 들어 월 100만 원을 받는 근로자가 부담하는 사회보장기여금은 국민연금 4만5000원, 건강보험 약 2만9450원, 장기요양보험 1930원, 실업보험 6500원이다. 연소득 1200만 원에 대한 소득세율이 6%(6만 원)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득세보다 각종 사회보험 부담금이 더 높은 셈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은 월소득에 따라 부과되지만, 일정 소득금액 이상에 대해서는 상한선이 존재한다. 국민연금의 경우 월소득 398만 원이 넘더라도 소득 상한액(398만 원)에 보험요율을 곱한 보험료를 납부할 뿐 더는 늘지 않는다. 건강보험의 경우 월소득 상한액이 7810만 원으로 책정돼 있다.

    저소득층 옥죄는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

    이규식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기획단 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2014년 9월 11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북부지역본부에서 열린 제1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회보장기여금 역진현상 뚜렷

    저소득층 옥죄는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소득 상한액을 설정해놓은 탓에,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소득이 많은 고소득층일수록 낮아지는 역진현상이 나타난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가 발표한 ‘계층별 조세부담률 : 장기추이와 국제비교’에 따르면, 2011년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은 최상위 0.01%는 전체 소득 가운데 2.8%에 머문 데 반해, 상위 0.1% 이상~0.01% 미만 그룹은 7.0%, 상위 1% 이상~0.1% 미만 그룹은 10.0%, 상위 10% 이상~1% 미만 그룹은 15.3%, 그리고 하위 90% 이상은 10.8%로 나타났다(그래프 참조). 즉 소득이 가장 높은 0.1% 이상 최상위 계층에서는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이 한 자릿수에 머문 반면 하위 90% 이상과 상위 10% 이상~0.1% 미만에서는 전체 소득에서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중이 10%를 넘었다.

    김낙년 교수는 “소득세율은 소득구간별로 세율을 달리하는 누진세율을 적용하지만 사회보장기여금은 정률로 적용돼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의 실질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려는 이유도 고소득층에게서 더 걷어 저소득층의 건보료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였다. 그러나 연말정산 논란으로 세 부담 증가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화들짝 놀란 정부는 정작 해야 할 일도 안 하는 ‘복지부동’ 모드로 선회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집권 3년 차를 맞는 올해를 “가장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연말정산 논란 이후 정부 당국이 보이는 태도는 ‘가장 열심히 할 일을 회피하는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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