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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었건만

영화 ‘국제시장’ 열풍 … 때아닌 세대갈등 역풍

  •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었건만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었건만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을 둘러싼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 영화 한 편을 두고 좌와 우로 나뉘어 맹렬히 다투는 모양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확인한 우리 사회의 팽팽한 이념적 대립 구도가 ‘국제시장’이라는 영화 한 편에 대한 반응에서 다시 한 번 느껴진다.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사회 내부의 갈등이 새삼 증명된 터라 여러모로 씁쓸하다.

‘국제시장’은 1950년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에서 시작해 201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에 이르는 격동의 현대사를 덕수(황정민 분)라는 한 가장의 삶으로 응축한 영화다. 흥남철수 당시 “아바이가 없으면 장남인 덕수 네가 가장”이라는 당부를 유언처럼 남긴 채 아버지가 실종되자 덕수는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다. 미국 병사들의 구두를 닦으며 푼돈을 벌던 소년 시절을 지나 60년대 자신보다 똑똑한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파독광부가 되고, 70년대에는 여동생의 결혼자금을 마련하고자 베트남으로 떠난다. “이제 제발 자신을 위해 살아보라”며 우는 아내의 절규에도 늘 가장이라는 단어를 가슴에 새긴 채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던 덕수는 흰머리 성성해진 노년이 돼 이렇게 말한다. “내는 그래 생각한다. 힘든 세월에 태어나가 이 힘든 세상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기 참 다행이라꼬.”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었건만
선장이 되길 꿈꿨다고 다 늙어 조심스레 털어놨으나 정작 아내조차 알지 못했던 꿈. 그렇게 덕수는 자신을 지우고 가족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평생을 살았다. 생의 끄트머리, 그에게 남은 것은 부산 국제시장의 어느 구석을 차지한 ‘꽃분이네’라는 외제품 취급 상점이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꽃분이네만큼은 팔지 않겠다던 고집을 꺾은 날 밤, 덕수는 아버지의 사진을 품에 끌어안고 꺽꺽 소리 내어 운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며.

주인공 이름을 자신의 아버지 이름에서 따왔다고 밝힌 윤제균 감독은 “젊은 관객이 부모와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으나, 영화를 향한 반응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흐르고 있다. 영화를 둘러싼 논의가 예상과 달리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 지나치게 격해졌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인 터라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과연 ‘국제시장’ 속 주인공이던 우리의 아버지들은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을 몸으로 체험한 이들이다. 전쟁 이후 냉전 체제에 강제 편입된 외세 의존적인 국가는 철저한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이들을 대했다. 그런가 하면 당장 생존 문제가 급박한 가운데 사회는 급격한 속도로 자본 시대를 향해 뻗어갔고, 영화 속에서 미군을 향한 “쪼꼬레또 기브미”로 표현됐듯, 서구 문화가 다량으로 서민의 삶에 침투돼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이승만 정부는 기본적인 민주 절차까지 내동댕이친 채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리 아버지들은 “잘살아보세”를 죽어라 목청껏 노래 부르며 해야 했다. 입 꽉 물고 전쟁의 참상을 견뎌내는 와중에도 여전히 실업률은 높았고 생존권 역시 위협받았다. 1960년 당시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고교생과 대학생이 중심이 된 4·19혁명 이전, 이미 이승만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고 권력으로 국민을 억누르고 있었다. 결국 4·19혁명을 계기로 이승만 정부는 물러났다. 이후 4대 대통령 윤보선을 거쳐 16년간 장기집권한 세력이 박정희 정부다.

그 시절을 살아낸 이들은 세계를 재편입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영화 속 꽃분이네가 왜 하필 외제품 취급 상점인지 새삼스럽기도 하다. 대미(對美) 의존적 경제 상황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화가 유입됐고, 1960년대에는 실업 문제 해결과 외화벌이를 위해 정부가 나서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 등의 노동력을 파견했다. 꽤 높은 수입이 보장됐기에 500명 모집에 4만여 명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하나, 정작 광산 노동 경험이 있는 인력은 적어 후유증도 컸다.

아버지도 울고, 아들도 울었건만

영화 ‘국제시장’ 속 덕수는 우리네 아버지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1960년대에는 정부가 나서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 등의 노동력을 파견했고, 7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지원 요청에 한국군 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군대를 파병했다.

자식 앞에 놓인 좌절의 현실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지원 요청에 우리 정부는 한국군 사상 처음으로 해외에 군대를 파병한다.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이 파병됐고, 고용 증대와 경제 성장을 가져왔으나 희생도, 후유증도 컸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을 통해 전쟁 참상이 자주 노출되지만, 살육이라는 공포감은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소설 ‘하얀 전쟁’에서 디테일하게 묘사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 전쟁 경험은 진한 트라우마를 안긴다. 이 모든 내상을 지고 나서야 간신히 먹고살 만한 시기가 찾아왔다.

그 시절을 산 이들은 짧다면 짧은 생애 온갖 처참한 광경을 딛고 일어나 국가의 찬란한 성장을 목격하게 된다. 군사정권은 그들이 성장의 주역이라며 다독이고 달랬다. 성취감을 고조하려고 애썼다. 그런 한편 부정부패는 가속화됐다. 국가의 주도적인 교육 아래 기적이라 부르는 성장을 체험한 5060세대가 스스로에 대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큰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 안에서 빚어졌다. 그렇지만 오늘날 젊은 세대는 이들의 기적에 별 감흥이 없다.

사실 단순했다. ‘국제시장’은 “우리 아버지도 참 힘드셨겠구나”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아버지 세대가 감내해온 고생과 고통을 쓰다듬어볼까’로 시작한 이야기의 끝은 엉뚱한 번외 공방으로 번졌다. 서글프게도 ‘노력하면 다 이뤄질 수 있다’고 믿었고 ‘노력해 이만큼 이뤄냈다’고 자부하는 아버지 세대를 지나, 오늘날 노력해도 도무지 이뤄낼 수 없는 좌절의 현실을 사는 자식 세대는 아버지를 향해 위로의 손길조차 내밀 수 없게 됐다. 아버지와 아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 상황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정작 뒷짐을 진 채 이런 갈등을 이용할 뿐이다. 그저 시대가 안 좋다고 위안하기엔 우리 아버지는 오래 힘들었고, 그들의 아들은 다른 이유로 우울하다. 그렇지만 바짝 선 날을 서로에게 돌리는 것이 과연 맞을까.



주간동아 970호 (p66~67)

배선영 텐아시아 기자 sypov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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