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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北 대화·국지도발 반복 이유

‘전작권’을 받았어야 했나

잇따른 북한의 ‘무력시위’로 전환 연기 여러모로 씁쓸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전작권’을 받았어야 했나

‘전작권’을 받았어야 했나
210포병여단. 주한미군 2사단의 3개 여단 중 하나, 병력 규모 2000여 명. 그러나 이 부대의 실체는 다연장로켓(MLRS)과 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 등 미군 지상전력의 핵심 무기체계를 운용하는 부대라는 점을 살펴봐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유사시 수도권을 향해 포탄을 날릴 250여 문의 북한 장사정포를 무력화하는 이른바 대화력전(對火力戰)이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다.

경기 동두천에 자리한 이 부대는 2004년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새로 짓는 평택기지에 통합될 예정이었지만, 10월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통해 현재 위치에 남기로 결정됐다. 국방부가 밝힌 이번 SCM 합의의 주요 배경은 ‘북한 핵 능력 심화’. 그러나 군사적으로 따지면 지상전력인 210포병여단은 북한의 핵 능력과는 사실상 무관하다.

그사이 2사단이 수행하던 대화력전 지휘본부 임무는 2005년 10월 한국군 3군사령부로 이전됐고, 이후 군 당국은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MLRS와 관련 전술지휘통신체계(C4I) 등을 구비해왔다. 그러나 이번 SCM 이후 군 관계자들은 “210포병여단 없이는 대화력전 수행이 쉽지 않아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한다. 한국군 주도로 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2004년 당시의 판단이 틀렸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북 신형무기 평택 타격 가능

당초 210포병여단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이유는 대화력전에서의 ‘2차 공격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었다. 한국군이 북한 장사정포 부대와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나면, 후방으로 물러나 있던 210여단 전력이 임무를 교대해 남은 북측 전력을 궤멸한다는 개념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러한 그림 속에 초기 대화력전에 투입되는 전력이 막대한 희생을 치를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는 점이다. 210포병여단과 미군 2사단이 이른바 ‘인계철선’으로 불린 이유다. 자국민 병사의 희생에 극히 민감했던 당시 워싱턴은 이들의 엄청난 초기 손실을 감수할 뜻이 없었기에 후방 이전을 택했고, ‘2차 공격 능력 확보’라는 명분은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여기에 “210여단 없이는 대화력전이 어렵다”는 최근 설명을 결합하면, 결론은 한층 싸늘해진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는 북한의 장사정포 공격을 막아내는 것보다 자국군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이번 잔류 결정은 미국이 이런 방침을 포기하고 ‘인계철선’을 자임하기로 했다는 뜻일까. 해답을 풀 열쇠는 KN-02와 300mm 방사포, KN-10 등 북한이 새로 개발한 무기체계에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올해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며 이들 무기체계의 신뢰성을 유감없이 과시해왔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200km를 넘나드는 비행거리다. 프로그(FROG)와 240mm 방사포 같은 기존 무기체계에 비해 사거리가 늘었고, 정밀도도 향상됐다. 예컨대 기존 스커드미사일의 경우는 500km 남짓을 날아갈 수 있지만, 오차가 매우 큰 데다 액체연료를 쓰는 까닭에 군사시설을 정밀 타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북한이 신형 무기체계 개발에 열을 올린 이유는 바로 평택의 새 미군기지였다. 210포병여단을 비롯해 이 지역으로 이전하는 미군 전력을 ‘쫓아가기’ 위해 새로운 정밀타격 수단 확보에 공을 들여왔다는 뜻이다. 2014년 진행된 시험발사로 이들 무기체계의 사거리 안에 평택기지가 포함된다는 사실이 입증됨에 따라, 미군으로서는 굳이 동두천을 떠날 이유가 사라진 셈. 인계철선과는 관계가 없다는 얘기다.

‘전작권’을 받았어야 했나

한민구 국방부 장관(오른쪽)이 10월 23일(현지시간) 워싱턴 미 국방부 청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를 명시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한 뒤 척 헤이글 미 국방부 장관에게 건네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연쇄 발사가 보여준 ‘상시적 도발’이라는 또다른 패턴 역시 이번 SCM의 핵심 결정 사항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연기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핵 무장 이후의 북한이 국지충돌과 군사적 긴장을 이어가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전시’와 ‘평시’라는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전면전을 상정할 때나 명확했던 경계가 점차 흐려진다는 뜻이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당시 한국군 내부에서는 F-15K 등 항공자산을 동원해 북측을 보복 타격하는 방안을 두고 미국 측 승인이 필요한지 여부로 격론이 벌어진 바 있다.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청와대와 군 당국이 다른 의견을 내놓으며 빚은 혼선은 연평도 포격 대응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지 못한 핵심 원인이었다. 국지충돌 상황에서 한미연합사령관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지,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대응해야 하는지를 두고 혼선이 빚어진 실제 사례다. 전·평시 작전통제권 분리로 인한 한계였다.

北 상시적 무력도발 우려

신속한 판단이 중요한 군사 부문에서 잠깐의 지연이 엄청난 차이로 이어질 수 있음은 불문가지. 6·25전쟁 식의 대규모 전면전보다 북측의 상시적인 무력도발을 염려해야 하는 한반도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전·평시 분리로 인한 혼선이 훨씬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이러한 상황은 미국 측에게도 전작권 전환을 기한 없이 연기하는 이번 결정에 동의하게 만든 한 원인으로 보인다. 국지도발 상황에서 한국 측이 ‘과도하게’ 독자 대응하지 않을까 경계해온 워싱턴으로서는 전작권을 계속 갖고 있는 게 상황 관리에 더 유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상시적인 긴장이 이어지는 와중에 확전 결정권을 한국에 넘기는 일이 위험할 수 있다고 본다는 뜻이다.

실제로 2010년 연평도 포격 직후 한국 측은 항공전력을 동원한 보복 공격 계획을 제안했지만 미국 측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은 1월 출간한 자서전에서 “한국의 보복 계획은 과도하게 공격적(disproportionately aggressive)이었다. (중략) 긴장 고조를 우려해 오바마 대통령 등이 한국 측 상대와 며칠간 통화하면서 논의했다”고 회고했다.

여기까지 살펴보고 나면, 변화하는 북한의 군사전략을 고려할 때 전작권 전환은 오히려 한국 측에 더 긴요했을 수 있고, 미국이야말로 연기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군사적 차원에서 따져봐도 전작권을 환수해 정확한 타이밍에 북한 도발에 독립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군 당국은 전작권 전환 연기를 간절히 원했고, 미국 측은 이를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 측에 남았지만 미국 역시 이를 통해 적잖은 군사적, 정치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우리 측 협상전략에 반영되지 못했다. 동맹에 대해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강대국과 고정관념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국의 차이. ‘안정과 불안정의 역설(stability-instability paradox)’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박근혜 정부의 한계다.



주간동아 2014.11.10 962호 (p54~55)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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