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2

..

바쁜 수확철 ‘우프 농활’ 어때요?

농가 일손 돕고 숙식 제공받는 프로그램…국내는 물론 해외 참가자도 늘어나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4-11-10 11: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바쁜 수확철 ‘우프 농활’ 어때요?

    경기 양평의 한 농가에서 호스트 김은옥 씨(왼쪽)가 말레이시아 우퍼 간 유트 링 씨와 밭일을 하고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끼고 얼마나 달렸을까.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농가와 전원주택들을 지나 산허리로 좀 더 올라가자 흙벽돌로 지은 아담한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가을 햇볕이 따사로운 마당에 두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잔디 사이로 고개를 내민 잡초를 뽑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에 허리를 편 김은옥(52) 씨가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김씨 옆에서 호미를 들고 인사를 건넨 사람은 말레이시아에서 온 간 유트 링(Gan Yuet Ling) 씨. 일주일째 이곳에 머물고 있는 링 씨는 자국에서 비서로 일하다 그만두고 여행에 나섰다고 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그는 “한국 드라마 보기와 여행,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여기는 산이 있고 꽃이 많아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링 씨가 경기 양평군 양서면 산골짜기에 위치한 김씨 시골집에 오게 된 건 ‘우프’(WWOOF·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덕분이다.

    친환경 농가와 여행객 연결

    우프는 1971년 영국인 수 코퍼드(Sue Coppard)가 시작한 프로그램으로, 서식스 지방의 한 농가에서 방문객이 주말을 이용해 일손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은 것이 출발점이었다. 이후 농가와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현재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일본 등 세계 102개국에서 운영 중인데,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행객은 ‘우퍼(WWOOFer)’라 불리며, 농가 일손을 돕는 대가로 ‘호스트(host·농장주)’로부터 숙식을 제공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처음 시작됐고 (사)한국농촌체험교류협회(우프코리아)가 국내 농가 모집과 관리, 국내외 우프 홍보와 프로그램 개발 및 진행, 해외 우프 농가와 연결 등의 업무를 하고 있다. 우프코리아에서 실무를 전담하는 후쿠야마 코타 사무장은 “농촌의 일손 부족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프는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농가와 여행객을 연결해준다. 그곳에서 우퍼는 농사일을 도우면서 다양한 것을 보고 듣고 배우게 된다. 우프 활동(우핑·WWOOFing)이 일반 봉사 활동과 다른 점은 노동과 숙식 교환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인 후쿠야마 사무장이 우프코리아와 인연을 맺은 건 4년 전. 대학 졸업 후 자국에서 우프에 참여한 뒤 해외 우프를 경험하고 싶어 한국에 왔다가 눌러 앉았다.



    1년 단위로 가입자를 받는 우프코리아 회원 가운데 우퍼는 현재 481명이며 호스트는 경기, 강원, 경상, 충청, 전라, 제주 등 전국에 걸쳐 64곳에 있다. 호스트는 유기농 농가, 동물농장, 텃밭이 있는 대안학교, 사찰 등으로 다양하다. 자급자족 농가에 사는 김은옥, 이인구(53) 씨 부부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좋아해 우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1년 차 호스트인 김씨 집에 지금까지 머물다 간 우퍼는 12명. 김씨는 “현재 우리 집에는 대학생 딸을 포함해 세 식구가 산다. 우리가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기 때문에 우퍼들이 할 일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 대신 내 취미인 퀼팅, 수예, 한지공예 등을 가르쳐주고, 마을복지회관에 데려가 난타(사물을 타악기처럼 두드리는 공연)를 보여주며 직접 체험하게 하는 등 우리 전통 문화를 알려주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강원 영월에서 소나무를 재배, 판매하는 김현식(59), 권미숙(46) 씨 부부는 10년 전 귀촌했다. 지금까지 우퍼 30명을 맞이한 김씨는 “우퍼는 대부분 젊은이고 농사일에 서툴다. 호스트가 일손을 얻겠다는 기대만으로 그들을 대하면 서로 실망할 수 있다. 내가 호스트를 하면서 얻은 건 도전을 좋아하는 젊은이를 계속 만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다. 그들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해외 소식을 전해 들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알 수 있는 것도 호스트 체험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우프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우핑을 한 해외 우퍼는 약 700명이다. 이 가운데 약 400명은 우프코리아가 1~3일간 진행하는 ‘그룹우프’에 참여했다. ‘그룹우프’는 시간이 별로 없거나 혼자 우퍼로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을 위해 마련한 일종의 체험 우프다.

    비닐하우스 없이 노지 농사를 짓는 금경연(54) 씨 집에는 얼마 전 그룹우프 참가자들이 다녀갔다. 10여 년 전부터 호스트 생활을 하고 있는 금씨는 “처음엔 영어를 잘 못하는 것 때문에 우퍼를 받는 걸 망설였다. 그런데 막상 우퍼들을 만나보니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까지 30개국에서 220여 명의 우퍼가 우리 집을 다녀갔는데, 좋은 경험이었고 농사일에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밝혔다.

    바쁜 수확철 ‘우프 농활’ 어때요?

    우프코리아가 경기 남양주에서 진행한 그룹우프의 감자 캐기 체험(왼쪽)과 그룹우프에 참여한 국내외 우퍼들.

    내국인 우퍼 꾸준히 증가

    국내 우프에는 한국인도 참여할 수 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별적으로 우핑을 한 내국인은 100명. 후쿠야마 사무장은 “2011년 우프코리아가 사단법인이 되기 전까지는 외국인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국인이 국내 우프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아직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국인 우퍼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소개했다.

    해외 우프에 참여하는 사람도 조금씩 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에서 우핑을 한 대학생 고석수(26) 씨는 “여행의 한 방식으로 우프를 선택한다”며 “여행 경비를 줄일 수 있고, 유기농 건강식을 먹으면서 땀 흘려 일할 수 있는 것도 좋다. 우프 덕에 자연친화적인 삶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다. 농가와 여행객이 도움을 주고받지만 금전 거래는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친밀감과 편안함도 좋다”고 했다.

    호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우프에 참여한 교사 이옥종(58) 씨도 “외국에는 우프 활동을 하는 젊은이가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 젊은이도 우프를 통해 색다른 문화를 많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프 마니아’가 된 이씨는 현재 우프코리아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며, 초보 우퍼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우프코리아에 따르면 올해 내국인 우퍼 100명의 연령은 20대가 34.7%로 가장 많다. 30대(32.0%), 40대(18.7%), 50대(11.5%)가 뒤를 이었다. 후쿠야마 사무장은 “외국인 우퍼의 경우 대학생 등 젊은이가 대부분인 반면 한국은 40, 50대가 10명 중 3명꼴로 적잖다. 귀농, 귀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체험 삼아 우프에 참여한 결과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우퍼가 되고 싶다면 우프코리아 인터넷 홈페이지(wwoofkorea.org)를 통해 가입하면 된다. 호스트는 우프코리아에서 실시하는 현장 실사 등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