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2

2014.11.10

대학 서열화 조장, 해도 너무해

일부 언론사 대학평가 비판 고조…순위 아닌 인증평가 방식 필요

  • 윤솔 자유기고가 zzyori0206@gmail.com

    입력2014-11-10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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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서열화 조장, 해도 너무해

    10월 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좋은학생회만들기모임 소속 경희대·동국대·성공회대·한양대 총학생회 회원들이 언론사의 대학평가에 대한 문제점을 알리는 퍼포먼스 및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정반대 석차가 찍힌 2장의 성적표를 동시에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언론사의 들쭉날쭉한 ‘대학평가’에 대학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최근 일부 언론사가 주도하는 대학평가의 ‘신뢰성’에 대해 말들이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각 언론사마다 평가에 반영하는 지표가 다르고 적용기준에도 차이가 있다 보니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단순히 몇 개의 지표를 추출해 줄을 세운 결과가 과연 그 대학 전체의 경쟁력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인지, 또 이런 평가 방식이 진정 대학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평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대라는 말이 있다. 일례로 서울 소재 숙명여대는 지난 몇 년간 각종 언론사 평가에서 다소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왔다. 재정이 튼튼하고 재학생 수가 많은 남녀공학대들과 동일선상에서 비교를 당한 결과다. 숙명여대는 2014년 서울 소재 여대 가운데 취업률 1위, 주요 남녀공학대의 여학생 취업률과 견줘도 10위를 차지했지만 ‘중앙일보’ 평가에서는 종합 3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대학들의 설립 목적과 전공계열 구성상의 특성, 소재지 및 재단의 지원 여건이 모두 다른데, 이를 순위로 매기는 부분이 아쉽다”며 “진정한 대학평가가 되려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제 나름의 선택과 집중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꾀하는 대학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평가 거부 대학생 릴레이 선언



    10월 초 중앙일보는 전국 4년제 대학 100여 곳을 선정해 △국제화 △교수연구 △교육여건 및 재정 △평판 및 사회 진출도 등의 지표에 따라 표준화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부여했다. 또한 자사의 대학평가가 “대학, 학과에 대한 다양한 평가로 교육 수요자인 학생, 학부모에게 생생한 대학정보를 제공”하고 “중앙일보가 대학가에 심은 ‘경쟁코드’는 학생을 위한 교육여건 개선과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대학 연구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대학평가는 ‘대학, 대학사회의 동반자로서의 구실’을 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일부 학교당국뿐 아니라 높은 순위에 오른 학교의 재학생들에게마저 싸늘한 반응을 얻었다. 다른 언론의 평가와 달리 가장 서열화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서울대보다 성균관대가 상위에 오른 것이나, 평가지표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9월 22일 고려대 총학생회가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뒤 서울대, 연세대 총학생회도 여기에 동참했다. 같은 달 26일 경희대, 동국대, 성공회대, 한양대 총학생회는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사의 대학평가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 7개 대학 총학생회는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발표된 10월 6일 다시 기자회견을 열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각 대학 캠퍼스에서 ‘언론사 대학평가 거부 대학생 릴레이 선언’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서 7개 대학 총학생회는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대해 “대학이 진정으로 갖춰야 하는 교육 커리큘럼의 체계, 학내 자치문화의 활성화 등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히려 대학의 본질을 훼손한다”며 “대학 선진화 및 경쟁력 강화라는 처음 취지는 이미 변질됐고 진리 추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본분에 대한 망각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대학생 권순민(22) 씨는 “대학평가가 오히려 학생들에게 불이익”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학교당국이 대학평가에 신경 쓰면 정작 학생들은 뒷전이 된다는 것이다. 권씨는 “대학평가 때문에 (학교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한다”면서 “중앙일보 대학평가의 국제화 지수는 영어강의 비율로 평가하는데 사실 많은 학생은 영어강의로 얻는 게 많지 않고 오히려 불편함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대학평가가 학생들의 자치공간처럼 실질적인 학교생활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한편 언론사의 대학평가는 유행처럼 번져가는 모양새다. 5월 발표된 조선일보의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 평가’를 비롯해 학생들이 수시원서를 접수하는 시기에 맞춰 발표된 한국경제신문의 설문조사까지 양태도 다양하다.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 평가’는 2010년부터 아시아 전역에 있는 대학들을 ‘의대’가 없는 대규모 종합대, 중소규모 종합대, 특성화대 등으로 분류해 평가한 뒤 순위를 매겼다.

    한국경제신문은 기업인사 담당자들과 헤드헌터들에게 ‘가장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은 어디인가’를 묻고 ‘취업역량 교육이 잘 이뤄지고 있는 대학’과 ‘최근 졸업생의 저력이 돋보이는 대학’ 부문 등을 조사해 종합점수를 매겼다. 1위와 20위의 종합점수 차이는 73.1점이었다. 2010년부터 경향신문, 2013년부터 동아일보도 대학평가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취업률을 핵심평가 항목에 포함해 다른 언론의 평가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대학 서열화 조장, 해도 너무해

    ‘중앙일보 대학종합평가 발표 규탄! 총학생회 합동 기자회견’이 10월 6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중앙일보사 앞에서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학생들이 집회가 끝나고 벽에 붙였던 대학종합평가 발표를 비판하는 문구가 적힌 종이들을 떼고 있다.

    세계 각국은 대학 개별성 살려

    ‘대학 순위평가와 대학의 몰락’이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한 고부응 중앙대 교수는 “대학 순위평가가 대학 본질을 해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적인 평가방식으로 ‘순위평가’가 아닌 ‘인증평가’를 강조했다. 고 교수는 “인증평가는 잘하는 대학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대학을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을 맞추면 모두가 일류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방 소재 특성화대라면 각 대학이 소화하는 것이 다르고 거기에 맞는 가치와 방향이 주어질 텐데, 언론사의 대학평가 같은 순위평가는 이런 정보를 담을 수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대학을 순위로 평가하려면 같은 기준을 갖고 동일 선상에 세워야 하기 때문에 개별 대학의 교육이 평가 절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순위에서 벗어나 대학의 개별성을 살린 대학평가 방식은 각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비영리기구인 고등교육인증위원회(CHEA)가 ‘대학평가인증제도’를 시행하고 대학기관의 교육 수준을 점검한다. 고등교육인증위원회의 대학평가인증제도는 △교육 품질 유지 여부 △대학의 책무성 유지 여부 △대학 자체 감사 및 개선 의지 △의사결정 절차의 공공성 같은 지표에 따라 세부 항목에서 대학이 ‘학생이 필요로 하는 교육적 성취에 대한 장려 정책이 있는지’ ‘의사결정에 대중의 목소리를 반영할 만한 대표자를 포함하는지’ 등을 평가한다.

    영국의 경우 평가기관인 QAA를 조직해 엄격하고 실질적인 대학평가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학습 기회의 품질 항목에서는 ‘경영 및 관리 정보가 교육 수준 과기준 향상을 위해 활용되고 있는지’ ‘학생들 목소리에 충분히 귀 기울이고 있는지’ ‘학생회 활동은 학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뤄지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프랑스의 ‘대학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인증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요점은 ‘순위’가 아닌 ‘독려’에 있다. 프랑스 국가기관인 고등교육연구평가관리기구(AERES)는 각 대학이 제출한 자체평가를 토대로 전문가가 의견을 제시하는 형식의 대학평가를 실시한다. 따라서 평가기준이나 등급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질적 평가 방법을 따르고 있다.

    한국 사회의 대학과 대학사회, 교육 수요자가 공감할 만한 바람직한 지표에 대한 요구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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