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2

2014.11.10

3~4인 핵가족 어디 갔니

눈덩이 가계 빚, 각자 생계 위해 1~2인 가구로 해체

  •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ygs9964@sookmyung.ac.kr

    입력2014-11-10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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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인 핵가족 어디 갔니

    X세대 중에는 소득은 늘었지만 폭등한 집값과 자녀 교육비로 가정을 꾸릴 엄두를 못 내는 경우가 많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가구’란 주거와 생계, 즉 ‘소비생활을 한 집에서 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0년까지 한국의 전통 가구 형태는 4인 가구였다. 부모와 자식 2인으로 구성된 4인 가구가 한국의 표준이었고 그 수도 가장 많았다. 그러나 이후 15년간 ‘인구 지진(agequake)’이라 부르는 수준의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다. 1~2인 가구는 급성장하고 4인 이상 가구 비중이 크게 감소했다. 2010년에는 1~2인 가구 비중이 4인 가구를 약 3% 비율로 앞섰다. 3세대가 한 집에서 동거하는 대가족제도도 완전히 해체된 실정이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3~4인 핵가족도 붕괴 위기에 놓였다.

    도대체 무엇이 이 같은 변화를 가져왔을까. 필자는 가계부채가 1인 가구 급성장의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1000조 원 넘는 가계부채

    2000년 이후 사람들은 은행에서 대출받아 집을 사기 시작했다. 반대로 1998년 경제 위기의 주범으로 홍역을 치른 기업들은 열심히 저축하기 시작했다. 가계와 기업이 반대의 선택을 한 결과는 최근 여러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은 쌓아놓은 돈은 있지만 투자할 곳이 없다고 울상이다. 한편 가계의 금융부채는 급기야 1000조 원을 넘어섰고, 부채에 시달리는 4인 이상 가구 구성원들이 각자 생계를 위해 1~2인 가구로 해체됐다.

    가계부채 문제는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정치 실패)의 합작품이다. 정부는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고령화가 급진전하고 2012년 이후 핵심 소비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4인 이상 가구가 급감하고 있는데도 그 추세를 국민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도덕적 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뉴타운정책 등 잘못된 분양 중심의 주택정책으로 하우스 푸어를 양산한 것도 문제다. 요약하면 가계부채로 이혼, 만혼, 미혼 인구가 늘고, 그 결과 저출산과 저성장에 따른 1인 가구 증가라는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계부채만으로 1인 가구의 급성장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가계부채 외에도 평균 수명 증가와 사회 변화에 따른 자발적, 비자발적 비혼 인구 증가도 이런 현상에 한몫했기 때문이다.

    먼저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길어졌다. 2009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사상 처음 80세를 돌파했다. 남녀 간 평균 수명 차이는 할머니 1인 가구의 증가로 이어졌다. 우리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약 20년 선행하는 일본의 경우 100세 이상 노인 인구 5만8000명 중 90% 이상이 할머니 1인 가구다.

    따라서 현재 80세가 넘는 고령층보다 더 오래 살 것으로 예상되는 1945~63년생 베이비부머의 경우, 1인 가구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화에 따라 이들 세대는 은퇴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은퇴 후 30년 이상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직면한 것이다. 따라서 은퇴했거나 은퇴를 코앞에 둔 베이비부머에게 ‘소비하라’는 말은 ‘빨리 죽어라’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한국의 주력 소비층인 X세대(1964~79년생) 중에는 베이비부머 세대에 비해 소득은 늘었지만 폭등한 집값과 자녀의 교육비 때문에 가정을 꾸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가 적잖다. 당연히 1인 가구가 늘 수밖에 없다. 설령 가정을 꾸렸다 해도 가처분소득이 절대 부족한 실정이다. 워낙 많은 빚을 내 집을 사다 보니 은행에 이자를 내느라 바쁘다. 2005년 이후 대출받아 산 집의 시세는 구매 가격 이하로 떨어져 있다. 사정이 이러니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혼자 사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다인 가족 해체, 선진국에선 이미 경험

    3~4인 핵가족 어디 갔니

    10월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외국인 투자기업 채용박람회’를 찾는 구직자들. 미래 불확실성과 세대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젊은 1인 가구도 늘고 있다.

    1980~99년생인 Y세대는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로, 과거에 비해 취업이 어려워지자 ‘포기’를 알게 된 세대다. 20년 전 일본 젊은이들이 ‘3포 세대’였듯, 이들은 ‘정규직’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하고 있다. 취업이 어려우니 소비 자신감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 세대에 비해 개인주의적 경향도 강해 1인 가구로 사는 데도 거부감이 덜한 편이다. 이들이 소비를 포기한다면 한국 경제는 장기 불황으로 가게 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상황을 살펴보면 국내 소비가 왜 늘지 않는지 자명해진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2012년을 절정기로 핵심 소비 인구(30~54세)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평균 수명 증가에 따른 두려움과 가계부채 심화, 정규직 취업난 등 각 세대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소비 자신감’이 없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같은 미래 불확실성과 세대 가치관이 충돌하면서 다인 가족이 1인 가구로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가구 구성원이 소형화하는 이런 추세는 선진국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도시화, 여성의 사회 진출, 개인화와 편의점, 인터넷 쇼핑 등 소매산업 발달도 1인 가구 증가를 촉진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은 1인 가구 비율이 50%이지만 복지제도와 사회 안전장치가 잘 갖춰져 세계 최고 수준의 1인 가구 국가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모습은 과거 일본이나 영국과 유사하다.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는 사회적으로 1인 가구를 정상적인 가구, 가족의 한 형태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홀로 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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